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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은 없다? / 2008.02.03.
    북핵리포트 2007-2012 2015. 8. 15. 17:55

    크리스토퍼 힐 미국측 6자회담 수석대표는 지난 30일 미국 암허스트대학에서 강연을 했다. 기조연설과 이어진 질의 응답을 합쳐 1시간이 넘게 진행된 이 강연의 제목은 "외교에 있어의 윤리문제 - The Ethics of Diplomacy: Conscience and Pragmatism in Foreign Affairs"였는데, 정작 힐 차관보가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 건 북핵외교에 대한 설명이었다. 

    최근 칼럼에서도 몇 번 다뤘지만 교착상태에 빠져있는 6자회담과 관련해 요즘 미국에선 날선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라프코위츠 특사의 발언 이후 워싱턴포스트나 뉴욕타임즈에 등장하는 북한핵문제와 관련한 기사의 빈도가 눈에 띄게 늘었다. 힐 차관보의 강연도 이런 흐름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는 북한 핵프로그램 신고문제의 최대 쟁점 가운데 하나인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과 관련해, 매우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우라늄을 농축하려면 수천개의 원심분리기(centrifuge)를 가동해야 하고, 북한이 원심분리기의 주요 부품인 고강도 알루미늄관을 수입한 사실은 북한이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로 받아들여져 왔다.  

    그러나 힐 차관보는 미국외교관이 북한 현지에서 확인한 결과 그 알루미늄관은 전혀 다른 용도로 사용됐다고 말했다. (we've seen that these tubes re not being used for the centrifuge program. And We've had, American diplomats go and look at these aluminum tubes.) 그리고 알루미늄관의 샘플을 서류가방에 넣어 가져와 분석해본 결과, 미국이 의심하던 바로 그 알루미늄관이었다고 했다. 더 나아가 그는 "미국은 북한이 그것 외에 다른 고강도 알루미늄관을 수입했다는 정보를 갖고있지 않다"고 밝혔다.  

     힐 차관보의 발언은 2002년 10월 켈리 특사의 방북 이후 한반도를 위기 상황으로 몰고 갔던 이른바 '2차 핵위기'의 원인이 됐던 북한의 우라늄 농축 계획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거나, 적어도 북한이 2002년 당시 또는 그 이전에 그런 계획을 추진하려 했는지 몰라도 현 시점에선 '달성하지 못한 서류상의 계획일 뿐'이란 사실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내용상으로만 따지자면 별로 새로운 게 아닐 수 있다. 그동안 관련 학계나 한국의 외교 소식통들의 입을 통해서는 공공연히 거론돼왔던 내용이다. 6자회담 초기 'HEU - 고농축 우라늄'으로 불리던 것이 'UEP -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로 바뀌어 불리게 된 것도 이런 내막과 관련이 있다. 또 올 초 북한 외무성 대변인 담화도 비슷한 내용을 다뤘다. 

    그러나 6자회담에 수석대표로 참가하고 있는 미국 국무부 관리가 학생들과 언론인들이 모여있는 가운데 공개적으로, 그것도 세부사항까지 분명하게 이런 내용을 거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를테면 '왜 신고 시한을 넘겼느냐'는 국제적인 압박에 시달린 북한이 내놓은 지난 1월 4일의 '해명'과는 그 의미가 사뭇 다르다. 

    바로 다음날인 1월31일, 워싱턴포스트 21면에는 "칸 박사가 아는 것 ; What A.Q. Khan Knows"라는 제목의 기고문이 실렸다. [코리안 엔드게임 ; Korean Endgame]의 저자 셀리그 해리슨(Selig S. Harrison)이 쓴 글이었다.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가 언급한 건 북한이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추진했다는 근거 가운데 하나, 고강도 알루미늄관 문제였다면 해리슨은 또 다른 하나인 원심분리기(centrifuge) 문제를 따지고 있다. 

    무샤라프(Pervez Musharraf)는 그의 자서전 [ In the line of Fire ]을 통해 파키스탄 핵 과학의 아버지 칸 박사(Abdul Qadeer Khan)가 북한에 수천기의 원심분리기를 제공했다고 기록한 바 있다. 그런데 평양은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면 파키스탄의 무샤라프 아니면 김정일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얘기인데, 과연 누구 말이 맞겠느냐는 것이 해리슨의 접근법이다. 

    해리슨은 우선 최근 점심자리에서 김명길(Kim Myong Gil) 북한 유엔대표부 차석대사와 나눴던 얘기를 인용한다. "(미국은)왜 칸 박사를 협상에 참여하라고 하지 않는 겁니까?" "수출 송장(invoice)이 있답니까? 우리한테 증거를 보여주세요." (Why don't you invite A.Q. Khan to join the negotiations? ... Where is the invoice Give us the evidence." 

    이어 만약 칸 박사가 북한에 그런 걸 넘긴게 사실이라면 파키스탄의 이웃나라인 이란이나 시리아에도 넘기지 않았으리란 보장이 없을 텐데 왜 IAEA는 또 미국은 무샤라프의 보호아래 숨어있는 칸 박사에 대해서 사실확인을 해보려는 시도를 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노출을 두려워해서? 아니면 그런 물건을 넘겼다는 증거가 없던지.." 

    해리슨은 그의 글에서 또 다른, 제 3의 가능성을 언급한다. "부시정부를 돕기위해 없는 사실을 지어냈던지.." (Still another is that Musharraf ... invented the "facts" in his memoir to curry favor with the Bush administration ; by strengthening its case against North Korea..." 이와 관련해 해리슨은 지난 2004년 2월 무샤라프가 뉴욕타임스와 가졌던 인터뷰를 상기시킨다. 그 인터뷰에서 무샤라프는 파키스탄의 핵 기술이 평양에 전달됐다는 미국발 보도에 대해 "단호하게 부인했다 ; emphatically denied"고 돼 있다는 것. 

    다시 말해 해리슨은 원심분리기를 북한에 제공했다면서 핵기술 이전은 아니라는 무샤라프의 모순된 발언이 그의 진실성을 의심하게 하기에 충분하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시간으로 29일 중앙일보 강찬호 특파원은 워싱턴 외교소식통을 인용해 6자회담의 새로운 돌파구, 이른바 '단계별 신고' 해법이 추진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인용하자면, "북한이 신고서에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과 (시리아) 핵 확산 의혹은 비공식(private) 채널에서 계속 논의한다'는 주석(footnote)을 명기하는 데 동의한다면 북한이 지금까지 신고 내용으로 주장해 온 플루토늄(약 30kg) 신고만으로 신고서를 받아들여 돌파구를 연다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는 것. 

    서울의 당국자들은 이 보도에 대해 '화끈한 부정'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그 이후 2002년 2차 핵위기의 혼란스런 진실,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과 관련해 여러가지 설명들이 나오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인적 왕래도 잦았다. 미국 국무부의 성 김 과장이 북한측 초청으로 한국을 거쳐 31일 평양을 방문했고 중국의 왕자루이(王家瑞) 대외연락부장도 북한으로 건너가 김정일 국 방위원장을 만났다. 중국의 신화통신은 김 위원장이 중국 대외연락부장 일행에게 "북한은 6자회담의 추진을 일관되게 지지하고 6자회담의  합의사항을 이행해야 한다는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 "최근 발생한 어려운 상황은 일시적인 것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요컨대, 현재의 국면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끌기엔 너무 부담스러운 시기임에 틀림 없다. 그래서 뭔가 돌파구를 만들어야 할 터인데, 지난해 10월3일 합의와 일관되게 그나마 설득력이 있는 묘안이 나올 수 있느냐가 문제고, 결국 북한이나 미국이나 거북하긴 마찬가지인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의 실체'를 건드리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게 아닌가 하는 판단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돌파구를 마련한다는 것이 쉽진 않을 듯 싶다. '설득력 있는 묘안'이 문제가 아니라, 부시 대통령의 정책 자문역 그리고 연설문 작성자로 활동하다가 지금은 미국 외교위원회( Council on Foliegn Relations ) 시니어 펠로우로 활동하고 있는 마이클 거슨(Michael Gerson)의 가시 돋친 말이 그렇듯, "북한과의 협상 자체가 과정이 아닌 목적이 돼 버린 눈먼, 허황된 접근법을 걷어치우고 냉전시대의 대-동구권 외교가 그랬듯이 '제대로된 압력'을 가하라"는 강경파들의 목소리가 엄연히 상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월2일 북한 당국이 미국 국무부 성 김 한국과장과 "진지하고 실무적인 분위기"에서 6자회담의 '10.3합의' 이행 문제를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북한이 실무자급 인사의 방북에 대해 소상히 보도하는 건 흔히 있는 일은 아니다. 

    몇일 뒤,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는 미국 상원 청문회에 출석할 예정이다. 자유아시아방송, RFA는 오는 12일 상원 외교위원회 간사인 리처드 루가 의원의 보좌관이 북한을 방문하기로 돼 있고 그 일행엔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와 존 루이스 박사 등 6명의 미국 핵전문가도 포함된다고 보도했다.  

    아마도 이제 시한을 넘긴 10.3 합의 이행문제를 남은 부시대통령의 임기중에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그 대강의 방향을 결정하고 어떤 형태로든 공표해야할 시기가 가까워진 듯 하다.

    작성일 : 2008.2.2


    [ 참고 ] 

    □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 30일 강연 mp3 

    https://cms.amherst.edu/news/eventsmultimedia/2008/node/35705

    □ 2008년 1월 4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문 관련 

    http://blog.naver.com/eye4all/20045648032   

    □ 셀리그 해리슨 기고문, "칸 박사가 아는 것" 

    http://www.washingtonpost.com/wp-dyn/content/article/2008/01/30/AR2008013003214.html

    □ 중앙일보, 미국 "북한, 모든 핵 신고 약속만 하면 적성국 해제"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3025770

    □ 마이클 거슨 기고문, CFR의 관련 사이트 

    http://www.washingtonpost.com/wp-dyn/content/article/2008/01/31/AR2008013102628.html

    http://www.cfr.org/bios/12454/michael_j_gerson.html

    □ RFA, "미 의회 관계자 핵 전문가와 방북" 

    http://www.rfa.org/korean/simcheongbodo/2008/02/01/us_cong_visitng_nk/

    □ RFA, "북한은 미국과 핵 협상 이미 중단 결심"

    http://www.rfa.org/korean/simcheongbodo/2008/02/02/nk_nomore_with_us/

    □ 월스트리트저널, "Bush's End Game" 

    http://online.wsj.com/article/SB120162887291325775.html

    □ 월스트리트저널, 이명박 당선인 인터뷰 

    http://online.wsj.com/article/SB120188847207135725.html

    □ 2002년 2차 핵위기에 대한 책 

    - 후나바시 요이치, 오영환 외 옮김 [김정일 최후의 도박] 

    - 박건영.정욱식, [북핵, 그리고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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