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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악어와 악어새의 결별 II / 2007.05.22.
    카테고리 없음 2015. 8. 15. 16:52

    시간을 거꾸로 돌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3년6개월 전쯤. 나는 홈페이지에 “악어와 악어새의 결별?”이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썼다.

    http://www.eye4all.com/technote/read.cgi?board=note&y_number=36

    그리고 오늘(21日) 국정홍보처에선 국무회의를 통과한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방안'을 발표했다. 3년 반 전과 오늘. 어찌 보면 별로 다를 바 없는 현상인데, 내가 수용하는 느낌은 당시와 많이 다르다.

    이미 지난 2003년에 한 차례 겪었던 요란한 굿판이 왜 다시, 이른바 정권 말기에 벌어지는 것일까?

    골자만 추려보자면, 정부는 세종로 정부청사 주변의 기자실 16곳을 없애고 그 대신 외교부 1층에 <통합 브리핑룸>을, 그리고 2층에는 각 사당 4명이 앉을 수 있는 <통합 송고실>을 두기로 했다는 것. 이건 사실 현상적인 측면이고 좀 더 들어가 보면, 기자와 정부관계자의 접촉을 차단하겠다는 의도가 들어가 있다.

    사실 노무현 정권과 언론과의 갈등관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데 - 이렇게 방관자적인 목소리로 말할 수 있는 건진 모르겠지만 - 이번 일을 촉발시킨 사건이 있다.  얼마 전 보건복지부에서 보도자료를 낸 적이 있다. 당일 저녁,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나온 기사를 보고 노무현 대통령은 “진노”했다.  그리고 “몇 사람이 기자실에 죽치고 앉아 기사 방향이나 담합한다.”는 그 유명한 발언이 나왔다.

    요지는, 왜 정부의 정책이 액면 그대로 국민들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어떤 “렌즈”가 개입해 ‘그들’ 맘대로 체를 치고 걸러내 정부의 의도와 다른 결과물이 매스미디어를 타고 전파되느냐 하는 불만인 거다. 그리고 그 원인을 ‘출입처에 기생’하며 관리들에게 호통치고, 밥과 술을 얻어먹고, 쓸데없이 담합하려고 하는 기자들, 바로 기자들이 문제인 거라고 파악하고 있는 거다.

    바로 그 시선이 핵심이다. 국정홍보처의 브리핑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듯 이번 정책은 제목이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이지, 실은 “후진적인” 기자사회의 관행을 일소하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젖혀야 한다는 참여정부의 ‘가슴 뜨거운 열정’의 발로인 것이다.  그리고 그 밑바탕엔 제 1공화국 이래 유례없이 “정권의 레임덕”이란 말을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듯 작동하고 있는 참여정부의 ‘도덕적 비교우위 강박증’이 깔려있는 듯하다.  누구보다 앞서 깃발을 들고, 누가 뭐라고 하던 이 사회의 선진화, 시스템적인 개혁을 앞당기겠다는 숭고한 정신이 동력이다.     

    2003년 칼럼에서 보듯, 난 그 정신을 비웃거나 문제 삼고 싶지 않다. 오래 전 과거이긴 하지만 독재정권 시절 기자들이 대형 비리에 연루됐던 일들도 있었고, 지금도 역시 내 자신 스스로 어떤 특권 같은 걸 갖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 볼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번 고쳐 생각해도 정부의 정책이 언론기관을 통해 기사화되는 과정을 바라보는 참여정부의 시선은 강박적(强迫的)이고, 더 나아가 정신이 숭고한 것이라 해도 실행에 옮기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의사결정 과정은 몹시 독재적이다.  그리고 앞으로 참여정부의 ‘이상’을 현실에 옮기는 과정에서, 나는 그 ‘이상’으로 구현하려 했던 아름다운 덕목보다 이 사회의 건전한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왜곡시키는 부작용이 더 크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갖게 된다.      

    ▲ 왜 강박적인 시선이라고 말하는가?

    첫 번째, 정부가 정책을 발표한다. 대형 정책의 경우 십수페이지가 훌쩍 넘어갈 때가 많다. 기자의 역할은 그 보도자료를 순서대로 축약해 기사체로 정리하는 것일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과거엔 믿을만한 정부가 아니어서 비판 기사를 쓰는 게 맞고 지금은 민주화된 시대의 정부니까 그래선 안된다? 말도 안된다. 기자의 역할 가운데는 정부가 발표한 정책을 소개하는 부분도 들어가겠지만 오히려 정부정책이 허점은 없는지, 현실에 옮겨질 수 있는 것인지를 지적해야 한다. 그게 바로 내가 언론학 개론에서 들었던 “감시의 기능”이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은 그 과정을 “죽치고 담합하는”으로 묘사한다.

    물론 언론의 비판과 감시의 기능이 항상 옳은 방향일 수는 없다는 걸 인정한다. 그러나 이 사회는 누구도 잘 알고 있듯이 다양한 목소리들이 공존하고, 구성원들은 그 다양한 목소리 가운데에서 사는 법을 익히 배워 알고 있다.  대통령의 말처럼 “담합”을 통해 모든 언론이 철저하게 한 목소리를 내는 일은 가능한가?  대통령은 TV뉴스를 보고 진노했다는데, 사람들은 TV뉴스 보다 일간지, 주간지, 인터넷매체들의 기사를 클릭 한 번만 하면 다 볼 수 있는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더 많이 입수한다. 그리고 그 매체가운데는 “국정브리핑”도 있다.

    두 번째, 대통령 마음에 맞지 않은 Fact들이 간혹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와 기사화 된 적이 있었다. 누가 발설했는지를 알아내기 위한 “색출 소동”도 여러 차례 벌어졌다. 그래서 끊임없이 청와대는 각 부처에 기자들과 만나지 말 것을 주문하는 ‘지령’을 내렸다.

    이 두 가지 지점을 고려한 끝에 참여정부가 선택한 건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 토대가 될 만한 걸 모두 사라지게 하자”는 해법이다. 칼을 쥐고 있으니 휘두르면 된다는 몹시 폭력적인, 편의주의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관계자들로부터 들리는 얘기는 실로 기괴하기까지 하다. 우선 도렴동 외교부청사 1층에 브리핑룸이 마련될 예정인데, 브리핑이 없을 때는 불도 끄고 문도 잠근다고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기자들이 거기에 “죽치고 앉을” 것이기 때문이란 것.

    2층에는 송고실이 마련된다는데, 역시 “몇몇이 모여 담합하지 못하도록”, 출입처 시스템이 작동하지 못하도록 16개 기자실을 통합하면서도, 각 회사별로 최대 4개까지만, 그것도 유료로 자리를 준다는 것.  역시 “죽치고 앉을” 상황을 막기 위해서, 일과시간 외에는 문을 걸고 기자를 내쫓을 계획이라고 한다.  기자들이 취재를 위해 청사 안에서 관련 공무원을 만나는 것이 금지되는 것은 물론, 전화를 걸어도 안되고, 밖에서 만나도 안된다고 한다.  물론 ‘흉한 소문’이려니 하고 치부하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불가능한 일도 아니란 생각이 든다. 얼마 전 어떤 기사의 출처와 관련해 조사를 받은 한 공무원은 그 후유증으로 건물 로비에서 기자를 만나도 깜짝 깜짝 놀란다.  “고생하셨는데, 제가 한 번 점심이라도 대접하면 안될까요?”라는 질문에... “글쎄요.. 이 근처는 안되구요 차타고 멀리 나가서 한 번 보시죠 뭐.” 라고 그는 답했다. 얼마나 호되게 조사를 받았길래....    

    ▲ 정상적인 커뮤니케이션이 단절될 때.

    자기자랑이라고 하겠지만, 난 나름대로 기자라는 직업에 자부심을 갖고 10여년동안 취재를 해왔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자부심이 있다면, 지연이나 학연에 의지하지 않고 꿋꿋하게 기본에 충실한 접근을 하려고 노력해왔고, 그리 큰 특종을 하지는 못했지만 출입처에서 능력 없는 기자라는 평가는 받지 않았다.  그리고 그 비결은 스스로 사안의 핵심에 대해 공부하고 끊임없이 당국자들과 대면접촉, 전화접촉을 통해 취재를 하는 데 있었다고 난 생각한다.

    검찰취재를 담당했을 때 누구보다도 많이 중수부장, 수사기획관 방 앞에서 보초를 섰고, 들어갈 수 없는, 만날 수 없는 중수부 수사검사들을 만나기 위해서 계단에서 화장실에서 그들을 기다렸다. 물론, 단 한 번도 그들의 업무에 방해가 되는 무리한 취재는 한 적이 없다. 금감원에서도 재경부에서도 외교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옛날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자신하건대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기자들이 학연을, 지연을 뛰어넘어서 기사 한줄, 팩트 한줄을 챙기기 위해서 이런 뼈를 깎는 노력을 하고 있다.

    경제 쪽에서 주로 거론되는 비유지만, 분명히 ‘풍선효과’가 나타나리라.  더 열심히, 더 자주, 더 많이 공부하고 당국자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기자들이 노력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질 때, 지연 - 선배 저 어디 출신입니다...  학연 - 저 어느 고등학교 몇기인데요..  인맥 - 아 저 통폐합 전에 나왔었던 누굽니다. 기억하시죠? 이런 사적 인연들을 이용한 비 정상적인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활발해 질 것이다.  그리고 아이러니인 것이, 이런 사인(私人)간의 사적인? 만남은 그 도덕성 높은 참여정부가 아니라 그 할아비라 해도 금할 방법이 없다. 

    한 인사는 발표가 있기 몇일 전, “이미 지나간 바람을 어찌 돌리겠냐?”고 했다 한다. 정치권에서 이런 조치에 대해 말들이 많은 걸로 들었지만, 냉정하게 말해 그들에겐 현재 칼자루가 쥐어져 있지 않다. 또 그 말 많은 기자들도 제 머리를 깎지 못할 것이다. 기자 스스로 반성해야 할 일이지만 격동의 50년, 우리 현대사 가운데 한 부분들을 겪었던 사람들에게 있어 “기자 = 기득권”이란 등식이 아직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

    계획대로라면 뜨거운 8월의 어느 날. 새로운 선진 시스템이 작동될 것이다. 그리고 어떤 파급효과가 있을지는 그 때 가면 좀 더 분명히 알게 되리라. 내 생각이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자의 기우(奇遇)에 불과한 것인지도 곧 가려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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