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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자회담 5차3단계 회의 취재기 (6) / 2007.3.3
    북핵리포트 2007-2012 2015. 8. 15. 16:28

    막판 스퍼트 

    토요일 늦은 밤 기자실을 찾아온 천영우 우리측 6자회담 수석대표는 크리스 힐과 김계관이 “병아리가 나오기 전에 숫자를 세려하지 말라”고 했던 말의 연장선상에서, “무정란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그 시기가 언제일지는 예측할 수 없지만, 이번 회담에서 뭔가 결과가 나올 거란 얘기였다. 

    상응조치가 더 많이 논의됐다? 

    이어 회담의 진행상황과 관련해, “한국과 중국, 미국 이렇게 3나라가 2번 협의를 했고, 북한과 우리나라는 3~4번은 한 것 같고, 러시아와 양자협의를 했다고 했다.” 여기에 더해 “북측이 비핵화를 위해 취할 조치에 대해서는 확실한 입장을 갖고 있고,  그 보다는 상응조치에 관한 논의가 더 많이 진행됐다.”고도 했다.

    그래서 난 정부 당국자에게 물었다. “상응조치에 관한 논의가 더 많이 진행됐다”고 했는데 왜 북한을 더 많이 만났느냐고. 당국자는 “제일 중요한 게 북한과 협의할 사안이고, 그게 되면 5개 나라가 해야 할 사안이 있다. 양측에 문제가 복잡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에, 일단 모든 국가들과 양자도 하고 삼자도 하고 현재 상황은 우리가 주도해 나가는 것으로 알고 있으면 된다.”고 답했다.  

    당시 취재를 하는 우리 입장에서, 여전히 모든 것이 불확실했다. 지난 해 12월 차2단계 회담 당시부터 중요한 건 균형점을 찾는 일이었다. 북한은 어디까지 내놓기로 했고, 나머지 나라들은 어느 정도까지 투자하기로 했을까. 시소처럼 어느 한 쪽이 먼저 결정이 돼야 반대쪽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상황에서 기사를 쓰긴 너무 어려운 일. 당시에 내가 썼던 스트레이트 기사는 이랬다.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사흘째를 맞아, 각국은 잇따라 양자, 다자간 협의를 갖고, 북한의 핵 폐기에 대한 대가로 줄 중유의 양과 시기 등 '상응조치'의 세부내용을 집중 논의했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측 대표단은 미국, 중국과 2차례 3자 협의를 갖은데 이어, 북한측과 4차례 양자협의를 벌이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벌였습니다.  

    천영우 우리측 6자회담 수석대표는 "핵심쟁점이 한 두 가지로 좁혀지고 있지만, 참가국들이 모두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아,  문안에 대한 합의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번 회담의 전망과 관련해 정부 당국자는 합의문에 대한 최종적인 타결은 이번 주말을 넘겨야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팩트(fact)가 없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기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팩트에 접근할 수 없는, 또 접근했다 해도 회담이 아직 진행되고 있는 만큼 그 팩트가 기사를 쓰는 시점에도 그대로 유효한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 

    여전히 정확하진 않지만, 나중에 회담이 끝난 뒤 당국자들로부터 들을 얘기를 종합해 보면, 당시 상황은 나의 맥 빠진 기사와 달리, 6자회담 5차 3단계 회의가 비로서 절정에 이르기 시작하는 시점이었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는 여러 채널로 감지가 되기 시작했다. 

    200만 킬로와트 요구. vs 이번엔 요구 안했다. 

    베이징 시간으로 2/10 밤 11시57분, 연합뉴스는 “북한이 200만 킬로와트의 에너지 지원을 요구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내보냈다. 많은 기자들이 이 내용이 맞는지를 확인하기 시작했고, 얼마 뒤 우리측 협상단은 “보도 내용과 같은 것은 들은 바가 없다.”고 공식 부인했다. 

    천영우 본부장은 1,2가지 쟁점이 남았다고 했는데, 그날 밤 숙소에 들어가면서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는 “한 가지 쟁점만 남았다”고 했다. 

    짧은 밤이 지나 가고 다시 아침이 왔다. 일요일(2/11) 아침. 그러나 어느 스포츠 메이커의 카피(copy)처럼 “협상은 계속됐다.” 

    천영우 본부장은 그날 아침 숙소를 빠져나가면서, 전날 밤의 부인(否認)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켜서 “북한이 회의석상에서 200만 킬로와트 얘기를 언급하지 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언뜻 와 닿지 않는 언급이었다. 

    북한이 가동하고 있는 원자로는 영변의 5메가와트 흑연감속로 뿐이다. 그러나 1994년 당시 짓고 있던 시설은 200만kw, 50만kw짜리가 각각 하나씩 있었고, 그 용량을 다 합치면 255만kw가 된다. 이 발전 용량을 중유(heavy fuel oil)로 환산하면 연간 40만톤 가량이 된다.  지난 94년 제네바 합의 당시, 미국은 이런 북한의 핵 시설의 가동중단, 건설 중단의 대가를 50만톤으로 쳐주기로 했고, 그래서 연간 50만톤의 기름을 북한에 줬던 것. 

    따라서 “200만 킬로와트”의 언급을 북한이 하지 않았다는 천영우 본부장의 발언은 아주 고도로 계산된, 어느 일방이 아니라 여러 상대를 염두에 둔 거였던 셈이다.

    우선은 연합뉴스가 전날 밤 200만kw의 지원을 요구했다는 기사가 오보라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하고자 하는 의도였고, 두 번째는 다른 협상 참가국들에게, 바깥으로 보이는 북한의 태도나 언변에 압도되지 말고, 그들이 가지고 나온 주머니의 속 - 협상용어로 저쪽 사람들의 밑천(bottom line)이 어느 정도인지 제대로 직시할 줄 알라는 지적이기도 했다. 

    ( 나중에 다시 다룰 생각이지만 이 발언은 2/11 저녁 브리핑까지는 아주 명쾌하게 해석이 됐었는데, 회담이 끝난 뒤 서울에서 천영우 본부장이 KBS 라디오프로그램에 나와 인터뷰를 했는데, 이 인터뷰 내용과는 애석하게도 들어맞질 않고, 오히려 모순이 된다. 언젠가 규명이 돼야 할 것이다. )  

    협상이 끝난 뒤 뒷이야기들을 종합해 보면 천영우 우리측 수석대표는 어쩌면 “통역관”의 역할을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첫째로 조금 전에 언급한 바 있는 “200만 킬로와트의 의미”처럼, 협상에 등장하는 모든 용어들은 저마다 켜켜이 쌓인 역사가 있는 이를테면 사연 있는 말들이기 때문이고, 두 번째로 북한의 김계관 대표가 한 말 가운데 쓸데없는 잔가지를 쳐내고 오롯한 원줄기를 잡아내는 역할, 그리고 신뢰가 없는 북한과 미국의 대화에서 보증인으로서 다리를 놔주는 역할을 천영우 수석대표가 했기 때문.           

    협상이 절정을 향해 상승곡선을 그리면서,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보도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아마도 협상장 분위기가 본국으로 속속 전달이 됐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일부 정보가 언론에 흘러나오는 듯 했다. 

    러시아 쪽에선 이번 회담이 공동선언문이 아니라 구속력이 훨씬 약한 의장성명 정도가 될 거라는 기사가 나왔고, 로이터 통신은 북한과 5개 나라의 이견이 크다고 보도했다. 일본에선 돈을 내지 않을 거란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좋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리고 마지막 결정타. 언제나 6자회담이 열리면 베이징으로 날아와 북한 대사관에 머물며 fact가 많이 담긴 기사를 쓰는 조선신보의 김지영기자 깜짝 놀랄 기사를 날린 것.

    조선신보 김지영기자의 천기누설  

    그 기사에는 1월 베를린 북미 접촉을 통해 이번 6자회담 합의의 골자가 마련됐고, 그건 30일 내에 미국은 북한의 BDA문제를 해결해 주고, 60일 내에 북한은 영변 핵시설을 가동중단 하기로 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에 대해 서울의 정부 당국자는 “그동안 북한이 BDA해법에 대해서, 언약을 받고 나왔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었는데, 그 맥락에서 이해하면 될 것.”이라고 말해서 사실상 조선신보의 기사를 확인해줬다. 

    언젠가 일본의 조총련계 기관지인 <조선신보>와 김지영 기자에 대해서 따로 언급할 기회가 있겠지만, 그녀의 기사를 신봉하지 않을 수 없는 건 우리와는 달리 그녀는 북한이라는 아주 분명한, 그리고 기사를 쓰는 기자와 둘로 분리되지 않는 소스가 있기 때문. 

    그렇다면 왜 북한은 베일 뒤에 가려져 있던 베를린 협상의 내용을 공개한 것인가? 그건, 다른 한 쪽 당사자인 미국, 그리고 미국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중국과 한국을 압박하기 위한 강수였고 역설적으로 이건 협상이 어떤 장벽에 막혀 있음을 의미하는 거였다.   

    “에너지 거래엔 관심 없다.” 

    그리고 그날 밤, 정말 좋지 않은 신호들이 잇따라 울리기 시작했다. 우선 회담장에서 북한, 러시아, 미국 등이 화요일에 떠나겠다고 발언을 했다는 얘기가 전해진 것. 

    우리 당국자들에게 확인을 하려 했지만 “그런 얘기 들은 바 없다”는 답뿐이었고, 이런 해명이 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러시아와 미국의 수석대표는 12일이 마지막 날이 될 거라고 말을 했다. 

    항상 긍정적인 면을 보려고 노력하는 크리스토퍼 힐의 발언은 그야 말로 의미심장했다. “나는 에너지 거래(deal)를 하러 온 것이 아니라 비핵화에 관심이 있다.” 이런 얘기였다. 

    그 당시가 12시 즈음이었는데 프레스 센터의 분위기는 갑자기 험악해 졌다. 그건 밤 12시 언저리를 넘기면 더 이상 기사를 수정할 수 없는 신문들의 입장에서 fact가 맞는건지 아닌지 신속하게 확인이 돼야 하는데, 당국자들이 부인을 하기가 무섭게 다른 나라 수석대표들이 공개적으로 확인을 해주자 결국 윤전기를 몇 번 세우는 상황이 벌어진 것. 

    그런 와중에 너무 한 편으로 쏠리다 보니 흐름을 놓친 부분도 있었다. 외교부 관계자의 설명이었는데, “알아듣기 쉽게 말씀하신 게 있다. 어제까지 잘 언급되지 않다가 오늘 갑자기 많이 언급된 나라도 있지 않느냐. 상응조치와 관련해 오늘 많이 접촉해야 할 이유 있었다.” 이런 얘기였다. 

    러시아를 지칭하는 건 알았지만, 그게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나중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이 발언은 상당히 의미심장한 힌트였다.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몇몇 기자들도 이 발언을 들었는데, 이 단서로부터 뭔가를 유추해내기엔 우리 모두 협상상황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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