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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자회담 5차3단계 회의 취재기 (7) / 2007.03.04.
    북핵리포트 2007-2012 2015. 8. 15. 16:11

    무박 2일, 2.13 합의가 만들어지던 마지막 순간

    12일, 월요일 아침은 우울하게 시작됐다. 숙소를 나서며 크리스토퍼 힐은 “이제 하루가 남았고, 전적으로 북한에 달린 문제”라고 운을 뗐다. 천영우 본부장의 발언도 만만치 않았다. “북경하늘은 맑은데, 앞길을 아직 잘 보이지 않는다.” 긍정의 힘으로 상황을 돌파해가는 천 본부장의 평소 스타일에 잘 맞지 않는 말이었다.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말하는 크리스토퍼 힐


    6자회담에 있어 평양으로 가는 정기 항공편이 일주일에 두 번 밖에 없다는 점은 과거 여러 모도 쓸모가 많았다. 기자들은 제한된 정보 아래서 이 날짜를 기준으로 해서 언제 회담이 시작될 건지 등을 점쳐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월요일, 내일은 화요일이 아닌가...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결국 서울로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 되는 건가요? 크리스토퍼 힐도 하루 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하는데, 정말 모르겠어요.”

    “크리스토퍼 힐이 그렇게 얘기했어요?"

    "그렇다니까요..”

    “협상 하는 사람이 그렇게 얘기하면 안되지. 끝까지 노력을 해야지.. 솔직히 지금 시점에서 본다면 반반이라고 말하는게 정직할 거에요.”

    외교부 기자실엔 오랫동안 외교부 취재를 해온 이른바 “거장(巨匠)”들이 있다. 한겨레신문의 강태호 선배도 그런 분이다. 12시와 2시용 기사를 준비하면서 살짝 의견을 물어봤다. 선배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글세.. 여기서 결과가 안나오면 아무도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사람이 없을텐데..”

    돌아간다는 각국 대표단의 으름장, 그리고 비밀을 지켜야 할 걸 터뜨리고 만 북한. 시정거리가 제로라는 천영우 수석대표의 말. 누구 하나 긍정적인 발언을 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분위기가 어떤 결론에 아주 가까이 와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라는 얘기였다. 서울의 소식통의 50대 50이란 말도 그 구조에 넣어 보자면, “아직 됐다고 말하긴 이르지만 될 가능성이 50은 된다.”은 긍정으로 읽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5차3단계 회담에서 뭔가를 얻어가지 못하면 안되는 각국 대표단의 절박한 상황이 있었다.

    미국의 부시행정부는 죽을 쒀가고 있는 외교 분야에서 뭔가 하나 분명한 이정표를 세워야 하는 절박함이 있다. 중국은 5차2단계에서 준비 없는 외교무대를 만들었다고 톡톡히 비난을 받았는데, 이번에도 아무 성과 없이 회담이 끝나면 곤란한 상황이었다. 북한은 2월16일 김정일 생일을 앞두고 뭔가 하나 선물이 필요한 시점. 우리나라는 9.19 공동선언의 설계자이기도 한 송민순 장관이 이른바 “참여정부”의 정책적인 성과물인 동시에, 스스로에게도 큰 의미가 있는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전방위적으로 뛰고 있는 상황이었던 것.  

    이례적으로 그날 낮, 정부 당국자가 기자들을 찾아왔다. 그는 뭔가 결정적인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에 브리핑을 하러 온 건 아니라면서도, 지금까지와는 좀 다른 얘기를 했다.

    강조점을 보자면 ①이번에 북한이 취할 조치가 단순 동결에 그쳐선 안된다는 점 ②미북 관계정상화 문제와 관련해서도 단순한 대화재개 수준이 아니라 구체적인 무엇이 담겨야 한다는 점 ③ 한국이 북한의 핵 포기 대가를 단독으로 지원을 할 수는 없다는 점이었다. 

    왜 이런 브리핑을 한 것일까. 타결 뒤의 시점에서 이 당시 당국자의 브리핑을 보자면 협상 과정에서 진전이 있고, 그 진전은 이러 이러한 부분에서 만들어지고 있다는 암시를 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문제는 타결이 안 된, 그것도 전날 저녁 그리고 오전까지 부정적인 신호들을 접했던 기자의 입장에선 ‘이렇게 가야 할 것이다’는 어떤 ‘당위론’ 같은 어투의 당국자 브리핑을 듣고, 그렇게 예민하게 그의 심중을 제대로 읽어내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또 하나 그 와중에 “금요일쯤 타결 직전까지 상황이 진전됐었다”는 전언이 서울에서 들려왔는데, 이 정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서울의 한 정통한 소식통이 “그건 전혀 잘못 짚은 것이다.”라고 부인을 하면서 내 스스로의 감이 혼란스러워 졌던 탓도 있었다.

    그러나 중국이 각국 대표들을 조어대에 묶어놓고 ‘오늘 여기서 해결 안되면 못나간다’는 식으로 속도를 내기 시작했고, 밤 10시가 넘어서면서 분위기는 급물살을 탔다. 그 와중에 나는 갑자기 문안이 타결되는 상황을 대비해, 화상전화 Live 방송을 하기로 했는데 그 때문에 택시를 타고 30,40분은 족히 걸리는 베이징 지국을 2번 씩이나 왔다갔다 하는 촌극을 연출하기도 했다. 

    몸은 피곤한데, 상황은 계속해서 바뀌고 있었다. 공보 업무를 맡고 있는 당국자는 조어대(釣魚臺)에 머물며 시시각각 상황을 전해줬다.

    22:50 “오늘 밤 문안이 협의돼서 내일 전체회의 열릴 것 같다.”

    23:10 “혹시 타결 안되는 쪽으로 기사 쓴 사람들 있으면 논조 바꾸라고 해라”

    23:53 “수정란이 만들어 지는 것 같다. 초기단계의 거리, 속도, 숫자까지 거래되고 있다”

    00:03 “대표단 차원에선 오늘 밤 문안 타결 가능성 있다”

    01:50 “수석대표 회의가 시작됐다.”

    02:30 “대표단 차원에선 문안이 합의가 됐다”

    이런 당국자의 설명들은 새벽 2시30분을 전후해서 친강 중국측 대변인의 브리핑으로 공식화가 됐다. 물론 “오래 기다리셨습니다”로 시작하는 그의 브리핑엔, 낮이면 알게 될 거라면서 협상결과의 세부사항에 대해선 어떠한 언급도 담기지 않았다. 그의 브리핑은 “더 세부사항을 말씀드리지 못하는 점 양해 바라며.. 질의응답은 받지 않도록 하겠습니다.”로 끝났다. 

    거기 시간으로 2시30분이면 한국 시간으로는 3시30분. 이제 합의문이 타결됐다는 내용으로 아침 기사를 써야 할 상황이었다. 결국 완전히 뜬 눈으로 밤을 새우게 된 것. 하루 전날에도 잠을 충분히 자지 못했기 때문에 너무나 피곤한 상황이었지만 정신은 아주 맑았다. ‘아.. 이제 비핵화를 위한 첫 걸음을 드디어 내딛게 되는 거구나.’

    반갑게 인사하는 김하중 주중대사, 김계관 북측 대표, 천영우 우리측 대표


    아침 뉴스를 만들고, 난 천영우 본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협상단에게는 전화를 하지 않는 것이 예의지만, 이제 협상은 끝나지 않았는가. 그는 내 전화를 반가와 했다. 물론 아직 공개되지 않은 협상 결과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번에 우리 대표단의 적극적인 활동이 손에 잡히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데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이번 6자회담 5차3단계 회의를 평가했다. 그리고 자신의 몫도 좀 있었다며 자랑스런 목소리였다. 

    2.13 합의가 이뤄진 2월13일. 전날 한 숨도 자지 못한 나에게 있어 체력적으로 한계를 느끼게 한 날이었다. 서울과 베이징과의 조율, 또 베이징에 나와 있는 나를 포함한 3사람 기사가 중복되지 않도록 해야 했고, 화상전화 생방송 등 여러 가지 일을 동시 다발적으로 처리하느라 그야 말로 눈 코 뜰 새가 없었기 때문.

    그렇지만 불만은 전혀 없었다. 약간 과장하자면 어떤 힘이 솟아나는 것 같았다. 오히려 역사의 한 페이지를 내가 기록하고 있다는 자부심, 그리고 지극히 간접적이고 제한적이겠지만 이 대장정에 나도 기여한 몫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 이런 것들이 만들어낸 효과였다.

    6일부터 7박 8일의 여정이 끝나고 인천 발 비행기에 올라 바라본 하늘. 허탈했던 지난 12월 5차2단계 회의와는 달리, 왠지 내 마음 한 구석이 든든해지고 뭔가 차오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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