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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자해지(結者解之)? / 2007.05.10.
    북핵리포트 2007-2012 2015. 8. 15. 16:45

    요미우리신문은 9일 김명길(金明吉)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차석대사가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 자금 송금문제와 관련해, 미국의 금융기관을 통해 제3국에 송금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앞서 미국언론들은 8일, 미국 국무부 당국자를 인용해 “북한이 미국금융기관을 거쳐 제 3국으로 송금하게 가능하도록 요청했고, 재무부가 10일쯤 결론을 낼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또, 우리 당국자도 지난 7일 브리핑을 통해 “언제 해결된다고 단정적으로 얘기할 상황은 아니지만, 이번 주 중에는 해결을 위한 에너지가 임계량에 접근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송민순 장관의 표현을 빌리자면 “박힌 돌부리”, BDA문제를 풀기 위한 해법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라 할 수 있다.

    앞서 [암전... 그리고 조명이 켜지면]에서 소개한 바 있듯, BDA 해법은 크게 3단계로 구성된다. 1단계는 52개나 되는 복잡한 구성의 북한계좌를 정리해 인출이 쉽도록 만드는 작업. 정부관계자는 “이 부분은 거의 다 완료된 것으로 안다.”고 말한다.

    2단계는 이 돈을 중개기관 역할을 할 제 3의 금융기관의 협조를 받아 송금하기 위한 절차. BDA와의 금융거래를 포괄적으로 금지한 미국 재무부의 조치로 BDA에서 곧바로 송금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 2단계 절차를 가능케 하기 위해 여러 가지 모색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결국 답을 구하지 못했고, 그래서 북한은 미국에 도움을 요청했다. 

    3단계는 최종적으로 이 돈을 받아줄 해외 금융기관을 찾는 것. 북한은 이탈리아와 러시아 이 두 나라의 계좌에 돈을 넣어도 좋다는 동의를 받은 걸로 알려지고 있다.

    ▲ 묶은 자가 풀어라

    그렇다면 왜 2단계가 문제일까? 왜 북한은 미국에 다시 손을 벌리게 됐고, 지난 4월10일 조치로 ‘이젠 다 했으니 이제 북한이 알아서 해라.’는 입장이던 미국이 북한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다시 검토에 들어갔을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북한이 원하는 것은 BDA에 있는 돈을 해외의 북한 계좌로 보내기를 원하는데, 가깝게는 지난 3월14일 미국 재무부가 발표한 final rule, 그리고 미국 내 금융관련 법률에 의해서 미국이 도와주지 않는 한 이 절차가 도무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마카오 방코델타(BDA)에 내린 파이널 룰(final rule)은 미국은 물론 전 세계 금융기관들이 BDA와 협조관계(correspondent account)를 맺는 것을 포괄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BDA는 마카오나 홍콩, 중국 등 역내(域內)의 금융기관으로는 송금이 가능하지만, 이태리나 러시아는 물론 베트남이나 몽골 등 역외(域外)의 어느 금융기관으로도 송금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북한이 처음에 강구한 건 중국역내의 작은 금융기관을 설득해, BDA에 있는 2천5백만달러를 일시적으로 예치하고 이 돈을 유로화(북한의 기축통화)로 바꿔서 이태리나 러시아로 송금하는 방안이었을 걸로 추정된다.

    먼저 언급한 Correspondent Account는 A은행이 다른 나라에 있는 B은행으로 송금을 할 때 맺는 관계다.  그런데 A은행에서 B은행으로 송금을 할 때, A에서 B로 곧바로 돈이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C라는 또 하나의 금융기관을 거쳐야 한다. 이 C를 ‘결제은행’이라고 하는데, 달러화로 송금할 경우 대개의 경우 뉴욕에 있는 결제은행을 거치게 돼 있다. 마찬가지로 유로화로 송금을 한다면 EU에 속한 나라의 결제은행을 거쳐야 한다.

    북한의 시도가 성공하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면 그건 최종적으로 이태리나 러시아를 설득하는 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북한 돈이 거쳐가야 할 또 다른 은행, 결제은행의 허락을 받는 것이 그리 녹녹치 못했던 탓이었을 것이다.

    또 도와주겠다는 중국 역내의 금융기관을 찾기가 어려웠던 탓도 있을텐데, 여기에 더해 이왕이면 이번에 미국금융기관을 통해 이런 3단계 절차가 성사된다면 앞으로 북한이 해외에서 금융거래를 함에 있어 좀 더 유리한 고지에 올라설 수 있다는 고려도 있었던 걸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고위 당국자는 “해결에 여러 가지 수준이 있을 수 있는데, 북한으로선 더 나은 옵션으로 문제를 풀고 가려하지 않겠냐?”고 언급한 바 있다.

    결국 북한은 미국에 대해 결자해지, “묶어놓은 사람이 풀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요구했을 것으로 보인다. 김명길 유엔 북한대표부 차석대사가 미국과의 뉴욕접촉을 통해 이 같은 요청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부시의 리더십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려나?

    앞부분에서도 언급했지만, 미국에서 외교업무를 담당하는 국무부, 그리고 행정부의 수반 부시대통령은 재무부에 대해 해법을 구하라고 재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일시적인 예외조치라 하더라도 북한 돈이 중개기관 역할을 하는 금융기관, 결제은행을 거쳐 이태리로 송금되는 건 사실 불가능한 미션(mission impossible)에 가깝다.

    우선, 지난 3월14일 나온 미국 재무부의 Final Rule이 BDA에서 미국은행으로 송금하는 걸 포괄적으로 막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는데, 이 조치를 내린 미국 재무부가 스스로 이 조치의 예외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재무부 입장에선 한 마디로 누워서 침 뱉는 격이고, ‘물에 빠진 걸 건져놨더니 세탁비까지 내놓으라는 거냐?’는 불만을 품을 만도 하다는 얘기다.

    두 번째로, 이런 법적인 우회로가 만들어진다 해도 실제로 이 과정을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금융기관을 찾을 수 있느냐의 문제도 관건이다. 미국처럼 민간부분의 자율성이 만개한, 그것도 가장 만개한 금융 시스템 영역에서 어떤 금융기관이 BDA 해법에 위험을 무릅쓰고 참여할 것이냐는 부분. 적어도 동기를 유발시킬 유인책이 필요한데 아무리 합리적으로 생각을 해봐도 미국 정부가 치명적인 리스크를 보상하고 남을 만한 어떤 기회를 줄 수 있는 건지 가정해보기가 어렵다. 

    그러나 추락하는 지지도, 엉망진창인 대외외교, 기댈 곳이라곤 그나마 성과를 낼 주제라곤 북핵문제 밖에 없는데 엉뚱하게도 BDA에 부딛쳐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부시정부로선 이러한 북한의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하긴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오늘(10) 오전 통화한 한 정통한 외교 소식통은 미국에서 들려오는 정보들은 아직 긍정적인 판단을 할 만한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고 했다, 그의 말을 인용하자면 “뉴트럴하다”는 것.

    ▲ 참을성의 끝은?

    워싱턴 포스트, 뉴욕타임스 등 미국의 유력 언론들은 요 몇일 사이 ‘포문’을 열기 시작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8일, “미국 행정부가 금융시스템의 금기를 깨려고 한다.”고 이 결자해지의 해법을 정면으로 문제삼았고 뉴욕타임스는 9일, “북한이 인내심을 시험하고 있다.”면서 불만을 터뜨렸다. 그리고 이제 미국이 ‘결자해지의 해법’을 고려하고 있다는 사실이 점점 더 분명해지면서 반발의 강도도 시시각각 점점 더 높아지게 될 걸로 예상된다.

    시간이 많지 않다. 최악의 상황에서 꺼내 들 카드 - 한국 수출입은행 - 를 생각해본 청와대 일각의 심리상태도 이해할 수 없는 바는 아니다.

    다시 한 번 분명히 되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물론 한국은 6자회담 구도에 있어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깊이 개입해야 할 당사자이다. 이 문제는 바로 우리 민족의 문제이며, 언제든 닥칠 수 있는 위험천만한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한 우리 생존과 직결된 사안이다.

    그러나 BDA 해법에 있어서 만큼은, 한국은 결코 당사자일 수 없다. 이 문제는 우리의 의지와 전혀 관계없이 미국과 북한, 좀더 넓혀서 생각하면 미국-북한-마카오(중국) 사이에서 발생한 문제다. 또 분명한 건 이 문제에 우리가 개입하는 순간,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금융시스템 신뢰도의 추락 등 또 다른 몹시 위험한 불확실성을 스스로 창조해내는 역설을 만나게 된다는 점이다.

    임계량에 도달한 것 같다는 당국자의 발언. Happy Ending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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