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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이징 6자회담 취재기 / 2007.01.03.
    북핵리포트 2007-2012 2015. 8. 15. 12:18

    이미 지나가 버린 2006년의 일이 됐지만, 베이징 6자회담 출장은 나에게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 행사였다. 우선 무척이나 출장 기회가 없었던 나에게 사실상 처음으로 ‘진정한’ 해외 취재 경험을 하는 계기였고, 최근 꿈에서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을 만날 정도로 북핵 문제에 심취해 있던 나로서는 외신이나 화면을 통해서 만나던 외교무대의 플레이어(player)들을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도 그랬다.

    그런데 첫날, 베이징에 도착한 첫날부터 문제가 생겼다. 회담이 열리는 18일 이전, 6자회담 참가국들 간에 빈번한 사전접촉이 있을 것이고, 미국과 북한, 북한과 남한의 접촉은 필수적으로 있어야 한다는 것이 기자들 대부분의 ‘당연한 가정’이었는데, 보기 좋게 빗나갔던 것이다.  크리스 힐 미국측 대표, 천영우 우리측 대표 모두 북한과의 사전접촉이 있을 것이라고, 혹은 기대한다고 얘길 했었는데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직업 외교관들은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에 대해 절대로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따라서 두 나라의 6자회담 수석대표가 그렇게 얘기를 한 것은 기자가 아니라 외교관으로서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예상했다는 것인데, 뭔가 예상과 다른 진로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는 얘기였다. 나중에 6자회담 5차2단계회의가 끝나고 나서 한 외교관은 그 역시 크게 보자면 생각했던 여러 가지 시나리오 가운데 하나였다고 술회했지만, 당시 현장 취재 기자로서는 감을 잡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이틀이 지났다.  김계관 수석대표는 ‘칩거’라 표현할 만큼 북한 대사관에서 나오질 않았고 북한을 제외한 다른 6자회담 참가국들은 열심히 사전접촉을 했지만 분위기는 그야말로 썰렁할 따름이었다.

    한미일 3국이 이른바 공동의 “초기이행조치”에 대한 제안을 북한에 했고, 김계관 부상은 10월과 11월의 마지막 날, 2차례에 걸쳐 크리스 힐로부터 그 제안을 들은 바 있기 때문에, 이번에 답을 해야 할 사람은 바로 북한이었는데, 바로 그 북한의 수석대표가 칩거하는 형국, 분위기가 좋을 리가 없었다.

    <초기이행조치>는 한국과 미국, 일본이 6자회담 수석대표 회동과 정상간 협의를 통해 핵실험을 한 북한에 대해, 비핵화를 위한 첫 걸음으로 내딛으라고 공동으로 요구한 몇 가지 사항을 말한다.  NHK 등이 보도했고 우리나라 외교부 당국자를 통해 일부 확인도 됐지만 <초기이행조치>에는 ①영변 핵시설의 가동중단 ②IAEA 사찰관 수용 ③북한 핵시설의 포괄적인 신고 등이 포함된다.   


    2006.12.17 북경 댜오위타이 

    18일, 6자회담 5차 2단계회의가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공식 개회됐다. 그러나 북한의 김계관 수석대표는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비핵화문제를 논의할 수 없다”는 내용의 강한 어조의 기조연설을 하고는 다시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공식적으로 6자회담이 재개되면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쉼없이  양자대화를 갖는 것이 정상인데, 북한은 미국이나 한국과의 양자협의를 계속 거부했던 것이다. 

    상황이 이쯤 되자 현지에선 오히려 정보가 부족할 것이라던 어느 선배의 얘기가 떠올랐다.

    외교부 관리들의 경우, 개인차는 있지만 전화를 하면 공개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보는 얘기를 해주는 편이다. 이를 위해 외교부는 어떤 사안이 발생하면, 어느 수준의 사실을 언론이나 외부에 알릴지 여부를 사전에 협의한  P.G. - press guidance를 만들어 내는 것이 관례가 돼 있다. 그래서 서울에서 취재할 때는 감이 안잡히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전화를 해서 물어보면 되는데, 베이징에선 상황이 그렇지가 않았다. 기사도 기사지만 외교적 현안을 제대로 처리하는 것이 우선인 만큼 현장에 나와 있는 6자회담 수석대표나 차석대표, 대표단 사람들에게 전화를 하지 않는 것이 관례이기 때문이었다.   

    찬찬이 복기를 하다 보니 당초 계획과 달라진 Fact가 있었다. 원래 BDA 실무그룹 회의가 댜오위타이에서 18일에 동시에 열린다는 게 우리 측 당국자의 설명이었는데, 다음날인 19일에 열린다는 얘기가 돌았고, 19일 고려항공 편으로 북한의 BDA실무회의 협상단이 베이징에 도착한다는 사실도 확인이 됐다. ‘아 그렇구나...’ 그때에야 조금씩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북한은 BDA 실무회의가 열리기 전엔 6자회담을 사실상 겉돌게 하려는 생각이구나. 그렇다면 북한 대표단이 입국하는 내일, BDA 실무회의가 열리고 난 뒤에야 북한과 미국의 양자접촉이 이뤄지겠군.’  6자회담이 BDA문제와 연계되리라는 점은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했다. 그러나 북한이 BDA 실무회의가 열린 뒤에야 미국과의 양자접촉도 할 수 있다는 식으로 강하게 고리를 걸 줄은 몰랐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결국 2005년 9월 이후 6자회담의 역사는 BDA 문제에 철저히 속박돼 있었다. 

    지난 2005년 9월19일 만만치 않은 산통을 거쳐 미국과 북한이 모두 동의한 “공동성명”이 나왔다.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서 필요한 모든 요소들이 담겨있는, 그러나 어떻게 어떤 순서로 그 내용들을 이행할지는 명시하지 않은 느슨한 형태의 성명이었다. 그런데 그 성명이 나오자 마자 6자회담의 분위기는 갑자기 냉각됐다. 바로 BDA 문제 때문이었다.

    BDA, 방코델타아시아는 마카오에 있는 은행의 이름이다. 미국 재무부는 북한 위장기업이 이 은행의 계좌를 이용해 돈세탁을 한 혐의가 있다면서 2005년 9월20일 이 은행을 미국의 대태러법(Patriot Act 311)에 따른 ‘돈 세탁 주요 우려 대상’으로 지정했다. 금융대국 미국이 문제가 있는 금융기관이라고 지정을 하자 BDA에선 대규모 인출사태가 벌어졌다. 망하기 전에 내 돈을 찾고 보자는 고객들의 당연한 움직임이었고, 마카오 금융당국은 이 같은 금융시장의 혼란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어 예금계좌를 동결했다. 

    북한은행 계좌 20개, 북한기업 계좌 11개, 북한인의 계좌 9개, 마카오기업 계좌가 8개, 마카오인 계좌 2개 등 모두 50개 계좌였다.  여기에 묶인 돈이 약 2천4백만달러, 우리 돈으로 2백2십억원 정도가 된다.

    북한은 일관되게 “제재의 모자를 쓰고는 회담에 나갈 수 없다”면서 BDA 계좌 동결을 풀어달라고 요구했고, 미국은 “이 문제는 6자회담과 관련없는 법집행의 문제”라면서, 북한의 요구를 외면해왔었다.

    그날 저녁 나는 “북한은 BDA문제에 걸었다”는 내용으로 뉴스데스크 기사를 송고했다. 그리고 약간 논쟁이 벌어졌다. 내가 쓴 기사를 듣고 옆 자리의 한 선배가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요약하자면 ‘북한이 BDA문제에 매달리는 것인지, 아니면 BDA문제고 뭐고 이번 회담은 그냥 여는데 의미를 갖고 시간 끌기에 나서는 것인지 지금 단정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일리 있는 지적이었다.

    약간 옆길로 새는 얘기지만, 방송기사를 쓰는 입장에서 BDA는 정말 골치아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냥 “BDA 문제”라고 표현을 하자니 못 알아들을 사람이 많겠고, 그렇다고 “마카오에 있는 방코델타아시아 은행 계좌에 묶인 북한자금을 동결 해제하는 문제”라고 표현하자니 전체적으로 1분 10초 분량 밖에 안되는 기사에 너무 많은 양을 차지하고.. 정말 사람들이 듣고 이해할 수 있는 뉴스, 기사를 만들어야 하는 입장에선 딜레마가 아닐 수 없었다.

    북한에 있어 BDA는 과연 어떤 의미일까? 일단은 묶여있는 돈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 돈으로 2백20억원 정도, 2004년을 기준으로 북한의 국민 총소득(GNI)이 208억달러로 남한의 33/1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결코 적은 액수는 아니다. 일부 언론에선 BDA에 묶여있는 돈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치자금이고 그래서 많지 않지만 그 돈에 그토록 집착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물론 전술한 일부 보도가 부분적으로는 맞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설명하기엔 평양에서 나온 표현들은 너무 생생하다. 이를테면 BDA를 조사하는 미국 재무부의 행위가 “공화국의 혈관을 조이는....” 행동이라는 등등의 표현을 보면 북한에 있어 BDA문제는 묶여있는 자금 2천4백만달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는 BDA조사를 주도했던 미국 재무부의 스튜어트 레비의 미국 의회 발언 (2006.4.6 / http://www.treas.gov/press/releases/js4163) 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는 BDA에 대한 조치, 혹은 그에 의한 효과가 단순히 계좌를 동결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 사실 앞서 언급했다시피 계좌를 동결한 주체는 마카오의 금융당국이다. )  레비는 잠재적인 조치가 미국의 금융기관이 지정된 금융기관(BDA)과의 관계를 끊을 것을 요구하는 것(terminate correspondent relationships with the designated entity)을 포함한다고 언급한다. 그리고 “이러한 방어적 조치가 문제가 된 금융기관을 미국의 금융시스템으로부터 효과적으로 끊어낸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조치는 금융시장에서 어떤 효과를 발생시킬까? 일단 레비의 말처럼 BDA는 미국 금융기관과 완전히 차단됐다. 그리고 그건 미국뿐만이 아닌, 국제금융시장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북한의 입장에서 보자. 북한은 20년이 넘게 BDA 구좌를 통해서 여러 가지 거래를 했다. 그런 거래 과정에서 BDA 계좌들은 세계 각국의 다른 계좌들과 연결이 됐었다. 그런데 미국은 BDA를 국제금융의 그물망에서 분리시켰다. 다시 말해 북한은 더 이상 금융거래를 할 수 없는, 더 나아가 돈을 싸들고 다니지 않는 한 무역거래를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레비의 국회발언을 좀 더 인용해보자. 

    “ 대통령이 새로운 대량살상무기 관련 행정명령 (WMD Executive Order)에 서명한지 얼마 안된 시점인 2005년 9월, 재무부는 미국 애국법 311조의 별도 권한을 사용해 방코델타아시아 SARL을 돈세탁 우려 대상(primary money laundering concern)으로 지정했다. 이런 북한의 불법행위를 쉽게 해주는 은행에 대한 법률적 조치는 북한이 불법 행위에 관여하는 능력, 그리고 그러한 불법행위를 촉진시키기 위한 금융 서비스를 받는데 심대한 타격을 줬다. 이와 동시에 행정명령 13382 아래서, 대량살상무기와 미사일 확산에 관여된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북한의  대여섯 개의 기업을 공격적으로 특정했고, 이는 북한의 확산 시도를 차단했다. 

    311조는 재무부장관에게 법무부와 국무부의 상의아래, 그리고 연방 금융 규정 등을 참고해 권한을 부여하는데 외국의 금융기관이나 계좌 등이 돈세탁우려가 있다고 결론지을 수 있는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지 찾아내고, 미국의 금융기관들에게 그러한 우려가 있는 외국의 금융기관에 대해 특별한 조치(special measures)를 취하도록 요구하는 권한이다. 잠재적인 조치엔 미국의 금융기관들에 대해 (문제가 있는 것으로) 지정된 기관과의 협조관계(terminate correspondent relationships)를 끊도록 요구하는 것도 포함돼 있다. 이는 아주 근본적인 효과 - 단지 미국 금융시스템이 불법에 쓰이는 것을 차단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불법 금융의 리스크에 대해서 국제적으로 공지를 하는 것에도 효과가 있다.

    제임스 글레이저 미국 재무부 부차관보 - BDA 실무그룹 미국측 대표



    BDA조치에 대한 성공은 311조 권한의 효력에 대한 효과적인 사례 학습을 시켜준 셈이다. BDA는 20년이 넘도록 북한의 정부 기관 그리고 회사에 금융서비스를 제공한바 있다. 그리고 정부기관과 회사들은 화폐위조, 나코틱스의 밀수와 제조, 위조 담배의 유통 등을 포함한 불법행위에 관련돼 있다.  우리는 또한 북한의 회사들이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에 관여돼있다는 사실을 아는데 탄천은행(Tanchon Bank)도 여기에 해당된다. 탄천은행은 북한의 미사일 개발 프로그램에 돈을 대는 금융기관이다. 이 탄천은행도 BDA에 계좌를 갖고 있다. BDA는 마치 양복쟁이가 재단을 하듯 북한의 필요와 요구에 맞춤서비스를 제공했다. 사실, 은행의 관리들은 의도적으로 이들 의뢰인들의 금융활동에 대해서 응당 해야 할 기준보다 낮은 기준을 적용한 것이다.

    ▪ BDA는 북한의 관리(agents)들이 뒤가 구린(surreptitious) 행동들을 하는 걸 도와줬다. 수백만달러의 현금 예금과 인출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지 않은 것이다.

    ▪ BDA는 북한의 회사로부터 위조달러를 받아들인 것으로 생각된다. 관련해서 미국의 첩보기관이 북한의 위폐분제를 1989년 이래 조시해왔고 지난 16년간 4천8백만달러의 수퍼노트를 압수했다는 사실을 상기하는게 중요하다.

    ▪ 10년이 넘게 BDA의 고객이 돼왔던 북한의 잘 알려진 회사는 수많은 불법행위를 저질렀다. 위조 달러의 유통과 위조담배의 밀수 같은 것들이다. 여기에 더해 한 회사는 국제 마약밀매에 관여하고 있다는 의심을 오랫동안 받아왔다.

    BDA에 대해 재무부가 계속하고 있는 조사는 BDA가 불법행위에 연루돼 있다는 우리의 원리 관심을 확인시켜줘왔을 뿐만 아니라, 북한의 광범위한 부패하고 위험천만한 활동들, 동시에 북한의 광대한 불법 금융 네트워크에 대해서도 빛을 비췄다.

    BDA에 대한 애국법 311조에 따른 조치, 대테러 재무정보 조사의 결과, 지속되는 국제적 노력(international outreach efforts)에 따라 많은 기관들이 불법에 연루된 북한의 회사들에 금융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쪽으로 진보적인 발걸음을 내디뎠다. 언론 보도들은 전 세계 24개의 금융기관들이 북한과의 금융거래를 끊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이는 김정일 정권으로 들어가는 더러운 현금의 흐름을 옥죄고(constricting) 있다.

    BDA에 관한 재무부의 노력, 그리고 북한의 불법행위에 대한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범죄조사 담당 부서는 마카오 당국으로부터 제공받은 북한의 계좌 정보를 밝히기 위한 조사를 이끌고 있다. 이 조사는 미국이 311조에 의해서 돌출된 행동뿐만이 아니라 북한에 관한 더 많은 이해를 제공해줄 것이다. 여기에 더해 <대테러 재무정보 조사국>의 관리들은 국제적으로 이 문제를 확장시켜나가는 노력을 계속할 것이다 - 북한의 불법행위를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고, 그동안 재무부가 취해온 행동들을 알리는 것이다. 또, 각국 정부나 금융기관이 불법행위와 관련된 개인이나 회사와 거래를 하지 말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모든 계좌에 대해서 그러한 확장작업은 가동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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