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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고기 잡는 곳 댜오위타이 / 2007.01.28
    북핵리포트 2007-2012 2015. 8. 15. 12:26

    1월 25일,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BDA실무그룹 회의가 열린다는 소식은 그 어디에서도 들려오지 않았다. 사실 내가 송민순 장관과 동행해 중국에 가기로 했던 건 송 장관의 방중 그 자체도 의미가 있었지만 BDA 회의가 그 즈음에 열릴 걸로 예상이 됐었기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님도 보고 뽕도 따고 1석 2조의 효과를 노리려 했던 출장이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른 예측과 판단을 한 것이지만 그 기준이 그냥 단순한 추측 정도는 아니었다. 출장여부를 결정할 당시 정통한 국내 고위 당국자들도 BDA실무그룹 회의가 22일주 후반에는 열리게 될 것이란 얘기를 직, 간접적으로 했었기 때문이다. 출발 당시부터 약간은 맥이 빠지는 출장이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장관이 돼서 처음 중국에 가는 송민순 장관은 할 얘기가 상당히 많았을 것이다. 납북어부 최욱일 씨와 관련해 벌어진 이른 바 ‘대사관 男’사건, 그리고 국군포로 가족의 북송사건. 좀 시간이 흐른 내용이긴 하지만 이른바 중국의 <동북공정>과 관련해 발해유적의 공동조사를 요구하는 문제 등 대부분 아주 휘발성(揮發性) 강한 주제들인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좀 과장해서 얘기하자면, 그게 얼마나 중요하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그 세부사항이 알려질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란 점이다. 적어도 기자들에게 있어선.

    내가 생각하기에 기자들은 대개 일과 관련해 이중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는데, 일이 많은 것을 싫어한다는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감수성은 다른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 그렇다고 ‘기사가 없으면’ 다시 말해 열정을 다해 취재할 소재를 발견하지 못하면 섭섭해 하고 못 견뎌 하고 극단적인 경우엔 없는 기사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런데, 맥이 빠지는 출장이 될 거라는 예측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몸이 편하질 않았다. 그건 우선 송민순 장관이 탕자쉬안 외교담당 국무위원, 리자오싱 외교부장 등 중국측 인사들을 잇달아 만났기 때문이고, 두 번째로는 한국 기자들이 풀(pool)을 구성했던 직전 6자회담 취재와는 달리 이번엔 하나뿐인 카메라기자와 함께 하나뿐인 취재기자가 일일이 모든 일정을 커버해야 하는 형국이었기 때문이다.

    ▲ 중국 탕자쉬안 외교담당 국무위원

    탕자쉬안 외교담당 국무위원(부총리급) 면담은 그의 숙소인 중남해(中南海)에서 이뤄졌다. 이곳은 베이징 중심부에 위치한 당 간부들의 숙소로 경비가 아주 삼엄했다. 우리는 현지에서 렌트한 7인승 밴을 타고 갔는데, 그 차로는 중남해 내부로 들어갈 수 없고,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출입구 바로 옆에 있는 좁은 방에서 짐 검색을 마치고 버스에 올랐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버스기사가 사라진 거였다. 우리 취재진을 안내하던 우리 주중대사관 관계자가 내려 공안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질문을 했다.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10분 정도 좀 쉬고 오겠다고 나갔다”는 설명이라고 했다. 주중 대사관 관계자는 중국이 아직 <소프트웨어> 측면에선 달라져야 할 것들이 아직 많다면서 이런 해프닝은 자주 일어나는 편이라고 해설했다.

    탕자쉬안 국무위원은 송민순 장관을 기쁘게 맞았다. 그는 “당신이 장관이 됐을 때 6자회담이 잘 될 거라 예상했는데, 내 예상이 맞았다”면서 덕담을 건넸다. 탕자쉬안은 외교를 담당하는 국무위원으로 북한에도 특사 자격으로 여러 차례 다녀온 바 있는 인물이다. 그는 또 “중국 관리들은 설날 연휴를 못 쉬는 한이 있더라도 6자회담의 결과물을 내겠다는 큰 마음을 먹고 있다”면서 중국이 6자회담에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있음을 강조했다. 물론 정말 그렇게 될 것이란 예측은 아닌 것 같았다. 중국에 있어서 설날은 다른 무엇과 대체할 수 없는 1년 가운데 가장 중요한 명절이다.

    이제 송민순 장관이 얘기할 차례. 그런데 회담장에 들어와 있던 중국 측 관계자는 “이제 됐으니 나가달라”고 했다. ‘모두 발언이 공평히 담길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데....’ 한마디 해주고 싶었지만 그런 자리에서 큰 소리가 나게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난 중국말을 못하지 않는가...

    ▲ 회담장과 숙소 인공연못이 포함된 초대형 정원을 갖춘 일종의 복합 외교리조트 댜오위타이(釣魚臺). 조어대 전각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중남해를 나와 이번엔 댜오위타이(釣魚臺)로 향했다. 북한식으로 말하면 ‘낚시터’인데, 회담장과 숙소 인공연못이 포함된 초대형 정원을 갖춘 일종의 복합 외교리조트다. 정문을 통과하면서 난 약간은 가슴이 설?다.

    사실 지난번 6자회담 당시에도 조어대에 가보긴 했었다. 그런데 입구만 구경했을 뿐 안에는 들어가 보지 못했다. 그건 조어대가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는 장소이기 때문. 취재단이 들어가긴 했지만 중국 당국에서 들어갈 수 있는 인원수를 제한했기 때문에 카메라기자를 빼면 취재기자는 기껏해야 두 명 정도만 가볼 수 있을 뿐이었다. 당시 프레스센터에서 제비뽑기를 했었는데 난 안타깝게도 탈락했다.

    조어대. 꽃피고 신록이 푸르른 계절이 아니어서인지, 생각만큼 아름답지는 않았다. 아직 시간이 안 됐다는 이유로 한-중 외무장관회담이 진행될 건물 안으로 들여보내주질 않아서 추운 건물 밖에서 벌벌 떨며 기다리다 보니 조어대 내부로 들어왔다는 감동이 빛 바랬던 모양이다. 그러나 이 상황은 오히려 행운이 됐다. 조어대 전각의 모습을 촬영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난 거였다. 심지어는 기념사진도 몇 장 찍었다.

    우리 측 관리가 중국 측에 얘기를 해서 회담시작 10여 분 전에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몰랐었는데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일본 외무 차관이 송 장관 직전 리자오싱을 먼저 만났던 거였다. ‘아, 그렇구나.’ 나는 머리를 굴렸다. ‘6자회담 관련국 연쇄접촉이군.’ 송민순 장관은 중국으로 건너오기 전 라이스 미 국무부 장관, 아소다로 일본외상과 전화통화를 했으니, 러시아를 제외한 모든 6자회담 참여국들이 며칠 사이에 다각적인 교차 접촉을 갖고 6자회담 개최 시기와 의제에 대해 논의를 한 셈이었다.

    야치 차관은 내가 잘 모르는데 낯익은 사람의 얼굴이 그 일행 가운데서 눈에 띄었다. 그건 사사에 일본 측 6자회담 수석대표. 물론, 사사에 대표는 나를 모르겠지만 나는 지난 번 6자회담 때 세인트 레지스 호텔에서 몇 번 그를 만난 터라 아는 척을 하며 접근했다. “몇 가지 질문을 해도 될까요?” 그런데 그는 소곤소곤 답을 했다. “지금은 안돼요” 그러면서 그는 야치 차관을 가리켰다. 자기 보스가 있는 상황에서 기자와 만나 질문에 답할 수는 없다는 얘기였다.

    복도에서 서성이다 이번엔 중국 리자오싱 외교부장을 마주쳤다. 약간 머뭇거렸지만 또 뻔뻔하게 나섰다. “한국에서 온 기자입니다. 반갑습니다.” 명함을 주니 받는다. 못 받는다고 거부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가까이서 실물로 본 리자오싱은 옆집 아저씨 같은 인상이었다. 함께 간 연합뉴스 조준형 기자의 성을 언급하면서 “중국에선 백가 가운데 조 씨가 첫 번째”라면서 엄치손가락을 치켜세우는 몸짓을 해보이기도 했다. “6자회담 개최일자에 대한 협의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기자는 자고로 얼굴이 두꺼워야 한다. 리자오싱은 “베를린 북-미 접촉 이후 정세가 좋은 쪽으로 가고 있다”며 기자의 질문에 답을 하는 성의를 보였다. 물론 곧바로 기사를 쓸 수 있는, 영양가 있는 말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송민순 장관과 리자오싱 중국 외교부 장관의 회담 모두발언 취재를 끝내고 우리는 서둘러 버스에 올랐다. 중국과의 시차는 1시간, 중국이 저녁 8시라면 서울은 9시. 따라서 기사 마감시간도 갑자기 1시간이 빨라진 거였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노트북을 꺼내 버스 안에서 기사를 써내려갔다. “6자회담 관련국 연쇄접촉”이란 제목의 내 기사는 초읽기에 들어간 6자회담과 관련해 한국과 중국, 미국, 일본 등이 성과 있는 회담을 만들기 위해 분주하게 접촉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두 번째 베이징 방문 첫날은 그렇게 마무리 돼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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