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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기의 상대성 / 2011.12.08.
    북핵리포트 2007-2012 2015. 8. 17. 19:24


    직접적인 취재를 하고 있지 않은 분야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은 아마도 필자에게 플러스 보다는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이른바 '북핵 리포트'와는 전혀 다른 업무를 맡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본연의 업무에 대한 나태함으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시 펜을 든 것은 기자가 전문성을 갖기 매우 어려운 현실에서 최근 더이상 칼럼을 쓰지 않을 경우 코너가 폐쇄될 수 있다는 경고를 받았고, 전 언론사를 통털어 이른 바 '북핵 뉴스'가 전혀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지형에서 누군가 미래를 위해 기록을 남겨두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인간의 감각은 선택적이다. 우리의 시각과 청각 후각은 우리가 관심이 있는 대상 혹은 우리에게 위협이 되는 대상에 주목하고 그 밖의 것들에 대해선 논외로 치부한다. 사회나 국가, 그 구성원들의 집단적인 인식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본다. 현재 우리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인식의 프레임은 국내정치에 맞춰져 있고 또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있다. 그 프레임은 올해 뿐만 아니라 2012년 한해도 지배할 매우 중요한 '구조'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우리는 우리들의 선택적인 감각에서 제외되고 있긴 하지만 가까운 미래의 어떤 시점 - 이르면 2012년 초 우리에게 중요한 이슈로 부각될 수 있는 변수에도 가끔 시선을 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것은 바로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후계구도를 잡고 2012년을 강성대국의 원년으로 설정하고 있는 북한이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 중후반 대북문제에 있어서 '일정한 전환'을 기획했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공개한 바 있는 남북접촉의 정황이나 5.24조치의 강한 기조에서의 후퇴, 그리고 무엇보다 북한에서 '공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통일장관의 교체가 그런 흐름을 증명한다.  이런 흐름은 남.북 6자회담 수석대표의 회동과 제네바 북미협의 등으로 이어지긴 했지만 아직은 6자회담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 대북문제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는 한국정부, 경제적 위기와 정치적 위기를 동시에 맞고 있는 미국정부 모두 한 점에 집중해 돌파구를 뚫어낼 만한 힘을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1월17일 호주의회 연설을 통해 "북한이 다른 국가 또는 비국가 조직에 핵물질을 이전하는 것은 미국과 우방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간주할 것"이라고만 말해 미국의 현 시점의 주목 수준이 북핵문제 해결이 아니라 소극적 관리 수준인 듯한 뉘앙스를 풍기기도 했다.   



    딜레마 


        북핵협상에 대해 무용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 근거는 대개 북한은 결코 협상을 통해 핵을 내놓지 않을 - 이번 리비아 카다피를 보면서 김정일은 그의 생각을 더 강화했을지 모른다 - 것이란 점이다. 필자도 상당부분 이런 논리에 동의하는 편이다. 그런데 문제, 딜레마는 첫째 북한이 '고난의 행군'이란 시기를 거쳐오면서도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언제 무너질지 알 수 없으며, 무너지는 양상 - 그 당시의 미.중.러.일의 역학관계와 우리에게 주어지는 역할 또는 그 충격파가 어느 정도인지 전혀 예상할 수 없다는 점이다.  두 번째로는 북미 혹은 남북간에 최소한의 협상이 진행되지 않으면 북한의 핵 활동에 대해 최소한의 감시도 진행될 수 없다는 점이다.



    경수로 


        북핵문제의 역사를 따져 올라가보면, 그 첫 번째 단락은 영변의 흑연감속로가 언론을 통해 위성사진으로 공개되면서 뜨거워지기 시작했고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를 통해 함경남도 금호지구에 1000MWe급 경수로를 짓기로 하면서 마무리 됐었다. 물론 그 KEDO 프로젝트는 중도에 좌초된 바 있다. 


        그런데 얼마전 북한문제관련 학술 페이지인 38 North가 2011년 11월 3일자 위성사진 업체 디지털 글로브에서 포착한 영변의 경수로 건물 사진과 함께 앞으로 빠르면 6개월 길게는 12달 정도면 외부건물 공사는 완공될 거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그동안 북한은 영변 흑연감속로를 통해 플루토늄을 생산해 왔는데 2.13 합의 등을 통해 내부 기기를 해체하고 냉각탑을 폭파시킨 이른바 1세대 원자로 대신 '새로운 시대'의 원자로를 세우고 있는 것이며 38 North는 이것이 이른바 북한이 말하는 '강성대국'의 기념물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왜 경수로가 중요할까 하는 점을 좀 더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북한이 보유하고 있던 흑연감속로는 광산에서 캐낸 천연우라늄을 정제하면 연료로 쓸 수 있다. 이에 비해 경수로는 우라늄235를 원료로 쓰는데 원료를 생산하는 과정에 '농축'이라는 프로세스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 연료를 수입하는 게 아니라면 경수로와 우라늄 농축시설은 일종의 세트로 갖춰야하는 시설인 것이다.


        앞서 북한은 작년 11월20일 북한을 방문한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에게 우라늄 농축시설 (원심분리기)을 보여준 바 있는데, 우라늄 농축시설 공개와 경수로 건설은 이를테면 "우리는 우리의 전력부족을 극복하기 위해 원라력 발전소가 필요하고 이 발전소에 쓸 우라늄 농축을 진행하고 있다"는 선언이 되는 셈이다. 


        문제는 우라늄을 3% 정도 농축할 경우 발전의 원료가 되지만 그걸 90%이상 농축할 경우 별다른 특수 장치가 없이도 간단히 터뜨릴 수 있는 원자폭탄의 원료가 된다는 점이다.  북한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플루토늄으로도 원자폭탄을 만들 수는 있지만 매우 복잡한 고폭장치 설계를 해야 제대로 터질 수 있는 반면 우라늄탄의 경우 고농축 우라늄을 갖고 있으면 두 덩어리를 하나로 뭉쳐지게 하기만 해도 폭발하는 원리이기 때문이다.  



    카드  


        38 North는 북한의 경수로가 건물 외벽공사는 빠르면 6개월 뒤면 끝나지만 작동이 되는 단계까지 가기 위해서는 적어도 2~3년이 소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황일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경수로 원자로는 핵 연료봉, 펌프, 제어봉이 핵심 부품인데 북한은 어느 것도 자체 개발할 능력이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경수로의 핵 연료봉은 지르코늄(zirconium)이란 특수 금속을 씌워야 하는데, 북한이 생산은 물론 코팅 기술을 갖지 못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점은 북한 기술력에 대한 평가를 논외로 하고 첫 번째로 이 경수로의 건설은 전술한 것 처럼 북한이 주장하는 국가로서의 권리, 즉 '평화적 핵 이용'을 위해 원자력 관련 시설을 건설하고 운용한다는 논리를 뒷받침하는 것이며 두 번째로 경수로가 제대로 돌아가건 돌아가지 않건 간에 남-북 협상, 북-미 협상에 있어서 중요한 카드로 쓰일 수 있으며, 세 번째로 경수로 건설이 진척되면 진척될 수록 건설된 시설을 부수거나 폐기하는 협상은 더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보수적 성향을 띄는 미국의 싱크탱크인 한미경제연구소(KEI)의 니컬러스 해미세비츠 연구원은 11월21일 글에서 "내년 한국의 총선 및 대선과 미국 대선으로 인한 북핵정책 지연이 북한에 경수로 건설을 위한 시간을 벌어주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올해 9월 기사를 검색해 보면 북한의 리용호 외무성 부상은 9월21일 있었던 베이징 2차 남북 비핵화 회담에서 "우라늄 농축은 평화적 핵이용" 이라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면서 "농축활동을 중단하려면 9.19 공동성명에 약속된 경수로가 제공되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경향신문의 유신모 워싱턴 특파원이 정통한 복수의 외교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2012년, 북한이 주장하는 강성대국 원년 


        외교소식통을 인용한 경향신문의 28일자 보도에 따르면, '조엘 위트 미국 존스홉킨스대 한.미연구소 연구원, 찰스 퍼거슨 미국과학자협회장 등 5~6명의 한반도 또는 핵문제 전문가들이 금주 중 베이징을 경유해 평양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한다. 헤커박사에 이어 꼭 1년 만에 북한이 전문가집단을 북한으로 불러들이는 것이다. 


        앞서 15일에는 북한이 함경북도 무수단리에서 대포동 2호로 추정되는 미사일 엔진 연소실험을 실시했다는 보도가 일본 TBS를 통해 나왔고, TBS는 사실보도에 덧붙여 북한이 내년 강성대국 진입을 선언한 상황에서 미사일 발사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이와 관련해 당일 우리 당국자들도 미사일 엔진 연소실험 사실은 맞는 것으로 확인해 주면서도 "연소 실험은 일상적인 것이고 큰 일도 아니"라고 평가절하했다. 



    다시 위기의 상대성 


        필자는 오바마 정부 초기 북한이 잇따른 도발을 했던 이유가 - 물론 결과적으로는 오판이었지만 - 오바마 정부에 강한 인상을 남기고 북한 핵 문제, 그리고 핵 협상이 미국의 국익으로 봐도 방치해선 안될 핵심적인 의제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판단한다. 북한은 매우 궁핍하고 외부의 지원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으며 그래서 자신들의 문제가 의제에서 사라지고 잊혀지는 것을 못견뎌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북한은 반드시 내년, 강성대국 원년의 어느 시점에 북한 핵 내지는 미사일 능력을 과시하는 이벤트를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그 시점은 단기적으로 내년 3월 말, 총선을 10여일 앞두고 개최되는 핵안보정상회의일 가능성이 있다.


        물론 기우일 수 있다. 다만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는 북한 핵, 미사일 문제가 다시 극적으로 떠들썩하게 등장하기 전, 취할 수 있는 조치, 진전시킬 수 있는 논의가 있다면 예방적 차원이라도 한.미 당국이 좀 더 적극적일 필요가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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