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비" / 2008.02.24.북핵리포트 2007-2012 2015. 8. 15. 18:54
최근 미국 워싱턴의 날씨는 몹시 변덕스럽다. 늦봄처럼 따뜻했다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 매서운 삭풍이 몰아치곤 한다. 어차피 봄이 오기 전 일기가 고르지 못한 건 서울도 매한가지인 만큼 이해 할 수 있다고 치자. 그러나 하나 이해할 수 없는 건 분명히 비가 내리는데, 그 비가 내리면서 얼어버리는 현상이다. 내게 겨울 비는 보통 날씨가 포근하다는 증거로 해석됐었는데, 포근하긴 커녕 매섭게 차가운 날씨가 내리는 비를 재료로 마치 얇은 얼음막을 코팅하듯 도로와 자동차 나무 등 지상의 모든 것을 얼려버리니 이것이야 말로 사람을 당황스럽게 한다.
지난주 6자회담과 관련해 두드러지게 많은 움직임이 있었다. 우선 미국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가 베이징에서 북측 김계관 외무성 부상을 만났고, 서울로 건너와 다음주 출범할 이명박 정부의 외교안보라인을 접촉했다. 한국측 수석대표인 천영우 한반도 평화교섭 본부장도 곧이어 중국으로 건너가 김계관 부상을 만났다.
베이징에서는 에너지지원 실무그룹 회의가 열렸다. 그리고 북한으로 보낼 미국의 2차분 중유 수송선이 선적을 마쳤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12일 북한에 들어갔던 지그프리드 해커 박사 일행은 불능화를 위한 11가지 조치 가운데 8개가 완료된(나머지 1개는 진행중, 2개는 미실시) 영변 5메가와트 원자로, 그리고 연료봉 생산공장, 재처리시설 등의 사진을 찍어 언론에 공개했다. 일행 가운데는 북한 핵학자의 재취업문제 등을 모색하고 있는 루거의원의 보좌관도 포함돼 있었다. 돈 오버도퍼도 한국의 새 정부 인사들을 접촉하고 개성공단을 방문했다.
세르비아아에서 대사관이 불타는 와중에도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동북아 방문길에 올랐다. 그녀는 6자회담을 의제로 삼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26일에는 북한에서 뉴욕 필하모니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한다.
워싱턴에선 하루가 멀다 하고 한국관련 세미나가 열렸다. 외교협회 등 한국관련 씽크탱크의 웹페이지에는 한국관련 보고서가 쏟아졌다.
애석하게도, 봄을 재촉하는 비 처럼 해석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한 이런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6자회담의 상황은 오히려 더 차갑게 얼어붙는 양상이다.
우선 북한을 보자. 올해 초 북한은 불능화나 신고가 늦어지는 것은 에너지 지원이나 북-미 관계개선 (테러지원국, 적성교역국 지정 해제) 의무이행을 지연시키고 있는 미국을 포함한 다른 참가국들의 책임이라고 밝힌 바 있고 이는 재일본 조총련계 신문 '조선신보'를 통해서 여러차례 반복됐다.
그리고 지난 주 북-미 남-북 6자회담 수석대표 회동, 미국 학자들과의 접촉 등에서 북한은 "현 상황의 문제는 정치적인 것(political problem)이 아니라 기술적인(technical problem) 문제일 뿐."이라고 규정했다.[1] 크리스토퍼 힐은 김계관부상의 발언을 한국 기자들에게 소개했고 조엘 위트(Joel Wit)도 21일 세미나에서 북한 고위 관리로부터 들었다는 이 발언을 소개하면서 '현 상황의 악재를 축소해 평가하려는' (minimalize) 시도로 해석된다고 전했다.
북한이 불능화된 영변 원자로 시설에 대해 이례적으로 직접 사진까지 찍게 하는 등 홍보에 열을 올리면서, 다른 한편으로 외교채널을 통해 6자회담의 교착상태를 '기술적인 문제'라는 동일한 '어휘'로 평가하고 있는 건, 현 상황을 앞으로 어떻게 관리해갈 것이냐에 대해 어느 정도 판단이 굳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부연하자면 지난 칼럼에서 언급한 것 처럼[2] 북한이 미국의 테러지원국 해제 조치가 없는 한, 불능화 조치를 중단하지는 않고 가능한 한 천천히 진행시키면서 새로운 환경이 조성될 때 까지 기다려 보자는 전략인 것이다.
미국쪽 역시 어떤 '결심' 혹은 '판단'이 선 것 같다는 느낌이다. 가장 크게 부각될 수 있는 건 2가지 정도. 하나는 단계적 신고나 구두신고가 아니라 "완전하고 검증가능한 신고"가 부시정부의 최소한의 요구치 (bottom line)으로 굳어졌다는 점이다. 또 다른 하나는 그동안 부시행정부가 의도적으로 언급을 자제해왔던 시리아-북한 핵협력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는 것.
돌이켜 보면 최근 미국이 단계적인 신고(플루토늄을 먼저, 우라늄 등은 나중에 거론하는)나 구두신고(우라늄이나 시리아 핵협력과 관련해 문서가 아니라 구두언급의 형식으로 신고하는 방안)를 추진한다는 보도가 잇따랐었다. 클링너(Bruce Klingner)의 지적대로 '그게 어디까지 사실인지 알 수 없는 일'[3]이지만, 6자회담을 재개하기 위한 여러가지 아이디어들이 한국과 미국 등에서 논의됐고 그 가운데 일부가 북한에 제시됐을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북한은 이러한 미국의 유화 제스쳐에 대해서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현재에도 과거에도 전혀 없는 것을 어떻게 신고하냐.'는 입장을 유지한 것. 한 외교소식통의 말 대로 북한은 '더 이상 얘기해볼 여지'를 주지 않았다. 그래서 미국은 더 이상 '허들을 낮춰주는' 조치로는 진전이 불가능 할 것 같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대표적인 비둘기파 돈 오버도퍼도 지난 21일 "미국이 하한선(bottom line)을 더 낮춰줄 가능성이 있다고 보느냐?"는 한 한국기자의 질문에, "내가 그렇게 봐야하느냐?"고 반문했다. 적어도 2,3개월 전만 해도 6자회담 프로세스에 대해 비교적 긍정적인 전망을 했던 것과 비교할 때 상당한 시점의 변화다.
여기서 라이스장관의 기자회견 내용[4]을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라이스장관은 동북아 순방을 떠나기 앞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6자회담을 어떻게 진전시켜 나갈 것인지 아주 심도깊은(considerable) 토론을 할 예정" 이라고 말한다. 여기까지는 별로 특별할 것이 없는데 문제는 그 다음 부분이다. 라이스장관은 "지금까지 오랫동안 확산 문제에 대해서 오랫동안 걱정해 왔는데 다른 6자회담 참가국들과 함께 어떻게 우리가 확산문제를 다룰지에 대해서 얘기할 것"(Let me just note that we've been concerned, of course, about the proliferation issue for quite a long time and I will talk to our six-party partners about how we use the six-party framework to address proliferation issues.) 이라고 선언한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라이스장관은 "6자 참가국들은 비핵화 뿐만이 아니라 대단히 중요한 확산문제에 있어서도 당근(incentives)을 주는 것 뿐만 아니라 채찍(disincentives)을 드는데도 잘 맞는 조합이라고 생각한다."(Because I am of the mind that we have the right group of countries at that table with the right set of incentives and disincentives to address not just denuclearization, which obviously is extremely important, but also proliferation.)고 밝힌다. 이같은 라이스장관의 발언은 최근 다른 언급들과 비교해 볼 때 놀랄만큼 전혀 다른 맥락이다. 게다가 라이스장관은 뉴욕필하모니오케스트라의 평양공연과 관련해서도 심사가 별로 좋지 않은 듯 하다."북한 정권은 북한 정권일 뿐이다.(the North Korean regime isstill the North Korean regime.)"
라이스장관은 왜 느닷없이 '확산(proliferation)' 문제를 거론하고 있는 것일까? 라이스 장관이 언급하는 '확산'의 의미는 '앞으로 시리아와의 핵협력설을 문제삼고 나서겠다'는 북한을 향한 경고로 들린다. 한국의 문화일보는 이와 관련해 크리스토퍼 힐이 이명박 새정부 외교안보 관계자를 만나서 북한-시리아 핵협력 관련 자료를 제공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5]
부르스 클링너 선임연구원의 얘기를 들어보면 문화일보의 보도, 라이스장관의 언급 등이 좀 더 명확하게 이해된다.
21일 주미한국대사관에서 강연을 한 클링너 선임연구원에게 필자는 "얼마 전 게리 세모어도 한 인터뷰[6]에서 밝힌 바 있지만 왜 시리아-북한 핵 협력설과 관련해서는 얘기가 나온지 한참 됐는데도 관련 정보가 유통이 안되는 거냐?"고 질문했다. 부르스 클링너는 "한반도 문제에 관심있어하는 사람들 모두가 궁금해 하는 부분"이라면서 "부시 행정부 내에서도 아주 제한된 사람만 시리아-북한 핵협력설과 관련해 정보를 쥐고 있는데 보안이 철저해서 전혀 새나오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의 태도 자체가 '답'이 될 수 있다면서,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가 그 문제를 물어보면 조금만 기다려 보라고 하면서 답을 하지 않는다. 부정을 하지 않고, 답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폭격한 시리아의 시설이 북한 기술이 제공된 핵 시설임에 틀림 없다는 얘기나 다름 없다."고 했다.
이어 그는 시리아-북한 핵협력 문제가 지금까지 이렇게 보안이 유지된 이유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합리적인 설명을 한다. "지금까지 6자회담이 나름대로 평가를 받았다는 건 6자회담이 비확산의 틀로도 작동한다는 의미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북한이 한편으로는 6자회담의 틀에 참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기술을 이전했다면 그것은 6자회담 틀에 있어서 굉장한 타격일 수 있다. 내가 듣기로는 부시대통령이 이 부분에 대해서 상당히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더라."
물론 라이스 장관은 22일 기자회견에서 불능화가 이뤄지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 평가를 했다. 그러나 핵 전문가들은 부시 행정부가 제네바 합의(Agreed Framework, 1994)에 의해 이뤄진 '동결(freeze)과 핵연료봉 제거'와 지금의 불능화(disablement)를 크게 다른 것으로 평가하지 않는다.[7]
따라서 라이스의 이번 동북아 방문은 북한에 대한 최후 통첩 - 정말 의미있는 진전을 이룰 생각이 있는 거냐는 - 인 동시에, 중국과 한국, 특히 이명박 정부에 대해 '당신들이 동원할 수 있는 지렛대가 도대체 뭐냐?'면서 이른바 '압박 공조의 수단'을 모색해보는 시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대북정책과 관련해 정확한 자리매김을 하지 않고 있는 - 어쩌면 그걸 정확히 드러내지 않고 있는 - 이명박정부를 향해, 요즘 미국의 매파들은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열거하면서 "강공"을 펼칠 것을 강조하고 있다. PSI[8]는 물론이고 미사일방어체제 MD 참여, 심지어는 38선의 북한 군부대를 후퇴시킨 비교적 성공적인 실험 - 개성공단 사업까지도 도마에 올려놓고 있다.
물론 많은 사람이 지적하는 것 처럼 한 차례 방향을 튼 부시정권의 대북정책이 다시 극적인 정책전환을 감행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19일 AEI 세미나[9]에서 프리차드도 필자의 질문에 답하면서, "부시정부가 지금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별로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과거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이 시기가 인기없는, 임기를 얼마 남기지 않은 부시 행정부의 '막판'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4년, 어쩌면 8년이 될지도 모르는 미국의 새 정부가 어떤 상태에서 어떤 관점을 갖고 북한문제를 풀어가게 될 것이냐를 결정짓는 시기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특히 필자가 여러차례 강조한 바 있지만, 이렇게 모든 것이 유동적인 시기에 한국은, 이명박 정부는 스스로의 '관점'을 분명히 갖고 있어야 한다.[10] 송민순 장관이 이임사[11]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도 바로 그런 맥락이 아니었나 싶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23일 고척동 전 싱가포르 총리 일행을 만난 자리에서 "새 정부 출범으로 북한이 긴장할 이유가 없다"면서"새 정부는 남북한이 화해하고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다른 정책기조와 마찬가지로 '실용주의'에 입각한 접근이길 기대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정부는 Forelgn Affairs 최근호에 "Why North Korea will Not Change"[12]라는 글을 기고한 안드레이 랜코프(Andrei Lankov)의 시점, 그리고 "North Korea Now : Will the Clock Be Turned Back?"[13]이란 글을 쓴 부르킹스의 조지 토라야(Georgy Toloraya)의 진단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요컨대, 미국과 북한의 강경파들은 서로 돕는 위치에 있다. 그리고 그 강경파들의 목소리가 커질 때, 한국 강경파의 목소리가 여기에 더해질 때, 미약하게나마 일어나고 있는 북한 내부의 변화는 싹이 짓밟히고 시계는 다시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아갈 것이다.
작성일 : 2008.2.23
[주]
[1] SAIS 세미나 2.21 / 돈 오버도퍼, 조엘위트
[2] "216일 남았다."
http://blog.naver.com/eye4all/20047390748
[3] KORUS포럼 세미나 2.21 / 부르스 클링너
http://www.koreaembassy.org/han_newspress/event_view.asp?page=1&eventid=401
[4] 라이스장관 동북아 순방 전 기자회견 2.22
http://www.state.gov/secretary/rm/2008/02/101246.htm
[5] 문화일보 / 美, 李정부 외교수석에 '비디오' 전달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80222010302231110020
[6] 게리 세모어 CFR 인터뷰
http://www.cfr.org/publication/15340/samore.html
[7] 21일 한 워싱턴 북핵 전문가는 세미나가 끝난 뒤 일본 기자들이 북한의 핵 물질(연료봉 등)을 처리하는 방법에 대해 질문을 하자 '제네바합의 당시에 영변 5메가와트 원자로의 연료봉을 꺼내 알루미늄 봉인 장치에 넣었었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한 기자가 '아니 그럼 옛날에도 불능화가 이뤄진 적이 있었다는 말인가요?'라고 묻자 상당히 곤란해 하면서 "아 이건 아주 조심스럽게 얘기해야 할 부분인데.... 일단 과거에도 제네바 합의에 따라서 원자로에 있던 연료봉을 꺼낸 적은 있죠.."라고 답했다.
[8] PSI
http://blog.naver.com/eye4all/20046127109
[9] AEI 세미나 2.19 / U.S.-South Korean Relations: A New Era of Cooperation?
http://www.aei.org/events/eventID.1638,filter.all/event_detail.asp
[10] 이와관련해 AEI 세미나에 참석했던 학자들은 입을 모아 "앞으로 대북 접근법을 포함한 한미관계에 있어 가장 중요한 변수가 미국 대선이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프리차드는 매케인이 만약 차기 미국 대통령이 된다면 상당히 비관적인 상황을 맞을 것이라고 했다. 클링너 또한 매케인은 대북문제에 대해서 상당히 비판적인 생각을 갖고 있으며(skepticism), 오바마의 경우도 부시정부 초기에 비관여정책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지만 그렇다고 북한에 대해 "환상을 갖고 있지 않다"고 언급했듯이 부드러운 접근 만을 하게될 것 같지는 않다고 평가했다.
북한과 관련된 매케인의 최근 발언은
http://www.futurekorea.co.kr:81/article/article_frame.asp?go=content§ion=자유논단_칼럼&id=2657 에서 찾아볼 수 있다.
[11] 송민순장관 이임사
http://www.mofat.go.kr/webmodule/htsboard/hbd/hbdread.jsp?typeID=6&boardid=237&seqno=309791&c=TITLE&t=&pagenum=1&tableName=TYPE_DATABOARD&pc=undefined&dc=&wc=&lu=&vu=&iu=&du=
[12] "Why North Korea will Not Change" Andrei Lankov
http://www.foreignaffairs.org/previews/7368/20080301faessay87202/andrei-lankov/staying-alive.html
[13] "Will the Clock Be Turned Back?" Georgy Toloraya
http://www.brookings.edu/articles/2008/0211_north_korea_toloraya.aspx?emc=lm&m=212752&l=61&v=732426
[14] "무샤라프, 칸, UEP"
http://blog.naver.com/eye4all/20047643473
'북핵리포트 2007-2012'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데드라인 (Deadline) / 2008.03.09. (0) 2015.08.15 마지막 시도? / 2008.03.04. (0) 2015.08.15 무샤랴프, 칸, UEP / 2008.02.24. (0) 2015.08.15 남은 216일? / 2008.02.18. (0) 2015.08.15 2.13 합의 1년, 달성한 것과 남은 것 / 2008.02.15. (0) 2015.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