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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미봉북 통미봉남 / 2008.05.24.
    북핵리포트 2007-2012 2015. 8. 16. 15:00

    클린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가던 지난 2000년 말 미국은 대북 경제제재를 일부 풀어줬다. 제재 해제는 1994년 제네바 합의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북한은 곧 무너질 거란 행정부 내부의 시각, 그리고 강력한 '공화당 의회'의 반작용으로 중유나 경수로문제를 제외한 합의의 다른 효과가 뒤늦게 나타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 시기에 평양주재 러시아 대사관에 있던 알렉산드르 보른초프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평양은 미국과 수교가 되는 것 처럼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었고, '제국주의 타도'니 하는 구호를 부르짖던 사람들이 180도 달라져 '친미'일색이었다고.

    조명록 차수가 워싱턴을 방분하고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을 찾아가는 극적인 장면들이 연출됐지만 클린턴 미국대통령의 방북은 결국 성사되지 못했다. 이어 새로운 부시정권의 탄생과 함께, 북미수교의 훈풍은 싸늘하게 식었다.

    최근 북한언론이나 조선신보의 보도가 심상치 않다. 지난 5/17일, 북한은 미국 국무부이 대북 식량지원 계획 발표후 12시간 만에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이 사실을 알렸다. 부족되는 식량 해결에 도움이 되고 "두 나라 인민들 사이의 이해와 신뢰 증진에 기여할 것"이라는 평가를 겯들인 보도였다.

    17일자 연합뉴스 심규석 기자는 북한이 이처럼 직접적인 '사의'를 공개 표시한 것이 지난 2000년 10월 이후 처음이라고 지적한다. 1996년부터 2005년까지 지속된 미국의 식량제공에 대해 북한 매체들이 이런식으로 반응한 일이 거의 없었다는 얘기다.

    조선신보 김지영기자도 이와 관련해 기사를 썼다. 과거 미국의 식량지원문제에 관해 노동신문이나(2007.4.11) 민주조선이(2006.9.20) '원조를 운운하는 지배주의적속심' 또는 '식량문제를 불순한 정치적목적에 악용'같은 표현을 사용했었던 점을 상기시키면서 이번 보도를 듣고 "잘 되여나갈 것 같다"는 많은 인민들의 반응이 그저 "무책임안 짐작"이 아니라고 했다. 이 단락에는 "국면전환의 예감"이라는 소제목이 달려있었다. 

    더 나아가 김지영기자는 이번 조선중앙통신 등의 보도가 "인민들에게 조미 적대관계가 해소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며 적대국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핵 억제력의 보존>>을 주장하지는 않았다."면서 "조선에 있어서의 바람직한 사태진전을 사회적으로 공론화한 셈"이라고 평가했다.

    조선신보는 일본에 기점을 둔 조총련계 언론이다. 그러나 김지영기자는 조선신보의 평양출입 기자고, 6자회담이 있을 때 마다 베이징의 북한대사관에 머물며 회담상황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 물론 북한 입장에서 - 보도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또 북한의 관영언론이 "공식적"인 북한의 입장을 나타내는 것이라면, 조선신보는 공식적으로 언급하기 어렵거나 아직 시기적으로 이른 문제를 대신 다루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 번 칼럼에서 언급했던 가동기록 문제나 조선신보 김지영기자가 '더 대범한 조치'라는 표현으로 암시한 냉각탑 폭파, 식량지원에 대한 신속한 언급 등을 짚어볼 때 북한은 어떤 돌이키기 어려운 방향전환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분위기는 앞서 언급했던 2000년 말 상황과 닮아있다.

    얼마 멀지 않은 시점.. 국무부가 북한을 테러지원국 리스트에서 제외하겠다는 입장을 의회에 통보하는 것과 거의 동시에 영변에서 냉각탑이 폭파되는 장면이 연출될 걸로 보인다. 미국의 건물 폭파 전문 회사가 이 세기적 폭파임무를 맡게될 거란 관측이 많다. CNN을 포함한 언론사들이 지난 번 불능화 장면 공개 때 처럼 영변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 이 이벤트가 끝난 뒤 북한은 중국에 신고서를 제출하고, 6자회담이 열릴 것이다. 여기까진 큰 무리가 없다.

    문제는 엉킨 시간표를 다시 바로잡아야 할 차기 6자회담 부터. 신고와 불능화, 그리고 테러지원국 해제가 맞물린 2단계를 지나 관계정상화와 해체의 3단계로 가야하는데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이전 단계의 요소들이 있다.

    ⓐ 현재까지 북한에 건너간 중유는 31만톤. 불능화기간중에 공급되기로 한 100만톤에 비해 부족한 물량이다. ⓑ 영변 불능화 조치 11개 가운데 3가지가 달성이 안됐는데, 연료봉을 꺼내는 작업은 앞으로 3달 정도가 더 걸리고 그걸 마친 다음에야 기술적으로 연료봉 제어장치를 불능화시킬 수 있게 된다. 미사용 연료봉(50메가와트용 만개,5메가와트용 2천개)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합의도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 초기단계 조치 이행 완료 뒤에 하기로 했던 6자 장관회담도 성사되지 못했다.

    냉각탑의 폭파 의미가 2단계를 넘어서 '해체'의 3단계로 넘어가는 상징이라고는 하지만, 또 먼저 언급한 것 처럼 북한이 대범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하지만 차기 6자회담에서 뭔가 대단한 것이 만들어지리라고 기대하긴 어렵다.

    당장 필요한 '검증기구'와 '절차' 문제, 최근 몇몇 언론에서 거론됐던 미사용 연료봉의 한국도입 문제, 상징적 효과가 큰 6자 외무장관회담 정도만 잘 논의가 되도 성공적인 회담이었다는 평가가 나와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본다면 부시행정부 내에서는 혹 6자 장관회담을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연락사무소 개소 같은 북-미 관계정상화를 위한 진 일보한, 되돌리기 어려운 조치가 나오긴 물리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임이 분명하다.

    누가 미국의 차기 대통령이 될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2000년말 2001년 상황이 반복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북한도 별로 다르지 않은 생각일텐데, 그래서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이 조총련계 조선신보가 지금 보이고 있는 반응은 북한이 미국의 정치권 - 민주 공화 양당에 보내는 또 다른 메시지로 읽힌다 ; '누가 대통령이 되건 우리는 미국과 잘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

    남.북관계보단 동맹회복을 외치며 쇠고기 무리수를 자초했던 남한, 미국의 정권교체를 앞두고 적극성을 넘어 '낮은 자세'로 임하는 북한. 통미봉북, 통미봉남... 따지고 보면 동전의 앞. 뒷면같은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Quik Wrap-Up]

    워싱턴 시각으로 2008년 5월13일, 성김 한국과장은 이른바 'Kim Box'로 명명된 북한의 원자로 가동기록과 관련해 미국 국무부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http://2001-2009.state.gov/p/eap/rls/rm/2008/05/104671.htm

    보통 과장급에서 이런 현안에 대해서 브리핑을 하는 일이 드물고 더구나 얼굴을 드러낸 상태의 브리핑 - On Briefing - 을 하는 건 매우 예외적인 일이다. 미국은 또 북한에 50만톤의 쌀을 지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국은 몹시 난감한 입장이 됐다. 미국 의회에서는 글렌 수정법 우회로도 마련됐고, 중유구입을 위한 예산도 통과됐다.

    쌀 문제 때문만은 아니었겠지만 김숙 평화교섭본부장의 행보가 바빴다. 한국과 미국, 일본 3국 6자회담 수석대표가 워싱턴에서 만났다. 게리 세모어 외교협회 부회장은 RFA와의 인터뷰에서 테러지원국 해제가 있은 후에 아마 납치문제에 관해서 북한측의 어떤 조치가 있을 거라고 말했다.

    언론을 통해 사실상 민주당 후보로 결정이 된 버락 오바마는 대북외교를 사례로 들어 미국의 외교정책이 가야 할 길을 제시했다. 매캐엔이 오바마와 맡붙어야 할 주요 쟁점중에 하나가 바로 "독재자와 조건없이 만날 수 있다."는 오바마의 발언일텐데, 양자접촉은 안된다는 기존의 원칙을 무너뜨리고 임기중에 성과를 내기 위해 달리고 있는 부시행정부를 생각한다면 매캐인이 각을 세위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21일 RFA의 보도도 그렇고, 워싱턴에도 본격적인 대선구도가 형성되면서 크리스토퍼 힐에 대한 소문이 돌고있다. 다음 행보를 위해 현직에서 물러날 때가 됐다는 등등의 소문이다. 그러고 보면 요즘 크리스토퍼 힐은 유난히 입이 무겁다. 또 성김 과장의 등장이 잦다. 만일 멋지게 박수받으며 물러날 때를 정한다면 냉각탑 폭파 이후 그리고 6월초쯤 열린다는 6자회담 이전이 가장 좋지 않을까?

    여기에 더해 국무부는 워싱턴 현지시간으로 23일 힐 차관보가 26일 출국해 베이징에 27일에서 29일 사이에 머물고 모스크바를 29일에서 31일까지 방문할 계획이라고 밝혔는데, 아마 냉각탑 폭파가 이뤄진다면 27에서 29일 사이가 적당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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