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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상간의 말싸움 가능할까? / 2007.01.20.
    북핵리포트 2007-2012 2015. 8. 15. 12:23

    지난 14일, 필리핀 세부에서 한.중.일 정상이 회담을 가졌다. 북한 핵 문제를 비롯한 국제 및 지역 이슈, 정치·외교적 사안에 대한 긴밀한 대화와 조정을 수행하기 위해 3국 외교부간 고위급 정책협의체를 구축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기사가 된 건 이 정상회담의 내용이 아니라 정상회담 뒤 있었던 만찬에 노무현 대통령이 불참했다는 사실이었다. 특별한 사정이 없이 공식 일정에 불참하는 건 외교적으로 큰 결례이고, 과거 노무현 대통령이 이런 모습을 보인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날인 15일자 언론엔 이 정상회담에서 한-일 정상 간에 날카로운 신경전이 벌어졌고, 그것이 이후 만찬 불참 사태에 한 원인이 됐다는 내용이 소개됐다. 정부의 한 관계자가 “한.중.일 정상회의에서, 일본인 납치문제를 공동발표문에 넣자고 고집하는 아베 일본총리와 신경전을 벌였던 게 불참 원인 가운데 하나”라고 설명했다는 것. 이 과정에서 그렇지 않아도 피로가 누적됐던 대통령의 진이 빠졌고, 또 불쾌한 감정을 표시하는 한 방법으로 만찬에 가지 않았다는 얘기다.

    지지율이 50% 아래로 내려간 일본의 아베 총리는 요즘 상당히 조바심을 내고 있는 걸로 보이고, 그래서 일본인 납치 문제에 더 집착하려 하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고이즈미 총리가 북한을 방문할 때 관방장관으로 동행해 ‘납치문제’를 정치생애의 기반으로 삼았고 이른바 ‘북한 때리기’를 통해 유력 정치인으로 급성장한 인물이다. 오죽했으면 동북아 문제와 별로 연관이 없는 EU 정상을 만나서도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가 조속히 해결돼야 한다고 역설했을까.

    그러나 일반적으로 공동발표문 문안을 두고 정상 간에 날카로운 신경전이 벌어지고, 이 대목은 넣자 빼자 하는 실무적인 협상이 벌어졌다는 내용은 아무리 봐도 현실과 큰 거리가 있는 ‘넌센스’라는 게 외교부 당국자들의 설명이다. 실제로 필리핀 세부 현지에서 보내온 정상회담 내용 관련 전문(電文)은 ‘아주 평이한 내용’이었다고 한 당국자는 말했다. 물론 세상의 모든 일이 언제나 그렇듯 예외는 있기 마련이란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말이다.

    정상회담이 있고, 거기서 어떤 공동선언문이 나온다고 하면 그 선언문의 문안은 정상회담이 시작되기 전에 미리 만들어 진다. 따라서 회담에 참석하는 정상들은 그 만남 이후 나오게 될 문안에 대해 이미 숙지를 하고 있는 상태란 얘기다. 다시 말해 납치문제에 대해 어떤 수준으로 선언문에 넣을 것인지, 그 어휘선택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 대해 실무진에 의해 사전에 조정이 되기 때문에 정작 정상회담에선 이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며 말싸움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

    그렇다면 공동선언문이 준비된 정상회담에선 순수하게 의례적인 차원의 얘기만 오가는 걸까? 그렇진 않다. 공동선언문이 나오는 회담일 경우 문안이 미리 만들어졌다 해도, 그 문안에 관한 배경설명, 문안에 특정 내용이 담기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의 표시 이런 건 충분히 논의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지난 14일 실제로 납치문제에 관해 정상회담에서 신경전이 벌어졌다면, “이런 수준에서 아베 총리가 자기 생각을 얘기하고, 노무현 대통령도 이 문제에 대한 소신을 밝히지 않았겠느냐”는 게 외교부 당국자가 말하는 <합리적 추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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