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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 탓이요 / 2007.06.12.
    북핵리포트 2007-2012 2015. 8. 15. 17:02

    “네 탓이다”

    송 대령, 혹은 Colonel Song으로 불리는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은 오늘(12) 낮 2층 기자실을 들렀다가 엘리베이터를 타기 직전 기자의 집요한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장관님, 법적인 기술적인 장애를 과감이 돌파하겠다고 했던 건 벌써 3주 전인데, 그 때 이미 중앙은행을 통한 아이디어가 잉태돼있던 게 맞죠?”

    “그건, 지금 답할 얘기가 아니고, BDA문제가 모두 해결된 다음, 그자들 스스로 왜 그걸 그 때 알아채지 못했냐고 자책해야 할 부분이지...”

    이를테면 “줘도 못먹냐?” “난 얘기할 수 있는 한도에서 충분히 얘길 했고, 알아듣지 못했다면 그건 네 탓이지.”이런 말이었다.

    그러나 나도 할 말이 아예 없진 않다. 당시, 그러니까 지난 5월 27일 인천공항 귀빈실에서 송민순 장관과 내가 나눈 대화록을 발췌해 보면 이렇다.

    Q “외신을 보면 라이스 미 국무부 장관이 ‘수일 내에 해결될 것’이라고 했다는데요.”

    A “라이스 장관이나 미국 정부가 사실 수일이 아니라 언제든지, 당장이라도 해결될 수 있으면 하는 자세를 가지고 임하고 있습니다. 수일 내라고 단정하기엔 아직 빠릅니다. 이 시점에도 한-미 사이에 지속적으로 얘기하고 있고, 마카오 당국, 중국 관련 당국 사이에 접촉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방향은 우리 생각하는 방향인데 속도를 예단하기에는 아직 빠릅니다.”

    Q “헨리 폴슨 미국 재무부 장관이 BDA문제를 해결할 생각이 있다고 청문회에 나와서 얘기를 했는데, 와코비아(Wachovia) 은행을 중개지로 삼는 해법은 무리가 없는 겁니까?”

    A “세부적, 기술적으로 어떻게 하느냐 보다도 미국과 한국, 관련국들은 기술적, 법적 장애를 넘어서서 비핵화를 실현 시키고 동아시아 협력체제 만드는 전략적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기술적 법적 장애요인은 과감히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당시, 나는 송민순 장관에 대한 취재 외에 다른 복수의 외교 소식통들에 대한 취재에서 ‘현재까지 그래도 가장 유력한 방안은 와코비아를 통한 해법’이란 얘기를 듣고 있었기 때문에, “중앙은행 동원”은 꿈도 꾸지 못하고 ‘기술적 법적인 장애요인을 과감히 극복하겠다.’는 말을 와코비아 은행을 중개은행으로 삼을 때 발생하는 애국법 311조나 Final Rule을 우회하는 방안을 만들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었던 것. 어쨌든 지난 얘기. 돌이켜 후회해 봐야 무슨 득이 있으랴.    

    외교부의 한 간부는 송민순 장관이 실국장회의에서 가끔 “뭐야!” 하고 눈을 크게 뜰 때가 있고, 그 때 상당히 무섭다고 고백을 한다. 가만히 뜯어보면 그리 ‘싸나운’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외교부 당국자들은 송 장관을 상당히 여려워 한다.

    기자들의 경우, 자기 상관은 아닌 만큼 무서워할 일은 없는데, 문학을 전공해서인지(독문학) 비유법을 좋아하는데다 힌트를 준다고는 하는데, 그 힌트를 제대로 캐치(catch)해 내기가 무척 어렵다는 점에서, 외교부 간부들과 마찬가지로 송 장관을 그리 만만한 상대로 여길 수 없다.

    다시 어제 시점으로 돌아가 보자. 모르긴 몰라도 뭔가 곧 될 것 같다는 감은 있었다.

    당국자들의 말이 풍기는 냄새가 그랬고, 천영우 평화교섭 본부장이 그것도 임성남 북핵기획단장과 함께 미국으로 훌쩍 떠난 것도 그랬다. 그래서 몹시 불안하다는 생각이 내 영혼을 붙잡고 있었고, 결국 어젯밤 기자의 꿈에는 송민순 장관이 등장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일종의 악몽이었던지, 눈을 떠보니 아침 5시50분. 6시에 맞춰놓은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잠이 번쩍 깨고 말았다. 이정도 되면 심각한 ‘병’이라 아니할 수 없는 정신 상태라는 건 스스로 잘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다.

    출근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미국의 <월스트리트 저널>이 일을 저지른 뒤였다. 미국과 러시아의 중앙은행이 나서기로 했다는 보도였다.

    사실 입을 쩍 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 미국은 정말 대단하다.’ 어떻게 이렇게 초법적인 해법을 생각해 낼 수 있고 또 실현시킬 수 있는 것일까. 우리나라에 대입해서 얘기한다면 이렇다. 우리 정부가 - 노무현 대통령의 의지로, 한국은행을 통해서 오염된 북한자금을 중개해 주기로 결정하는 것. 이게 말이나 될 법한 얘기인가?

    중앙은행이 나서기로 했다는 건, 다시 말하지만 송 장관의 표현 대로 법적 기술적 한계를 뛰어넘는 해법이다.

    한 외교소식통의 말 대로, 지난 3.14일 발표된 미국 재무부의 Final Rule을 자세히 살펴보면 뒷부분에 이 조치의 영향을 받는 금융기관의 리스트가 등장한다.  그리고 이 리스트에 보면 정부 중앙은행은 포함되지 않는다. Final Rule이나 애국법 311조 모두 기본적으로는 민간의 거래에 대해 문제를 삼는 것이기 때문에, 중앙은행이 나서는 일종의 국가간 거래는 재무부의 조치나 미국 행정부가 만든 애국법을 초월할 수 있는 것.

    아직 돈이 완전히 건너가진 않았고, 그래서 아직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마카오의 중앙은행, 그리고 미국의 연방은행, 다시 러시아의 중앙은행을 거쳐 러시아 극동상업은행 (Far East Commercial Bank)의 북한계좌로 돈이 들어가는 복잡한 방정식이 정말 설계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가동될지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만큼 더 가까이, 아주 가까이 해결을 향해 다가간 것이고 미국이 또 러시아가 이런 초법적 조치를 취한 마당에 북한이 이 해법을 받지 않는다면 그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국제사회의 비난의 화살을 피할 수 없으리라고 본다.

    결자해지, 언젠가 칼럼에도 쓴 것처럼 미국은 스스로 묶었던 매듭을 푸는데 성공한 것 같다. 이제 북한이 풀어야 한다. 그리고 풀게 될 걸로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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