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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성, 권력, 구리항아리 / 2007.02.01.북핵리포트 2007-2012 2015. 8. 15. 12:27
6자회담 취재 때 한국 기자들이 묵는 숙소는 항상 정해져 있다. 댜오위타이에서 약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메리어트 호텔로 별이 많이 붙은 곳이지만 취재여건으로 따져본다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란 평가가 냉정할거다. 이를테면 터 잡고 있는 ‘위치’가 문제였다.
북경이란 곳은 자금성을 중심에 놓고 2환, 3환, 4환 이런 식으로 순환고속도로가 마치 토성의 고리처럼 두른 형태로 배치돼 있다. 기자들의 취재 동선을 따져 본다면, 특파원들의 사무실이 몰려있는 외교단지, 크리스 힐 등 미국대표단과 일본 대표단이 숙소로 쓰는 세인트 레지스 호텔, 그리고 우리 대표단이 본부로 쓰는 중국대반점 이런 시설들은 몽땅 천안문 광장의 오른쪽에 위치해 있다.
그런데 메리어트 호텔은 댜오위타이와 가깝긴 하지만 정 반대인 천안문 광장의 왼편에 자리 잡고 있다. 결국 취재란 건 시간과의 싸움인데, 이렇게 되다 보니 크리스 힐이나 사사에 일본 측 대표의 얘기를 듣기 위해 만만치 않은 북경의 교통체증을 뚫고 다녀올 경우 길에서 2시간 이상을 소비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지난해 12월 6자회담 때도 천안문광장을 지나칠 일은 많았다. 주요 취재원들을 만나야할 장소와 숙소 사이에 천안문광장이 위치해 있기 때문.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이동하는 시간대가 저녁 9시 뉴스가 임박해 가장 바쁜 시간이라는 것. 그래서 단 한 번도 잠깐이나마 차에서 내려 구경을 할 시간이 없었다. 당시 북경 땅을 처음 밟아본 나로선, 여간 안타까운 일이 아니었다.
두 번째 중국방문. 이번 경우는 좀 달랐다. 이틀째 되는 날 점심시간을 포함해 약 3시간 정도의 짬이 났다. 택시를 잡아 필담(筆談)으로 천안문 광장으로 향하자고 했다. 북경의 택시는 친절하고 영수증까지 인쇄해 주는 등 서비스가 좋은 편이다. 다만,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인데 가야 할 장소를 적어 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날은 청명했고,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는 아직 이른 시간인데도 자금성 천안문 앞은 관광을 온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천안문 입구엔 붉은 깃발들이 휘날리고 있었다. 날렵하고 운치 있는 경복궁과는 달리 천안문은 일단 보는 사람의 시선을 불편하게 했다.
자금성의 규모는 생각했던 것 보다 크지 않았다. 어떤 감흥이 밀려오는 것도 아니었다. 꽃과 푸른 잎들을 찾아볼 수 없는 황량한 계절 탓일까, 중국에서 가장 크다는 목조건물 태화전이 수리중이어서 그랬을까.
각 건물이나 지붕의 모양보다도 단청의 색조, 지붕의 정문(正吻 : 용마루 양끝의 장식)이 눈에 들어왔다. 태화전의 전각 자체는 볼 수 없었지만, 태화전의 둘레엔 여러 개의 구리 항아리가 세워져 있었다. 황제의 권력을 상징하는 거라고 했다. 황제의 권력은 시간과 도량형으로 추상화되고, 구리 항아리는 도량형을 쥔 자로서의 힘을 나타낸다는 얘기.
관광객들은 주로 중국인이었고, 이들은 사진을 찍어가며 혹은 설명을 들어가며 쾌활하게 떠들며 자금성 안을 활보했다.
자금성이라는 궁궐, 그 안에 거하던 절대 권력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객관화된, 화석화된 껍데기일 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과도한 해석일지 몰라도 혹 중국정권은 <자금성 관람>을 통해서 현재의 체제가 우월하단 얘기를, 그 오랜 역사 속에서 숨 한번 제대로 쉬지 못했던 천민들에게 “자 보라.” “마음껏 거닐어라.” “황제의 침실, 황후의 침실을 엿보라.”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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