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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B독트린 ; 3가지 시나리오 / 2007.12.21.
    북핵리포트 2007-2012 2015. 8. 15. 17:24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역대 최다 표차로 당선자가 됐다. 워싱턴 포스트는 12/19일과 20일 이틀에 걸쳐서 적지않은 지면을 할애해 한국의 새로운 대통령 당선자에 관한 기사를 게재했다.

    주미 한국대사관 문화원 "코러스하우스"는 19일 세미나에 정기적으로 참석하는 사람들에게 이메일을 발송했다. 이 이메일에는 이명박 당선자에 대한 소개의 글과 함께, 그가 지난 2월6일 Seoul Foreign Press Club에서 가졌던 기자회견 연설문을 첨부해 보냈다. 이른바 "MB Doctrine"으로 알려진 대미외교, 대북외교에 대한 그의 생각이 담긴 연설문이다.

    이 글에서 드러나는 이명박 당선자의 생각은 한-미 동맹의 강화, 그리고 대북문제, 특히 대북지원에 있어서의 상호주의로 요약될 수 있다. 나아가 이 당선자는 '북한이 핵을 폐기하고 문호를 개방할 경우, 한국이 국제사회와 함께 적극적인 대북지원에 나서 1인당 국민소득을 10년 내에 3천달러로 끌어올리겠다.'는 구상도 밝히고 있다. 

    이 대목은 핵폐기만을 강조하고 당근은 제시하지 않던 한나라당의 기존 대북정책과는 다른 측면이다. 이번 선거에서 큰 변수가 되지 않았던 북한은 선거후반 공격의 초점을 이명박 당시 후보에서 이회창 후보로 옮겨간 바 있다.

    이명박 당선자는 당선이 확정된 20일 기자회견을 통해서도 이러한 외교안보정책의 방향을 재확인했다. '핵 없는 한반도 평화시대를 반드시 열겠으며,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것이 북한도 발전하는 길이며, 공존을 통한 평화의 길로 가는 것이 바로 미래의 평화통일을 보장하는 길'이라는 내용이었다.

    이른바 "MB 독트린"에서 이명박 당선자는 '상호주의'를 강조한다. 그리고 그 상호주의의 연결점, 다시 말해 지원의 반대급부로 가져와야 할 변화를 핵무기의 포기, 북한내 인권문제 개선이라는 큰 두개의 축으로 상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 진행중인 6자회담 프로세스는 앞으로 어떤 변화를 맞게 될 것인가?

    언뜻 보기에 지난 10년간의 권력과는 접근방법을 달리하는 새로운 정권의 탄생은 그 자체로 '모종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낳게 한다. 학자들 가운데 일부는 "적어도 핵실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변화 없이 정책을 펴간 참여정부와는 궤를 달리할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진행되고 있는 6자회담의 프로세스를 좀더 가까이 들여다 보면, 적어도 당분간은 극적인 정책변화가 나타나기 어렵다는 전망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① 우선 현재 진행되고 있는 6자회담의 틀은 기본적으로 미국 부시행정부의 주도하에 만들어진 것이다. 형식적으로 한국과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북한 등 6자가 모여서 합의문을 만들어내는 구조이기는 하지만 모든 실체적인 진전은 북-미 양자협상에서 만들어졌다.

    방코델타아시아은행에 묶여있던 북한자금을 풀어주는 문제의 처리과정에서나, 연말까지 북한이 핵시설을 불능화하고 핵관련 신고를 하기로 했던 지난 10월3일의 합의문 도출 과정에서 모두 베를린 북-미 접촉, 미국의 크리스토퍼 힐과 북한의 김계관 부상의 만남이 돌파구가 됐었다.

    지난해 10월 핵실험에도 불구하고 6자회담의 프로세스를 더 강력하게 추진한 것은 바로 미국이다. 과거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클린턴 행정부 당시 진행되던 모든 대북정책을 되돌리려 했던 부시행정부는 거꾸로 1994년의 제네바합의 때와 유사하게 현재 북한에 기름을 보내고 있으며, '악의 축'으로 규정했던 김정일 정권에 친서를 보냈다. 

    ② 두 번째, 이명박 당선자의 대외정책에 있어 북한에대한 상호주의 적용만큼이나 강조점이 찍히는 부분은 바로 한-미동맹의 강화다. 따라서 부시정권이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6자회담 프로세스를 추진하고 있는 만큼, 이 프로세스에 지장을 주는 정책을 펼치는 건 논리적으로 한미동맹의 강화에 어긋난다.

    그래서 오히려 이명박 당선자의 재임기간, 앞으로 5년간을 내다볼 때, 현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이 이 시기, 한국의 정권이 교체되고 부시정권은 임기 마지막해를 맞게 되는 시기에 어떤 선택을 하고 나올 것이냐의 문제이다. 


    ▲ 현단계의 성격규정

    워싱턴 포스트의 글랜케슬러 기자가 그의 기사( <Progress Is Reported on Nuclear Pact> ,WP, December 15) 에서 지적하듯 2기 부시행정부는 지금까지 "이른바 ABC 정책 (Anything But Clinton)"에서 돌아서, 6자회담이라는 다분히 형식적인 틀 안에서 본격적으로 북-미간 양자협상을 벌여왔고 그 결과 지난해 핵 실험을 고비로 지난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 이후 성과로 얻었던 '동결(freezing)'의 단계에서 한 발 더 나아가는 단계로 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이건 부시행정부 대북 외교정책의 성과라면 성과인 거다.

    실제로 북한은 영변 핵시설의 가동중단(shut down)과 불능화(disablement)에 대해서 만큼은 상당히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필자는 북한이 아마도 기술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영변 핵시설을 더 이상 유지하기가 힘들다는 판단 정도는 내리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무기급 플루토늄은 50킬로그램 안팎으로 생산했고, 영변 핵시설을 포기했을 때 플루토눔은 추가로 만들 수는 없겠지만 현재 갖고있는 무기급 플루토늄으로도 충분히 "억지력"을 갖을 수 있을 거라는 판단이 아닐까? 얼마전 영변을 방문하고 돌아온 미국 국무부의 한 하급 관리는 사석에서 영변의 시설들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오래된 것들이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북-미 관계가 '한 발 더 나아가려면' 반드시 '신고'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UEP(우라늄 농축 프로그램)문제나 무기화한 플루토늄과 관련해 정확한 신고를 하는 문제는 앞서 언급했던 영변핵시설을 포기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2007-12-14 칼럼 참조)

    북한은 아마도 이 문제를 "억지력"의 근본으로 여길 것이며, 미국과 북한의 관계정상화가 상당수준 이뤄진 뒤에야 밝힐 수 있는 부분으로 판단할 거다. 미국은 그러나 "영변 핵시설의 포기" 정도로는 더 나아갈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핵물질 신고와 관련해 크리스토퍼 힐 동아태차관보가 부시대통령 친서를 들고 북한에 갔을 만큼 이 대목에서의 돌파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 김정일, 장고(長考)중인가?

    뉴욕채널을 통해 '친서를 잘 받았다'는 수준의 구두 답변이 왔다고는 하지만 부시대통령의 친서에 대한 북한의 제대로된 반응은 아직 나오지 않은 걸로 보인다.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는 지난 15일 뉴욕채널을 통한 북한의 답신이 긍정적인가 아니면 부정적인가를 묻는 필자의 질문에 "중립적이다(Neutral)"라고 짧게 답했다. 

    중국에서 6자회담을 담당하고 있는 우다웨이 외교부 부부장이 12/17 평양에 들어갔다가 19일 중국으로 나왔지만 별다른 소식이 없다. 중국 외교부 친강 대변인은 우다웨이 부부장의 방북과 관련해 20일 정례 브리핑을 통해 "북한이 핵불능화 약속을 성실히 이행할 뜻을 밝혔다. 6자회담 참가국들이 행동대 행동을 원칙으로 삼아 자신의 의무를 이행함으로써 6자회담이 진일보한 진전을 이루기를 바란다."고 했는데, 신고 문제와 관련해서는 '6자가 심도있는 협의를 해야 한다.'고 언급했을 뿐이다.

    북한은 부시행정부의 재촉성 편지를 받아든 상태에서, 대선이 끝난 남한의 정세 그리고 앞으로의 질서를 염두에 두면서 장고에 들어간 것이 아닐까?


    ▲ 3가지 시나리오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는 북한과 미국이 신고문제에 있어 타협을 보는 것이다. 추측컨대 무기화한 플루토늄에 관한 문제는 제외하고, UEP, 특히 수입한 사실이 공공연한 비밀로 돼 있는 원심분리기 등 우라늄 농축에 필요한 부품들을 왜 사들였는지.. 또 어디에 썼는지를 "신고"에 포함시키는 정도가 마지노선이 될 것이라고 본다.

    미국 부시행정부의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많이 남겠지만 그간에 추진돼온 비핵화 프로세스를 보면 "2차 핵위기를 불렀던 UEP문제의 해결"이란 새로운 이정표는 나름대로 부시정부의 업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 경우 북한은 테러지원국 해제, 적성교역국 명단 제외 등의 이른바 '관계정상화' 트랙에 있어서의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북-미간에 이런 흐름이 나타난다면 이명박 당선자의 정책도 이 흐름에 어느 정도 휩쓸려 갈 수 밖에 없다. 인권결의안 표결 같은 문제라면 모를까 6자회담이 순항하고 있는 상황에서 남북관계에 있어서의 돌출변수를 만들어내는게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덜 바람직하지만 중립적인 시나리오는 신고문제를 돌파하지 못하고 6자회담이 열리기는 하되 공전을 거듭하는 양상을 보이는 상황이다.

    부시행정부가 친서를 보낸 건 정권말기에 6자회담 프로세스가 흐지부지되고 얻은 것 없이 주기만 했다는 비난을 받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북한이 심각한 도발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 나름대로 영변핵시설의 포기를 차근차근 실행에 옮겨가는 상황에서 미국이 지금까지의 자세를 180도 바꿔서 북한 정권에 대해 공격적인 자세를 보일 것이라고 가정하는 건 논리적이지 못하다. 부시정부는 이라크 전쟁으로도 몹시 시달리고 있고 또 다른 한편에선 이란을 다루는 일, 중동 평화협상 문제를 챙기는 일로 몹시 정신이 없다.

    이 경우, 한국 새 정부의 대북 정책도 일정기간 숨고르기를 하면서 내부적인 정책변화를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시나리오에서 북한은 한편으로는 영변핵시설의 불능화 단계를 성실하게 밟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명박 체제에 대해서 날을 세우는 이중전략을 취할 가능성도 있다.

    마지막 시나리오는 북한이 일종의 '벼랑끝 전술'을 쓰고 나오는 것이다. 이 경우 부시행정부는 상당한 곤경에 빠지게 되고 내키지는 않지만 뭔가 강력한 조치를 들고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명박 당선자의 정부도 김대중, 노무현 정부보다는 확실히 강도 높은 대응을 준비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이미 지난해 10월 핵실험을 했기 때문에 더 효과적인 전술적 카드가 존재하지 않는데다, BDA파동으로 금융봉쇄의 강력한 효과를 경험한 북한이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새로운 '벼랑끝 전술'을 사용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라이스를 국무장관으로 선택한 2기 부시정부는 대북 정책 추진에 있어 그야말로 '화끈하게' 다른 식으로 표현하자면 '너무 시한에 쫓겨가며' 문제를 풀어간 측면이 있다. 1기에서 2기로 넘어가면서 정책의 방향이 바뀌었고 그 바뀐 방향에서 어떤 결실을 거두려니까 마음이 바빴던 것이라 생각한다. 북한은 물론 북핵문제를 풀어야 하는 우리로서도 크게 나쁠게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화끈한 흐름이 더 이상 진전을 보이지 못할 때 처신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런 시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천영우 우리측 6자회담 수석대표는 얼마 전 "6자회담이 열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실있는 회담이 열리는 게 중요하다."고 기자들에게 밝힌 바 있다. 우다웨이 부부장이 북한으로 들어가기 전 그와 협의를 가진뒤 한 말이다.

    아직은 6자회담이 언제쯤 열릴 것이란 소식이 없다. 신고 문제와 관련해서 최소한의 요건이 아직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일 거다. 달리 말하자면 크리스토퍼 힐이 방북 직후 밝힌 바 대로 "의견차이"가 아직 좁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회담을 열어봐야 아무 의미가 없는 거다.

    그래서 앞으로 5년, 이명박 당선자가 끌어갈 대한민국호의 대북정책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한반도의 긴장상황은 어떤 양상을 띄게 될 것인지, 남-북 정상회담의 약속들은 일관성을 갖고 추진될 것인지 등등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첫 신호는 이명박 당선자 당선에 대한 조선중앙통신 등의 논평 보다는 6자회담 개최와 관련한 소식에서 감지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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