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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드라인 (Deadline) / 2008.03.09.
    북핵리포트 2007-2012 2015. 8. 15. 19:01

    지난 5일자 워싱턴 포스트엔 재미있는 만평이 실렸다. 이 만평은 첫번째 컷에서 '이라크'란 제목의 두더지 잡기 게임기 앞에 선 신사를 등장시키는데 다음 컷에서 줌 아웃(zoom-out)이 되면 가자, 터키, 이란, 아프간, 파키스탄 등등의 제목을 단 게임기들이 잇따라 '뿅(pop)' 소리를 내며 튀어나온다.

    사실 라이스 미국 국무부 장관이나 부시대통령은 이제 임기중 씨를 뿌려왔던 외교정책들에 대해 가을 걷이를 해야 할 때가 됐다. 그러나 가을걷이는 커녕 곳곳에서 악재가 터지는 걸 수습하기도 만만치 않은 사정이다. 만평에 등장하진 않지만 북한 핵문제 역시 새로운 악재가 터진 건 아니라도 교착상태에 빠져 있는데 이제 미국은 공공연하게 '시한'을 언급할 정도로 마음이 바빠졌다.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는 베트남에서 돌아온 뒤 공항에서 기자들을 만나, "2008년의 시간이 다 소진돼 가고 있기 때문에 3월 안에 돌파구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실 그는 연초에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는 2월 말까지 신고가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했다가 '신고 시한을 재설정했다'는 보도가 쏟아지면서 곤혹스런 상황을 맞았었다. 그런데 요즘 또 다시 시한을 언급하고 있다는 건 '이대로 가다간 정말 자전거가 넘어질 지도 모른다'는 위기상황에 몰려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힐 차관보는 핵프로그램 신고와 관련해 일종의 우회로가 확정됐는지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미국과 북한의 주장을 함께 기록하는 이른바 상하이 코뮤니케(Shanghai Communique, 1972) 방식도 북-미 양측의 입장차이를 극복하는 "아이디어 가운데 하나"로 논의됐다고 했다. 아사히 신문은 이 대목을 힐 차관보가 아직 여러가지 가능성이 열려있음을 시사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미국은 최근 한국,중국과 함께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논의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 이런 과정을 통해 북한의 신고가 달성됐을 때 미국이 제공할 인센티브에 대해서도 상당히 과감한 제안을 했던 것 같다. 

    힐 차관보가 아직 베트남에 머물 때 한 강연을 보면, 그는 심지어 인센티브 가운데 하나로 평화적 핵 이용, 그러니까 경수로 문제까지 거론한다. (We would be prepared to sit down and discuss with them their aspirations for having a civil nuclear program.)

    그는 왜 "3월"을 강조하고 있을까? 그건 지난 번 칼럼에서도 다뤘었지만 신고문제가 해결되면 미국이 이행해야할 의무, 테러지원국 리스트에서 북한을 제외하는 문제 때문이다. 미국은 매년 3, 4월에 테러지원국 리스트를 확정해 발표한다. 

    국내의 한 당국자는 지난 주 '이번 테러지원국 리스트에 북한이 포함된다고 해도 상황변화가 생기면 언제든 명단에서 해제하는 일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말은 어디까지나 '논리적으로 그렇다.'는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맞다. 오히려 이번에 나올 테러지원국 리스트에 북한이 포함된다면 그 상징성 때문에 부시정부 임기중에 6자회담의 진전은 더 이상 어렵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빨리 답해달라는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의 잇따른 당부에도 불구하고, 북한측의 답변은 아직 들리지 않고 있다. 오히려 지난 한 주간, 북한이 공식 채널을 통해 밝힌 얘기들은 부정적인 것들이었다.

    우선 비핵화 프로세스에 대해선, 지난 5일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이 <강경책은 우리에게 통할 수 없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미국의 선제적인 조치 없이는 더 이상의 진전을 기대하기 힘들 것이란 취지로 말한다.

    글을 관통하는 논리는 연초에 나왔던 북한측 언급, 그리고 그동안 반복,재생산됐던 조총련계 조선신보의 논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눈여겨 볼 필요가 있는 대목은 이번 글이 교착상태에 빠져있는 현 상황을 "매우 예민한 정치군사적 문제"로 묘사하고 있는 부분이다. 직전까지만 해도 김계관 북한외무성 부상을 포함해 북한 관리들은 현 교착상태를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 "기술적인 문제"로 규정하곤 했는데, 미묘하지만 판단이 달라진 것이다.

    물론 <강경책은...>이란 제목의 글이 직접적인 비난의 대상을 미국 정부가 아니라 미국내 보수강경세력으로 잡았고, 구체적으로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명확한 결론이 나와있지 않다는 점에서 북한이 타협의 여지를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그리 좋은 신호가 아니라는 건 분명하다.

    두 번째, 북한은 이명박정부에 대해 처음으로 비난의 목소리를 냈다. 지난 3월6일 조선중앙통신에 보도된 조평통 대변인 담화를 보면 북한은 한국정부를 "남조선 보수집권세력"으로, 이어 박인국 외교정책실장의 유엔 인권위원회에서의 발언을 "극악한 망언"으로 규정했다.

    이어 이명박 정부가 태생적으로 "남조선 보수집권세력의 혈통"이라면서, 오늘날 "대규모 북침핵전쟁연습"을 벌이고, "북한 체제와 제도를 중상모략"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조평통 대변인 담화는 결론적으로 이번 정부가 "10.4 선언의 정신을 거역하고 있다"면서, "분별있게 처신하라"고 당부했다. 

    북한으로선, 북한 체제의 인권상황에 대해 '북한이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call upon)'고 요구한 한국측의 발언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이번에 제네바에서 생긴 일은 앞으로 이명박정부의 대북정책이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를 함축적으로 잘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북한으로선 더 이상 반응을 미뤄선 안되겠다.'는 판단을 했을 것 같다. 

    지난 2006년 반기문 외무장관이 UN 사무총장이 된 이후 참여정부는 북한인권 결의안에 대해 찬성표를 던진 바 있다. 시기적으로 따지자면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국제적인 제재가 가해졌을 때였다. 그러나 2007년에는 다시 기권표를 던졌었는데 새 정부가 들어선 2008년 박인국 외정실장의 기조연설을 통해서는 '조용한 찬성'을 넘어 '목소리를 내는 찬성 입장'을 천명할 것임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무위에 그치긴 했지만 북한에 대해 줄곳 강경한 목소리를 내던 사람을 통일부장관에 내정했던 대목이나 통일부에 북한 인권담당 부서를 만들기로 한 것 등등을 보면 이명박 정부의 접근법은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의 이른바 '내재적인 접근'과는 다른 접근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의 당국자는 이와 관련해 기자들에게 백그라운드 브리핑을 하면서 "북한 인권의 심각성은 국제사회가 공통적으로 인식하고 있고 우리 정부도 공감해왔다. 인권은 인류보편적 가치에 관한 문제라는 인식을 했다는 것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왜 지난해와 입장이 달라졌느냐.'는 질문에 대해 "이명박 정부의 외교가 창조적 실용 외교인데 이걸 외교에 투영"하는 것이며, "간단하고 명료하게 우리의 인식을 밝히는게 실용이고, 필요한 자리에서는 필요한말을 한다는게 실용 외교다."라고 답변했다.

    2.13 합의, 그리고 10.3 합의의 주역인 천영우 평화교섭 본부장은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인천공항을 경우한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를 공항에서 만나는 등 마지막까지 애를 쓰는 모습이었다. 경우가 다르긴 하지만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미국 국무부 내에서도 연례 인권보고서에 북한과 관련해 어떤 용어를 쓸 것인지를 두고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물살의 방향은 바뀌기 시작한 듯 싶다. 

    연합뉴스 이우탁 기자는 3월9일 "북.미 이달중 회동 가능성.. 6자회담 방향 기로"라는 기사에서 복수의 외교소식통을 인용해 "베이징이나 서방의 3국에서 북.미가 비공식 접촉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물론 당장 지금이라도 북한이 어떤 결단을 내리고, 미국이 그토록 원하는 "신고"를 해 준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 부시대통령도 매케인에 대한 공식 지지의사를 밝히면서 이라크 바로 다음으로 북한문제를 언급했을 정도로 상당히 지대한 관심을 쏟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부시 행정부가 2007년 BDA문제 해결과정에서 보여줬던 것 같은 대단한 결단을 내리기엔 부시의 잔여 임기는 너무 짧다. 특히나 이번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의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로 경제문제와 함께 외교문제가 부각되고 있는 만큼 부시행정부의 행동거지는 더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오바마를 겨냥한 힐러리와 매캐인의 공격은 "독재정권의 지도자와도 조건 없이 만날 수 있다."고 한 오바마의 발언에 집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조선중앙통신은 5일자 글에서 미국의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될지에 관심이 없다고 했지만,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를 떠나 현재 진행중인 미국 대선 판의 흐름은 아무래도 북핵 이슈에 우호적인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정형근 의원은 지난 6일 "북핵문제의 답보상태가 계속되고 3월 말, 4월을 전후해 비료지원 문제에 진전이 없을 시 5~6월 서해 꽃게잡이철이 되면서 테러지정국 해제를 무산시키지 않을 정도의 대남도발 가능성을 우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한은 설정된 것 같고,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의 강도는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작성일 : 2008년 3월 9일


    [참고]

    △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 6일 언급

    http://www.reuters.com/article/worldNews/idUSN0623359720080307

    △ 이른바 '병기(倂記)'아이디어와 관련한 요미우리 기사

    http://www.yomiuri.co.jp/dy/world/20080307TDY07306.htm

    △ 크리스토퍼 힐 베트남 Chulalongkorn 대학 강연

    http://www.state.gov:80/p/eap/rls/rm/2008/02/101755.htm

    △ 조선중앙통신《강경정책은 우리에게 통할수 없다》

    http://www.kcna.co.jp/calendar/2008/03/03-05/2008-0305-005.html

    △ 조평통 대변인 담화, "남조선의 보수집권세력이 《북인권》망언."

    http://www.kcna.co.jp/calendar/2008/03/03-07/2008-0306-011.html

    △ 박인국 외교정책실장 UN발언

    http://www.mofat.go.kr/webmodule/htsboard/hbd/hbdlist.jsp?typeID=6&boardid=235

    △ WP, 연례 인권보고서 관련 갈등

    http://www.washingtonpost.com/wp-dyn/content/article/2008/03/04/AR2008030402486.html

    △ 부시대통령 북한관련 발언

    http://www.whitehouse.gov/news/releases/2008/03/20080305-4.html

    △ 동아일보, "북한, 1월 李당선인측에 회동제의"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803050173

    △ 정형근 "북한, 5-6월 대남도발 가능성 우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3/06/2008030600623.html

    △ 최성, '5,6월 북한 도발설은 총선 앞둔 신북풍'

    http://www.cbs.co.kr/radio/sisa/show_sisa.asp?idx=768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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