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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ear Mr. Chairman, 북한에 보낸 친서 / 2007.12.13.
    북핵리포트 2007-2012 2015. 8. 15. 17:20

    지난달 29일(11.29) 워싱턴 듀퐁서클에서 멀지 않은 한국 대사관 문화원 KORUS HOUSE에서는 외교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게리 세모어씨의 강연이 있었다. 지난 1994년 클린턴 행정부 당시 북미간 '제네바 합의'에 관여했던 그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비핵화 프로세스가 부시정권 내에서는 결코 달성될 수 없을 것이라면서 그 이유로 3가지를 들었다.

    먼저 테러지원국 해제 나아가 연락사무소 설치 같은 북미간의 관계정상화 이슈는 행정부만의 결정으로 이뤄지기 힘든 정치적인 이슈이고,  두 번째로 비핵화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북한이 경수로 문제를 거론할 것이기 때문에, 마지막으로는 북한은 영변 5메가와트 경수로는 포기할 수 있을지 몰라도 핵무기는 당장 포기하지 않으면서 경제적 지원을 받으려 할 것이라는 논리였다.

    몇일 뒤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가 두 번째 방북 길에 올랐다. 12월 3일에서  5일까지, 3일간의 일정이었는데 그는 앞서 서울에서 천영우 평화교섭본부장과 이재정 통일부장관, 조병제 북미국장 등 관련된 우리 정부 인사들을 빠짐없이 만났고 북한에 들어가 군 관련인사, 나아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고자 한다는 희망을 숨기지 않았다.

    그의 방북을 지켜보는 심경은 착잡했다. 그건 필자가 생각하기에, 현 단계는 부시정부가 추진해온 비핵화 프로세스의 어떤 "한계점"으로 여겨졌고, 힐의 방북은 그 한계점을 어떻게든 돌파해서 계속 동력을 유지시켜보려는 힘겨운 시도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게리 세모어의 강연 내용이 아니라도, 크리스 힐의 방북 결과가 그리 낙관적인 것은 아닐 거라고 예상했었기 때문이었다.

    5일, 북한에서 중국으로 나온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가 언론인들과 접촉한 뒤 흘러나온 말들 중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명확한 의견차"라는 표현이었다. 

    북핵문제에 관한한 그야말로 북한측‘전문기자’인 조총련계 신문 조선신보 김지경기자는 바로 그날 "미국의 <시한부계획>, 열쇠는 <재빠른행동>"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썼다.

    김지경기자는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북한 밖의)언론보도의 맥락에서 보면 힐 차관보의 이번 조선방문은 <신고담판>의 성격을 띠는 것으로 비칠 것이다. 그러나 6자회담의 당사자들은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서 벗어난 그 어떤 단독행동이 있을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조선에 대한 <요구>만을 일방적으로 부르짖는 분수 없는 목소리를 듣게 되면 당사자들은 부담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조선신보는 "북한의 성실한 신고"를 강조하는 외부의 목소리를 일방적인, 그리고 분수 없는 요구로 규정한 것이다. 김지경 기자는 이어, 왜 이런 논리를 펴는지 김계관 부상의 말을 인용해 설명하고 있다. (조선신보의 글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라 철자법이 한국과 다른 부분을 원본대로 옮깁니다.)

    "조선은 비핵화공약리행에 대하여 <미국이 적대시정책을 완전히 철회하고 신뢰가 조성되여 핵위협을 더는 느끼지 않을 때에 가서 핵무기 문제를 론의> 할수 있으며 <현 단계에서는 현존 핵계획 포기에 대해 론의할 수 있다.> (김계관부상)고 하였다."

    이어 조선신보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 즉 <현존 핵계획포기>의 개념을 정의한다. "<현존 핵계획포기>란 핵무기를 더 만들지 않는 문제, 핵이전을 하지 않는 문제와 관련되는 조치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까지 비핵화 문제와 관련해서 특히 6자회담의 합의들과 관련해서 여러가지 불분명한 용어들이 많이 등장했었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북한이 "무력화"라고 표현하는 영변 흑연감속로의 "불능화"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얼마나 망가뜨리는 걸 말하는 건지도 꽤 오랫동안 논란이 돼왔다. 그러나 필자가 생각하기에 가장 핵심적인 용어가운데 가장 불분명하게 논의돼왔던 것은 바로 "현존 핵계획"이란 용어다.

    지난 10월3일 만들어진 6자회담 합의문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제2단계 조치"( http://blog.naver.com/eye4all/20042330407 참조 )의 1-②항에는 "북한은 2.13합의에 따라 모든 자국의 핵 프로그램에 대해 완전하고 정확한 신고를 2007년 12월31일까지 하기로 합의하였다. ; (영문)  The DPRK agreed to provide a complete and correct declaration of all its nuclear programs in accordance with the February 13 agreement by 31 December 2007."라고 돼 있다.

    그렇다면, 조선신보는 그리고 아마도 북한은 합의문에 등장하는 "자국의 핵 프로그램"을 <현존 핵계획>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북한이 해야 할 신고의 범위에서 '핵무기' - 예를 들어 무기급 플루토늄을 얼마나 생산했는지, 그리고 핵탄두는 몇 개나 만들었는지 등등 - 는 빠진다는 논리가 된다.  

    조선신보가 곧 조선중앙통신 같은 관영매체는 아니기 때문에 김지영기자의 기사를 북측의 공식입장과 동일시하는 건 무리가 있지만, 필자가 알기로 이 같은 '신고'와 관련한 명확한 개념 정의는 처음이 아니었나 싶다.  

    미국의 부시행정부 입장에선 북한이 연말까지 아주 그럴싸한 신고를 해도 그 다음 단계를 밟아나가기가 쉽지 않은 판인데, 신고문제와 관련해 이런 결정적인 인식차이가 있다면 지금까지의 프로세스를 지속시켜 나간다는 것이 몹시 힘들어지게 돼 있다.

    실제로 게리 세모어는 지난 달 29일 강연에서 지난 1994년 제네바 합의 이후 신고한 핵물질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큰 문제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북한이 그럴싸해 보이는 신고서를 제출 하더라도 미국의 매파가 의회가 그걸 믿겠느냐, 그걸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는 건 전혀 별개의 얘기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런데 6일,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가 방북당시 부시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힐 차관보의 방북 일정이 끝난 직후인 5일, 필자는 부시행정부가 진행하는 '비핵화 프로세스'의 목표는 그야말로 완전한 비핵화나, 북-미 관계정상화보다는 '평화로운 현상유지'정도일 것이라고 관측한 내용의 학기말 보고서를 마무리해 제출했었다. 그래서 부시대통령이 '악의 축'이라고 언급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친서'를 건넸다는 보도에 적지 않게 당황했다. 백악관과 국무부에 따르면 부시대통령의 친서는 '친애하는 위원장께 ; Dear Mr. Chairman'으로 시작된다고 했다.

    국내언론엔 관련 기사들이 많이 등장했지만 다음날 그리고 그 이후 워싱턴 포스트는 관련된 분석 기사를 싣지 않았다. 다만 그 다음날 바이라인 없이 부시대통령의 언급에서 북한정권,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호칭이 얼마나 큰 변화를 겪었는지 정리한 상자 기사가 나왔을 뿐이었다.

    사실 냉정하게 따져보니 부시대통령의 친서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미국은 북한에 대해 ① 50킬로그람 안팎으로 추정되는 총 플루토늄 생산량(무기급 플루토늄)은 물론 ② 핵탄두의 생산현황, 그리고 ③ 이른바 UEP로 불리는 농축우라늄 계획 등등 그야말로 철저한 신고를 해주기를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철저한 신고가 있은 뒤에야 그 신고가 제대로 됐는지를 검증하는 단계로 돌입하면서 테러지원국 해제 등 이른바 관계정상화 절차도 밟겠다는 계획인 것이다.

    반면 북한은 조선신보의 기사에서 미루어 짐작컨대, 지금 단계에서 신고할 수 있는 건 무기급 플루토늄의 생산량일 뿐 그 이상의 것은 "명확히 밝힐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걸로 보인다. 미국이 먼저 테러지원국 해제를 해주면 모를까. 그건 ① 우선 북한이 말하는 '핵억제력'을 더 효과적으로 작동시키기 위해 당분간 '은폐전략'을 좀더 유지할 필요가 있고 ② 클린턴 행정부 당시 추진되던 비핵화 과정에서 이른바 "불일치 - 신고한 플루토늄 생산량과 실제 생산량이 달랐던"문제 때문에 북한이 할 말이 없게 되는 상황을 겪었던 걸 되풀이 하고 싶지 않은 이유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부시대통령의 친서가 전달됐지만 아직 친서에 대한 북한의 답은 나오질 않고 있다. 중국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우다웨 부부장은 내주 북한을 방문할 계획이다. 아마도 우다웨 부부장이 방북일정을 마치고 돌아올 때쯤 북측의 입장이 어느 정도 언론에 알려지게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객관적인 상황으로 볼 때, 북한이 앞서 이 글에서 언급했던 여러가지 논리들을 뒤집고 '신고' 문제에 있어 극적인 변화를 보일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그러나 정 반대로 만약 이 국면에서 어떤 변화가 감지된다면, 다시 말해 어떤 돌파구가 마련된다면 그건 정말 지금까지의 십수년동안의 지리한 협상과정을 훌쩍 뛰어넘는 새로운 이정표를 마련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건 북한이 전혀 다른 “선택”을 한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선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몇일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미국의 일간지들 역시 많은 지면을 민주당과 공화당 예비주자들의 경쟁에 할애하고 있다. 또 10월3일자 공동문건에 명시된 '핵프로그램 신고 시한'인 12월31일도 이제 보름 앞으로 다가와 있다.

    "Dear Mr. Chairman"으로 시작되는 편지의 답장엔 과연 어떤 내용이 담기게 될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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