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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자회담 5차3단계 회의 취재기 (5) / 2007.03.03.북핵리포트 2007-2012 2015. 8. 15. 16:04
프레스센터 탈출기
기자들의 근로조건은 별로 좋은 편이 아니다. 그 중에서도 방송이 더 심각하다. 신문은 휴일엔 배달이 안되지만 방송은 추석이건 설이건 항상 뉴스를 내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휴일 근무도 적은 편이 아닌데, 난 근무 복이 별로 없는 편이다. 3주에 한 번 이틀 연휴를 즐길 수 있는데 하필이면 그 때 6자회담이 잡힌 거다.
어쩌랴. 우리는 출장을 왔고, 일을 해야 한다. 그리고 각국 대표단의 활동을 보면 불만을 표시할 수도 없다. 한반도의 미래를 결정할 중요한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정말 열심히 뛰고 있었다.
토요일 아침. 천영우 우리측 수석대표는 “오늘과 내일, 정말 결정적인 고비가 될 거”라고 했다. 어차피 북한이 취해야 할 초기조치에 대해 합의문을 만드는 과정인 것인데, 그 안에 담길 용어에 대해서는 큰 문제가 없다고도 했다. 당시 우린 그것이 불능화(disablement)정도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건 예를 들어 영변 5메가와트 원자로를 예로 들자면 핵심 부품을 제거해 버려서 다시는 가동하지 못하게 하는 건데, 북한이 “임시적인 조치”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내용이 사전에 보도된 바 있었고, 당국자들도 베이징으로 출발하기 전에 ‘그렇게 되면 좋지만, 그걸 북한이 받아들일 수 있겠냐’고 회의적인 전망을 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합의문에 담길 용어는 불능화가 아니라 그저 폐쇄(shutdown)정도가 아닐까 생각을 했었다.
이제 와서 다시 복기를 해보면 당시 생각했던 것도 아주 틀린 건 아니었다. ① 60일 내에 취하기로 한 것은 폐쇄이고, 그 두 번째 단계에서 불능화 조치를 하면 나머지 95만톤을 주기로 한 것이기 때문이고 ② “불능화”라는 용어는 천영우 수석대표가 북한이 처음 요구했던 200만톤에서 100만톤으로 양을 줄이고, “그 정도를 얻으려면 너희가 취할 조치도 제네바 합의 이상이 돼야 한다.”고 설득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아마도 토요일쯤은 그런 절충이 막 벌어지는 상황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
크리스토퍼 힐도 그날 아침 수수께끼 같은 말을 했다. “협상 과정에 중요한 요소가 있는데, 북한은 그게 중요하단 걸 모른다.”는. 대개 이런 말들은 당시에 이해가 안가도 협상이 끝난 뒤, 결과가 발표가 된 뒤에는 무슨 뜻인지 알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아쉽게도 난 아직 그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런 말들을 뒤로 하고 난 스스로에게 휴가를 주기로 통 큰 결정을 내렸다. 거창한 휴가는 아니라도 다만 3,4 시간 정도를 숙소 밖에서 보내기로 한 것. 좀 변명을 하자면, 이런 “휴가”가 가능했던 건 세 사람이 내내 밤을 꼬박 새울 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일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3사람이 번갈아가면서 1,2,3번 타자를 맡기로 했고, 3번에 해당되는 사람은 좀 쉬엄쉬엄 일을 할 수 있도록 해놓았기 때문이다.
중국어를 전혀 못하는 나는 관광을 위해 2가지를 준비했다. 호텔 로비에서 구한 간략한 관광지도, 그리고 내가 가고자 하는 후해(后海)를 한자로 큼지막하게 적은 종이가 그것. 베이징의 택시는 내가 타본 경험에 따르면 믿을 만하다. 그리고 영수증을 끊어주기 때문에 바가지를 쓰는 경우도 겪어보지 못했다.
후해(后海), 중국발음으로 ‘호우하이’는 몽고사람이 중국에 처음 와서 큰 물을 보고 지은 이름이라고 했다. 일종의 관광지인데, 호수를 중심으로 주변에 선술집들과 옛날 가옥들, 그리고 인사동 같은 잡화점들이 늘어선 곳이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인력거를 타라는 호객꾼들이 다가왔다. 인력거들이 서로 경쟁하는 양상은 아니었고, 서로 담합을 해서 호객을 하는 것 같았다. 이를테면 조잡한 브로셔 같은 걸 보여줬는데, 거기엔 이용시간과 그 시간에 구경할 수 있는 관광지가 기록돼 있었다. 그런데 정작 얼마만큼의 시간을 이용하면 얼마만큼의 돈이 드는지는 나와 있지 않았다.
그들이 1시간 관광의 대가로 제시한 액수는 180위엔, 그게 적당한 가격인지 아닌지에 대한 정보는 없었지만, 중국말을 전혀 못하는 내게 또 어느 정도는 바가지를 씌울 것이란 생각도 있었지만 거부하고 안탈 정도의 액수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건 몹시 답답한 일이다. 말이 통하질 않기 때문에 바디랭기지를 썼는데, 일단은 그가 서라는 곳에 서고 사진을 찍으란 곳에서 사진을 찍는 방식으로 인력거 체험이 시작되고 있었다. 10여분쯤 호수를 둘러본 뒤 그는 인력거를 세우고 인사동 골목 같은 곳으로 데리고 갔다. 그 곳의 정확한 지명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한다.
아마도 19세기 초, 혹은 그 이전의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 거리였다. 베이징에서 거대한 초 현대식 건물만을 봐왔던 나에게 그 자체가 재미있는 구경거리였다. 난 걸려있는 옷들의 사진을 찍기도 하고 이런 저런 물건들을 구경하기도 했다. 예상했듯이 인력거를 끄는 사람은 한 상점에 들러서 옥 제품을 보여주면서 “사는게 좋을 거”라고 말했다. 썩 기분이 좋진 않았지만 하나에 30위안 정도 하는, 그리 비싼 제품들이 아니라서 핸드폰 장식 고리를 몇 개 샀다.
자유관광을 할 수 있도록 놔두는가 했더니, 그는 이번엔 차집으로 나를 데려갔다. 보이차 인 듯한 걸 그집 종업원을 시켜 마시게 해줬는데, ‘이걸 또 강매하려는 건 아닌가’ 해서 차의 맛을 느끼기 보단 안절부절한 마음이었다. 그래서 빨리 끝낼 요량으로 훌쩍 훌쩍 속도를 내서 마셨는데, 그 때마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시, 또 다시 차를 채워주는게 아닌가? 그렇게 4잔 정도를 마시고 그 집을 나올 수 있었다. 다행히 사란 얘긴 없었다. 이럴 바에야 단호하게 인력거를 거부하고 혼자 왔어야 하는 게 아니었나 슬슬 후회가 되기도 했다.
그 거리의 마지막 쯤 한 문구류 상점에 이르렀는데, 눈에 쏙 들어오는 물건들이 많았다. 가죽으로 표지를 한 공책 등 세련된 디자인이었는데 내가 관심을 보이자 그는 손짓으로 사지 말란 얘기를 했다. 그리곤 가격표를 가리켰다. 백위엔.. 공책 한 권 값 치고는 상당히 비싼 값이긴 했다. 난 사실 50위안을 내고 종탑에 구경 가자는 제안을 이미 거절한 바 있기 때문에, 탐이 나긴 했지만 사지 않기로 했다.
그 자판 거릴 지나서 인력거는 담화헌(譚華軒)이란 곳엘 갔다.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우리 한옥마을 처럼 청나라 때의 집을 보존해 관광상품으로 만들어 놓은 곳이었다. 여기도 50위안을 줘야 구경할 수 있었는데 여성 안내원이 영어로 설명을 해줬다.
이 집은 북 모양으로 생긴 수호신이 좌.우측에 배치된 것으로 보아 장수의 집으로 추정된다고 했고, 문은 있으되 중앙이 벽으로 막혀있고 사람들이 그 벽의 좌.우로 출입하게 돼 있는 건 악한 기운을 막기 위해서라고 했다. 또 집은 “ㄷ”자 형이었는데, 그 중앙에 청동제의 작은 조형물이 있어 집을 지켜준다고 했다. 남향으로 자리를 잡은 건 부모의 방, 오른 쪽은 아들의 방, 왼쪽은 딸의 방 이렇게 배치가 돼 있었다. 딸의 방은 구경할 수가 없었는데, ‘이 곳은 식당영업도 겸하고 있어서 손님이 들어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래서 밥을 먹으면 얼마나 하느냐고 물었는데, 상당히 고가였다. 인력거를 끄는 아저씨의 주선으로 나는 전통의상을 입은 아리따운 아가씨와 기념사진도 한 장 찍었다.
그게 사실상의 마지막 여정이었다. 그 뒤에 후해에서 멱을 감는 중국사람들을 잠시 구경한 뒤 인력거에서 내려야 했다. 그런데.. 이 일꾼은 나에게 팁을 달라고 요구하는게 아닌가. 안주겠다고 버티면 그만이지만, 구걸하듯 벌린 그의 손을 차마 외면할 수가 없었다.
다시 택시를 타고 매리엇 호텔로 돌아왔다. 현지 대사관 직원은 “바가지를 상당히 쓴 거”라고 얘기해줬다. 그래도 흡사 “올드보이” 처럼 프레스센터를 벗어나지 못했던 지난해 5차 2단계 회담 때 상상할 수 없던 신선한 경험을 하게 됐다는 면에서, 난 그 돈이 아깝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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