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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on Impossible / 2007.05.20.북핵리포트 2007-2012 2015. 8. 15. 16:48
끊어졌던 민족의 허리를 잇는 경의선, 동해선 철도 시험연결 행사. 6시간 여 생방송을 준비하느라 결국 회사에서 새우잠을 자고 아침을 맞은 17일, 숙직실 창밖으로는 굵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 이래가지고서야, 어떻게 방송을 한담.’
비가 내리면 도라산과 문산역, 제진역 등 곳곳에 배치한 중계차 스탭들이 엄청난 고생을 하게 될 뿐만 아니라 필연적으로 철마가 달리고 있는 원경(遠景)을 당겨 찍어야 하는 중계 카메라들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많았던 것. 또 그렇게 되면 날씨 좋은날을 상정해 짜 두었던 시나리오들, 큐시트들도 모두 틀어지고 차질을 빚게 될 거란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나 방송 중간에 나갈 CG를 Tape에 옮기고, 몇몇 사전제작물에 음악을 입히고 하는 최종 마무리작업을 마친 9시 전후가 돼서 보니, 언제 날씨가 흐리기라도 했냐는 듯 거짓말처럼 아주 맑고 화창한 날이 돼 있었다.
난 혼잣 웃음을 지으며 ‘하늘이 길일을 축복한 거야...’ 그렇게 맘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걱정을 한 건 관료들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그날 아침 광화문 경복궁 옆 주차장에서 이재정 장관은 하루 전 날씨 걱정을 얘기했던 MBC 박재훈 기자를 멀리서 보자마자, 어린아이처럼 반갑게 달려오며 ‘그거 보라’는 듯 연신 맑게 갠 하늘을 손가락으로 찔렀다고 한다.
5월17일. 정신없이 지나간 하루. 시험운행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물리적인 철도 연결 사업이 끝난 뒤 한참동안이나 군사보장 문제 때문에 지연돼 왔던 사업이라서 큰 의미가 있었고, 더구나 지난해 시험운행 하루 전 취소가 됐다가 미사일발사 실험, 핵실험 같은 큰 일이 있은 뒤 다시 평화의 기운이 한반도를 감돌면서 결국 성사된 일이라서 기쁘게 박수를 칠 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저 TV를 바라보며 느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감정이입을 할 만한 여유는 없었다. 그럼에도 하늘색 지붕의 녹색 열차가 동해선 제진역에 도착하고, 많은 사람들은 아니지만 실향민으로 여겨지는 어르신들이 그 열차와 그 열차에 탄 북측 인사를 환영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잠시 눈물이 핑 돌기도 했다.
5월18일, 큰일을 무사히 치르고 난 다음날. 점심을 좀 일찍 먹고 여유를 부려보고 싶었다. 외교통상부가 도렴동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통일부 취재를 맡고 있는 박재훈 기자와 경복궁으로 산책을 간 것. 떠날 때만 해도 구름사이로 간간이 햇살까지 내리는 날씨였는데 효자동 경복궁 돌담길로 얼추 청와대 근처까지 다가갔을 무렵부터 한 두 방울씩 비가 내렸다.
돌아갈까 잠시 고민을 하다 이왕 길을 나선 거 많은 비가 아니라면 경복궁 흙길을 밟아보고 가자는데 동행했던 후배와 합의가 이뤄졌다. 경복궁은 근처 직장인들을 위해 점심시간에 싼 값으로 경복궁을 산책할 수 있는 할인표를 판다.
민속박물관 근처까지 갔을 때, 비는 당장 피하지 않으면 옷이 다 젖을 정도로 몹시 굵어졌다. 민속 박물관 1층엔 “Cafe 5”라는 찻집이 있다. 거기서 빗줄기가 잦아질 때 까지 잠시 기다리기로 했다.
일종의 직업병이겠지만, 그 곳에서 우린 다시 일 얘기를 시작했다. 철도 시험운행이 끝난 그날 밤, 미국 현지시간으론 아침, 워싱턴 포스트는 자산규모로 따져 미국에서 4위정도 되는 와코비아 은행이 북한자금을 중개하는 역할을 맡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는 기사를 썼다. 기자는 Glenn Kessler, 한반도 문제에 관한한 지명도가 있는 기자였다.
난 그 기사가 맞는 거라면,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기사가 그 대로 실현된다면, 철도 시험운행 만큼이나 중요한 사건이라고 판단한다. 말하자면 앞서 “결자해지”라는 제목의 글에서 언급했던 “Mission Impossible - 불가능한 임무”가 가능해지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마카오 방코델타 아시아에 묶여있는 북한자금 2천5백만달러를 옮기는 게 쉽지 않았던 건 지난 3월14일 발표된 미국 재무부의 조치(final rule)로 BDA는 더 이상 직.간접적으로 미국 은행과 송금관계(Correspondent Account)를 맺는 게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금융의 중심, 신용평가의 중심인 미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다른 나라의 금융기관이 미국금융기관조차 감당할 수 없는 행위를 도맡아 한다는 건 역시 불가능하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만약 미국의 금융기관이 이 문제를 맡아 처리할 수 있다면, 더구나 그것도 자본시장에 상장돼 있는 자산규모 4위 대형은행이 관여해주기만 한다면 ▲ 북한자금 송금 문제는 아주 확실하게 처리가 되는 것이고, ▲ 이를 통해 북한이 바라마지 않았던 ‘정상적인 국제금융거래’에 분명하고도 힘 있는 큰 발자국을 내딛는 효과를 내게 된다.
워싱턴 포스트의 기사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 건, 아직 성공여부를 장담할 수 없다고 하지만, 미국 부시정부가, 금융문제를 매개로 북한을 한없이 압박해왔던 재무부가 Mission Impossible, 불가능한 임무를 가능케 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미국 금융기관이 BDA와 거래를 못하게 한 Final Rule을 피해서, 북한자금에 관여하지 못하게 한 애국법 311조의 빈틈을 찾아 2천5백만달러를 중개해줄 해법을 찾아내기 위해 머리를 짜내고 있다는 얘기인 것.
“선배, 아마도 둘중에 하나인 것 같아요.”
“뭐가?”
“부시가 UFO에 의해서 납치가 됐던지, 아니면 북한이 뭔가 부시정권의 스캔들을 입수해 압박하고 있던지...”
“뭐라고?”
“농담이에요. 하지만 생각해 봐요. 시점을 작년으로 되돌려서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안이 채택되고, 미국이 금강산관광이나 개성공단 사업까지 문제 삼던 그 시점에서 얘기를 한다면 앞으로 ‘부시가 UFO에 납치될 거다.’하는 얘기와, ‘부시정부가 BDA 북한자금 문제를 풀어주기 위해서 법망을 피하는 해법을 찾을 거다.’는 얘기 중에 어떤 것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릴지...”
나는, 말 되는 농담이라고 평가해주며 함께 껄껄 웃었다. 마침 빗줄기가 가늘어지는 듯 했고 그래서 우린 빠른 걸음으로 Cafe 5를 나섰다.
그제 간접적으로 접촉한 와코비아 은행 대변인은 워싱턴포스트에 나온 이상으로 언급할 것이 없다고 말한 뒤, 18~20일 사이에 뭐가 나올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미국 재무부가 5월10일쯤 결정할 거라는 외신보도가 있었던 걸 감안하면 해법이 아주 순조롭게 마련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이유가 어찌됐건, 미국 부시정부가 Mission Impossible을 가능케 하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은 너무나 다행스럽고 잘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모든 일엔 그늘도 있는 법. 지금 미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과정은 어찌 보면 불가능에 가까운 돌파구를, 미국의 법망을 피해 만들어내려는 과정이기 때문에 그게 “실패”로 돌아갈 경우 되돌아올 파장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클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정부가 미리 밝히지 않은 가운데 워싱턴 포스트가 단독취재를 한 과정을 유추해 보면 아마도 이런 해법을 반대하는 세력이 재를 뿌리기 위해 언론플레이를 했을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해 반대여론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의도였을 거고 실제로 그 기사가 나온 뒤로 매파 볼튼이나 미국 의회의 강경파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번 시도가 실패로 돌아갈 경우 ▲ 미국 금융기관을 통해 북한자금을 중개하는 계획은 완전히 물 건너갈 가능성이 99%쯤 된다. ▲ 그리고 많은 걸 기대했던 북한은, 미국의 입장을 생각해서 이례적으로 4월13일, 20일, 5월15일 이렇게 3차례나 2.13 합의 이행의지를 대외적으로 공표했던 북한이 정 반대 방향으로 목소리를 높일 가능성이 크다. ▲ 다시 말해 지금도 흔들리고 있는 6자회담의 구도자체가 굉장한 위기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얘기다. ▲ 마지막으로 한국 정부는 반전을 위해 무리수를 둘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면 아직도 완전히 폐기하지 않은 수출입은행 카드를 다시 꺼내들고 나설 확률이 크다는 얘기다.
아마도 이르면 이번 주 어느 시점이 많고 탈도 많았던 이른바 “BDA Process”의 분기점(分岐點)이 될 개연성이 크다.
그리고 바로 그 시점에 미국정부는, 부시대통령은 국내적으로 Mission Impossible을 가능케 하는 마술을 부릴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북한은 지금껏 강조해왔던 비핵화 의지가 말 뿐인 건지 아니면 그 이상인 건지 분명히 드러내 보이게 될 걸로 보인다.
경복궁에서 정부청사로 가는길. 가늘어지던 빗줄기는 어느새 그치고 거짓말 처럼 다시 태양이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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