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싱가포르, 비디오, 승부수 / 2008.04.27.
    북핵리포트 2007-2012 2015. 8. 15. 19:15

    몇 주 전 목요일 조지타운 대학에선 저녁 8시라는 비교적 늦은 시간에 세미나가 열렸다. 국제위기그룹 피터 벡 소장, 1기 부시정부 NSC에서 일했던 마이클 그린, 그리고 북한을 빠져나온 한 노 교수가 밤 10시가 넘도록 북한 내 인권상황에 대해서 얘기를 했다.

    그 자리에서 피터 벡은 6자회담 프로세스와 관련해 한마디 했다. 도무지 크리스토퍼 힐 이라는 사람이 비밀스럽게 뭘 하고 돌아다니는지 알 수가 없다는 얘기를 하면서 '부시행정부는 왜 시리아의 핵 시설에 관한 비디오를 공개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비디오가 돌아다니고 있고, 알만한 사람은 그 비디오에 북한 관리가 등장하는 것 쯤은 다 알고 있는데 그걸 왜 공개하지 않느냐는 얘기였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이 '불법 유통'된다는 비디오의 존재가 거론되기 시작한 건 꽤나 오래 됐다. 정통한 소식통들의  발언을 통해서도 들었고, 최근에는 싱가폴 회동 전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한국과 중국, 일본 등 6자회담 관련국들을 순방한 적이 있었는데, 이 때 서울발로 새 정부, 이명박 정부의 외교안보 담당자들에게 VIDEO를 보여줬다는 보도도 나왔었다.

    직접적으로 VIDEO가 거론되지 않았지만 당시 6자회담 관련국에 시리아 관련 정보가 전달됐다는 기사가 있었던 걸 감안하면 아마 이 시기 시리아 비디오는 순회상영됐던 게 아닌가 싶다. 아무도 그렇게 얘기하지 않는데 일본은 태연하게도 처음 봤다는 듯 "그게 사실이라면 우려스런 일"이라고 논평을 했다고 한다.

    북한도 이 비디오의 내용을 숙지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그 시점은 작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비공개 브리핑으로 알려졌던 시리아 관련 의회보고였지만 VIDEO는 AP를 통해 공개됐다. 의회 보고 전 IAEA와도 내용을 공유했다. 백악관은 공개 논평(Statement)도 내놨다. 이 VIDEO상영이 있기 직전 국무부 성김 과장은 22일 북한으로 향했다. 그리고 성김 과장이 육로를 통해 서울로 돌아온 시점과 의회브리핑이 이뤄진 시점은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북한외무성은 질의에 대한 답변 형식으로 논평을 내고 '진전이 있었다'고 신속히 밝혔다.

    이후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VIDEO 상영에도 불구하고 테러지원국 리스트에서 북한을 빼는 문제가 물 건너간 게 아니라고 했다. 그동안 그 답지 않게 침묵을 지키던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가 일본 언론과 인터뷰를 하고, 브라운 대학에서 강연을 하면서 검증은 '플루토늄에 관한 것'이라고 언급한다. 김숙 신임 6자회담 수석대표 - 평화교섭본부장은 워싱턴으로 향했다. 마치 정교한 시계 톱니바퀴가 움직이는 듯 하다.   

    부시정부의 비디오 공개, 과연 뭐가 어찌 돌아가고 있는 것일까? 


    [ Video ]

    3차원 컴퓨터 그래픽을 동원한 CIA의 비디오 테잎은 마치 온라인 컴퓨터게임 MMRPG의 맵을 보는 듯 했다. 그래픽과 글, 나레이션이 제시하는 포인트는 (1) 이스라엘이 폭격한 건 분명히 북한이 관여한 시설이고 (2) 평화적 목적의 핵 시설일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여러차례 신문 지상을 통해서 싱크탱크 사람들의 말을 통해서 흘러나왔던 정보들과 차이가 있다면 (1) 케이크 포장처럼 외벽을 한 겹 덧 입히긴 했지만, 그 내부는 영변 5메가와트 원자로와 비교할 때 철제 기둥의 위치까지 완전히 동일하다는 점. (2) 특히 원자로의 핵심 부분을 보면 그동안 우리가 사진에서 많이 보아 온 북한 원자로와 비교할 때 연료봉을 장착하는 구멍의 숫자까지 완전히 일치한다는 것. (3) 이스라엘의 폭격 이후 찍힌 위성사진을 보면 '케이크 포장'이 벗겨진 시설에서 북한 것과 같은 원자로 핵심부분과 냉각장치가 드러난다는 점 등이다.

    (4)마지막으로 CIA는 6자회담 협상장에도 모습을 드러낸 바 있는 핵 과학자가 시리아 사람과 함께 사진을 찍은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보충설명을 통해 사진속의 인물이 '영변 핵연료제조공장책임자(the head ofNorth Korea's nuclear reactor fuel manufacturing plant in Yongbyon)'로 일하고 있는 전지부(또는 전치부 Chon Chibu)가 라고 확인해줬다.

    이 비디오가 공개된 뒤, ISIS(Institute for Science and International Security)는 24일 분석자료를 내놨다.

    ISIS가 지적한 부분은 이 영변원자로와 쌍둥이인 시리아의 원자로가 완공단계라고 했는데, 시리아가 북한이나 다른 나라로 부터 핵 물질을 들여왔다는 지적을 하거나 관련 증거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점.

    또 원자로가 가동된다 하더라도 재처리시설(북한의 경우 '방사화학 실험실')이 없을 경우 무기급 플루토늄을 만들 수 없는데, 시리아엔 바로 그 재처리시설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 이런 몇가지 예들을 제시하면서 ISIS는 북한-시리아 핵협력 문제가 6자회담에 결정적인 장애가 되지 않을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 Statement ]

    이번엔 백악관에서 발표한 문건(statement)을 살펴보자. 시리아와 북한의 핵 협력을 문제삼으면서, 시리아에 건설된 핵 시설이 평화적인 용도일 수가 없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문제 보다 시리아, 그리고 더 나아가 중동지역 일반에 대해 언급한 뒤 '6자회담이 확산문제에 대처할 효과적인 길'이라는 결론을 맺는다.

    앞선 칼럼에서 시리아 문제가 불거질 경우, 부시정부에서 만들어진 6자회담 트랙에 대한 무용론이 심각하게 대두될 우려가 있다고 했었는데 정 반대로 백악관의 문건은 시리아-북한 핵협력 문제를 얘기하면서 6자회담이 '효과적인 틀'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시리아는 '사진이 조작된 것'이라는 등의 논리를 세워 미국의 주장을 즉각 반박했다. 그러나 이와 함께 미묘하지만 이상한 흐름이 포착된다. 까마귀 날자 배떨어진 것인지.. 부시정부의 중요한 외교정책 목표였던 중동평화회담과 관련해 시리아와 이스라엘이 골란고원 문제를 두고 접촉을 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난 것이다.


    [ 정면돌파 승부수? ]

    그렇다면 Video 공개가 불러올 여러가지 함수관계를 하나 하나 점검해 보자.

    (1) 시리아와 IAEA

    북한 핵 검증 문제와 관련해, 검증은 6자회담 내 일종의 실무그룹 형식의 기구에서 담당하게 될 거라는 보도가 있었다. 이는 미국이나 6자회담 참가국들이 1차 핵위기, 그러니까 1993년과 1994년에 겪었던 시행착오들을 반영한 결과라고 판단된다.

    당시 북한 핵 검증을 담당했던 IAEA는 미-북 채널과는 별도로 움직이며 아주 원칙적으로 이 문제를 다뤘다. 어떤 외교적인 '완충'도 없이 북한과 사사 건건 부딛쳤다. 북한은 최초신고서를 내면서 이 부분을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결국 IAEA는 플루토늄 추출양과 관련해 '심각한 불일치'를 찾아냈고 이는 1차 핵위기로 치달았다.

    그런데, 시리아에 지어졌던 원자로는 CIA의 보고를 봐도 핵 연료를 장전한 적이 없다. 핵 연료를 들여오는 건 기술을 들여오는 것과 또 다른 문제다. 게다가 시설은 이미 이스라엘에 폭격돼 현장엔 완전히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 있다. 따라서 IAEA가 조사에 나선다고 해도 뭔가를 입증해 내긴 사실상 불가능한 게 아닌가 싶다.

    또 시리아는 이번에 '미국이 공개한 사진이 조작됐다'는 논리를 폈는데, '그건 평화적인 전력생산을 위한 시설이었다.'는 논리도 불가능한 게 아니다. 앞서 ISIS가 지적한 대로 재처리시설은 아예 없었고, NPT에 가입한 국가라 해도 논리적으로 따져 볼 때 평화적인 핵 이용권은 보장돼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소식통에 따르면 우리측 고위 당국자는 북한측 6자회담 수석대표를 앉혀놓고, "시리아 인정해라, 그리고 그건 평화적인 용도였다고 해라."라고 설득한 적도 있다고 한다.

    또 미국은 사실 NPT 체제를 위협하는 일등공신이기도 한데, NPT가 핵보유국으로 인정을 하지 않는 인도와 핵 협정을 맺으려고 하고 있고, 세계 1위 우라늄 수출국 캐나다의 끊임없는 요청에 못이겨 NPT 체제가 금하고 있는 가공된 핵 연료 수출길을 열어주려고 한다. 이런 사정이라면 시리아라고 할 말이 없겠는가.

    (2) 북한의 문제

    북한은 최근 보도된 것만 해도 10차례 가까이 시리아와 관계를 돈독히 하는 행사를 가졌다. 끝까지 북한을 배신하지 않은, 맹방 시리아와 아마도 이 문제에 대한 교감이 있었을 것이다.

    또 북한쪽에서 보자면 시리아-북한 핵협력 문제는 이미 6자회담 틀에서 진행되는 '신고' 의제에 포함돼 있는 만큼, 시리아문제가 별도로 IAEA로 튈 가능성은 없어보인다.

    다만 한 편으로 6자회담을 진행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확산'에 관여했다는 게 좀 비난의 대상이 될텐데, 이미 이 얘기는 너무 많이 나왔고, 두 번째 기술이전일 뿐 핵물질의 이전은 아니었다. 또 기술이전으로 말하자면 미국의 협조국 파키스탄의 경우가 훨씬 심각하다. '핵기술의 월마트'로 불리며 여기저기에 원심분리기 기술을 넘겼다고 하는데 무슨 조화인지 파키스탄의 특정 개인과 조직만 문제가 됐을 뿐 파키스탄 자체엔 아무 탈이 없었다.

    (3) 미국의 문제     

    대통령이 워싱턴을 방문했던 주말, 18일 - 19일을 전후해서 부시정부의 대북정책, 싱가폴합의를 문제삼는 기사가 쏟아졌다. 사설을 쓴 신문도 많았다. 꼭 그 기간이 아니라도, 대표 주자 볼턴이 아니라도 사실 그 동안 비판이 끊이질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뉴욕타임스가 제대로 결론을 냈다. 곱게 보이진 않지만 다른 대안이 없다.

    의회는 '의회와 행정부간에 신의가 깨졌다'며 발끈하긴 했지만, 이번 발표로 인해 일단 곪아서 퉁퉁 부었던 상처의 압력이 상당히 낮아지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

    두 번째, '확산문제을 더 효과적으로 다루는 채널로서의 6자회담'개념은 이미 라이스장관도 몇번 언급한 바 있고 그야 말로 차근차근 준비된 개념인 듯 하다. 그리고 아마도 "complete and correct",완전하고 정확한  신고라는 역설을 살짝 비껴갈 수 있게 하는 '주문'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 남은 것  ]

    성김 과장은 북한을 다녀왔다. 이른바 '검증'문제에 대해서 양측이 얼마나 나가섰느냐가 관건이다. 일단 어떻게든 이 국면을 빠져나가야 하는데 "북한이 중국에 신고서를 냈다."는 소식이 들린다면 그건 아마도 '희소식'일 것이다.

    '신뢰가 깨졌다'며 토라진 의회가 직접적으로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관건이다. 테러지원국 리스트에서 북한을 제외하는 것은 의회에 45일 전 통보를 하긴 해도 전적으로 행정부의 권한이긴 하다. 그러나 사실상 의회와의 협조가 안되면 의회가 반대입법을 하거나 또 앞으로의 일처리 과정에서 중요한 다른 법안을 처리하는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물론 '의회'는 한 사람이 아니다.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 등이 특유의 정치력을 발휘해서 몇몇 의원들을 설득을 하고 있을 것이다. 

    민주당 의원들이 방북당시 얘기했다는 내용처럼, 북한이 만일 진전을 이루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지금 뭔가 중요한 발걸음을 국제무대에 보여줄 필요가 있다. 또 아무리 이명박 대통령이 제안한 '연락사무소'가 노동신문의 26일자 표현처럼 '반통일 골동품'일지라도 남-북관계에 있어 전향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 

    갈 길은 먼데 6자회담의 진전을 바라지 않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잡음이 자꾸만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벌써 일본에선 6자회담으로 가기 위한 중요한 숙제 가운데 하나인 플루토늄 생산량 과 관련해 "18kg은 탄두 만들고, 6kg은 핵 실험에 썼다"면서 구체적인 숫자를 보도하고 있다.

    또 미국의 정권이 바뀌려고 하고 있다. 매캐인 상원의원은  서부쪽 산호세(San Jose) 신문에도 부시정부의 대북정책을 문제삼고 일본과의 동맹을 고려해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기고한데 이어 얼마 전에도 인터뷰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셀리그 해리슨의 <Korea End Game>을 읽어보면 매케인 상원의원이 여러번 등장하는데 그는 1차 북핵위기 당시 북한의 핵시설을 폭격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던 선봉장이었다.

    클린턴도 마찬가지(물론 힐러리 클린턴이 아니라 빌 클린턴이지만). 1차 핵위기의 정점 1994년 6월, 카터의 방북, 김일성과의 담판이 없었더라면 한반도에 병력을 증파하고, 아마도 영변 핵시설에 대한 '외과수술적 공격'을 감행했을 것이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승부수를 띄웠다.

    미국과 한국의 정권교체를 오가며 진전에 다가섰다가 다시 멀어지고 다시 다가섰다가 또 멀어지길 반복해온 '메비우스의 띠'는 이번에 끊어지게 될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작성일 : 2007년 4월 26일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