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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미 정상회담 주요인물 [2] 북한
    2018 북미정상회담 2018. 6. 1. 11:41


    김여정 / 북한 당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김여정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3남4녀 중 4녀. 2011년 전까지 공개 석상에 보이지 않았으나, 2011년 1월 14일에 싱가포르 공연장에서 김정일의 차남인 김정철과 함께 공연을 관람하고 자동차에 타는 모습이 포착. 김정일 사후 영결식장에서 포착되기도. 


    2018년 2월 9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 일행과 함께 김정은 전용기를 타고 도착. 9일 저녁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고 10일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 접견, 오찬 회동을 한 후 11일 일정을 마치고 밤 늦게 북한으로 돌아가. 문재인 대통령과의 청와대 접견 자리에서 그녀는 김정은의 특사임을 직접 밝혀.


    2018년 3월 5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정원장을 비롯한 대북특사단을 환영하기 위해 김정은이 연 만찬에 리설주과 함께 참석. 


    4월 27일 2018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을 밀착 수행. 김정은에게 볼펜이나 장갑을 건네주는 등 가장 가까이에서 수행하는 비서실장 같이 활동. 비공개회담에서 김정은 바로 옆자리에 배석하는 등 확실한 정권내 2인자의 모습을 보여.


    2018 2차 남북정상회담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을 마중.





    김영철 /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 


    1946년 량강도에서 태어나 만경대혁명학원,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졸업했다. 1962년 인민군 15사단 DMZ 민경중대에서 근무했으며, 1968년 인민군 소좌로 푸에블로 호 미국 정보함 납치 사건 당시 군사정전위원회 연락장교.


    1989년 2월부터 1990년 7월까지 조선인민군 소장, 인민무력부 부국장의 자격으로 남북고위당국자회담 예비접촉 북측대표(1~8차)를 지내. 1990년 9월부터 1992년 9월까지는 남북고위급회담 대표(1~8차)를 역임했으며, 1992년 3월부터 8월까지 남북고위급회담 군사분과위원회 북측위원장(1~7차)을 지내. 1992년 5월 남북군사공동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2000년 4월 남북정상회담 의전경호 실무자접촉 수석대표. 2006년 3월부터 2007년 12월까지 인민군 중장으로 남북장성급 군사회담 북측대표(3~7차)를 맡아. 


    김 부위원장은 2009년 각종 대남·해외 공작을 담당하기 위해 신설된 정찰총국장에 임명돼. 2010년 11월 조명록,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 당시에 국가 장의위원회 위원. 2013년 인민군 대장으로 승진. 2014년 10월 판문점에서 남북 군사군사당국 접촉 때 대표 중 한명으로 참석. 2016년에는 당 중앙위 부위원장, 통전부장, 당 정치국 위원은 물론 국무위원회 위원에도 올라.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 폐회식 당시 북측 고위급대표단으로 방남. 

    2018년 4월 2일 남측 예술단 평양공연 취재제한을 사과하면서 자신을 '남측에서 천안함 폭침 주범이라는 사람'이라고 말해. 

    2018년 4월27일 남북 정상회담 당시 레드카펫을 따라 평화의집으로 이동할 때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과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무심코 따라 걸었다가 당시 김창선(사진) 북한 국무위원회 부장이 제지. 

    2018년 5월 26일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전격적으로 성사된 2차 남북정상회담은 서훈 국가정보원장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 간의 연락 채널을 통해 제안이 들어와 성사. 

    2018년 5월 31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회담


    참고 : 


    권력 되찾은 김영철, 작년 여름 CIA에 "만나자" 접촉 (기사링크)

    Gen. Kim Yong Chol (영문자료 링크)




    김성혜 / 노동당 통일전선부 통일전선책략실장 


    김성혜 통일전선부 통일전선책략실장은 ‘대남일꾼’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북한의 대표적인 한국통.


    1965년생 김일성대 출신으로 알려진 김 실장은 “똑똑한 달변가”로 평가 받고 있다. 평소에는 유한 성격이지만 북측 입장을 설명할 땐 자기 주장이 매우 확실. 주로 유화적인 국면에서 회담 등에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알려져. 


    김 실장은 대남 업무를 주로 수행해 우리 측에 노출이 비교적 많이 된 북측 인사. 2003년 제주 남북평화축전에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일원으로 방남한 것을 시작으로 2005년 6ㆍ15 남북공동행사 실무협의 대표, 제15~16차 남북 장관급 회담 수행원을 맡아. 


    주요 인사의 의전도 김 실장의 전문 분야다. 2007년 남북 정상회담 시 우리 측 수행원 안내 역할을 맡았고, 지난 2월 9일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의 방남 일정에 동행해 그림자 수행을 했다. 2011년 12월 이희호 여사가 김정일 국방위원장 조문을 위해 개성을 방문 때 영접을 맡아. 2002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유럽-코리아 재단 이사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했을 때 3박 4일 동안 근접 수행. 당시 비가 쏟아지자 박 전 대통령에 우산을 씌워주는 사진이 찍히기도.


    30일 북미 정상회담 협의를 위해 미국으로 출발한 북한 방미단에는 최강일 외무성 북아메리카국장대행 등 주로 미국통 인사들이 동행했다고 알려졌다. 때문에 김 실장의 방미일정 동행은 의외라는 평가다. 6월1일 (미국 현지시간) 김영철 방미때 동행해 트럼프와 인사를 나누기도.  


    참고 : 


    한국일보, ‘대남일꾼’ 별명 가진 한국통… 북한서 “똑똑한 달변가” 평가 (기사링크)




    김창선 / 국무위원회 부장 


    김씨 일가의 '집사'라는 평가를 받는 김창선 부장은 1970년대 중반부터 10여 년간 인민무력부 대외사업국에서 일하다 당 중앙위 행정부로 자리를 옮겨. 


    1993년 당 서기실 부부장으로 승진한 뒤 다년간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보좌하면서 '막후 실세' 역할.


    이후 그는 2012년 초부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비서실장격인 서기실장을 맡게 되면서 2대에 걸쳐 최고 지도자의 수족 역할. 


    4·27 남북정상회담 때도 경호·의전·보도 분야 실무회담의 북측 수석대표를 맡아 정상회담의 세부 사항을 조율. 레드카펫에 올라간 김영철의 팔을 끈 사람. 





    리용호 / 외무상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측근이었던 리명제 전 조직지도부 부부장의 아들인 리용호는 평양외국어대 영어학부를 졸업하고 외무성 국제기구국 과장과 부국장, 주영 북한대사를 지내. 


    그는 1990년대 초부터 핵 문제를 비롯한 각종 대미 협상에 참여하면서 북한의 차세대 외교 주역으로 주목받아와. 2010년 외무성 부상 자리에 올랐으며, 이듬해에는 6자 회담의 북측 수석대표를 맡기도. 2016년 5월 열린 7차 노동당 대회를 통해 리수용의 후임으로 외무상에 올라. 


    2011년 9월21일 있었던 베이징 2차 남북 비핵화 회담에서 "우라늄 농축은 평화적 핵이용" 이라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면서 "농축활동을 중단하려면 9.19 공동성명에 약속된 경수로가 제공되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경향신문의 유신모 워싱턴 특파원이 정통한 복수의 외교소식통을 인용해 보도.  


    리용호 외무상은 2017년 10월만 해도 “핵무기 놓고 협상 못해…미국과 힘 균형 거의 도달”라고 언급한 바 있음. (기사참고)


    북한 조선중앙방송은 2018년 5월 8일 김 위원장이 중국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을 방문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만났다고 전하면서 리수용·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과 리용호 외무상, 최선희 외무성 부상 등이 수행했다고 보도. 김 위원장과 시 주석 간 회담에는 리수용·김영철 부위원장과 리 외무상이 배석. 




    김계관 / 북한 외무성 제1부상


    9.19 공동성명에 이어 2.13 합의까지 그동안 북한 핵협상의 주요 국면에서 6자회담 수석대표를 맡는 등 북한의 대미 협상 창구로 활약한 인물. 


    그는 그동안 활동이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2018년 5월 16일 긴 침묵을 깨고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 담화’ 형식으로 북핵·대미 외교무대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 그는 존 볼턴 미 국가안보보좌관과 그가 내세운 이른바 ‘리비아식 비핵화 해법’을 맹비난. 


    이후 트럼프가 공개 서신을 통해 '회담을 취소한다'고 하자 다시 입장문 내. 


    그의 갑작스런 재등장을 두고 해석이 분분했는데 일흔다섯의 고령으로 건강이 좋지 않다고 알려져, 당시 담화가 그의 이름을 빌렸을 뿐이라는 관측도. 반면 김 부상이 관절염이 심해 활동이 어렵지만, 북쪽 관계자들한테서 “(김 부상이) 요즘도 종종 (김정은) 위원장께 조언을 하신다”고 들었다는 얘기가 들리기도. 


    회담 취소 '빌미' 준 김계관…9일 만에 '결자해지' (기사링크)




    최선희/ 외무성 부상   


    김정은 체제의 대표적 대미 협상 창구. 북한 권력서열 3위로 내각 총리를 지냈던 최영림의 수양딸로 알려진 최선희 부상은 오스트리아, 몰타, 중국 등에서 유학을 한 것으로 전해져. 유창한 영어 실력의 보유자로 알려진 최 부상의 통역에 관한 일화는 외교가에서 유명. 최 부상이 자신의 판단에 따라 상대의 말을 제대로 다 전하지 않는 등 ‘제멋대로 통역’을 한다는 것인데 그가 ‘실세’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얘기가 뒤따랐다. 


    최 부상은 1980년대 중반께 외무성 근무를 시작했다고 알려져. 지난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열린 6자회담에 북측 수석대표의 통역을 전담. 2010년께 10월께 미국 부국장으로 승진한 것으로 알려져. 2011년 7월 6자회담 북쪽 차석대표로 임명.


    최 부상은 북한에 억류됐다가 혼수상태로 귀국한 직후 숨진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 석방 협상(2017. 6) 당시 조셉 윤 전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카운터파트. 


    최 부상은 대북 강경 발언을 한 마이클 펜스 미 부통령을 겨냥해 “횡설수설하며 주제넘게 놀아댔다”며 “미국이 우리의 선의를 모독하고 계속 불법 무도하게 나오는 경우 나는 조-미 수뇌회담을 재고려할 데 대한 문제를 최고 지도부에 제기할 것”이라고 경고.


    ‘12번 방북’ 성김·‘6자회담 통역’ 최선희, 6·12담판 잘될까 (기사링크

    '미니 6자회담' 北 여성대표 최선희는 누구? (기사링크)




    최강일/ 외무성 북아메리카 국장 대행 


    한 언론이 인용한 당국자에 따르면 “올해(2018) 북한 외무성의 소폭 인사가 단행됐다. 지난해 말까지 국장(북아메리카국)을 맡아 대미 협상과 6자회담 등 북핵 문제를 전담해 오던 최선희가 외무성 부상(차관)으로 승진했고, 최 국장 후임으로 최강일이 임명된 것으로 안다”고 설명. 또 다른 당국자는 “(최강일은) 지난달 25일 김영철 당 부위원장(옛 대남담당 비서)과 함께 방한하기 전 북아메리카국 부국장으로 알고 있었다”며 “그러나 방한 때는 국장 자격으로 방한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전해. 

      

    최강일은 1994년 북한이 플루토늄 핵탄두 개발을 포기하는 대신 국제사회가 북한에 경수로를 제공키로 했던 북ㆍ미 제네바 합의 협상에 실무자로 참석한 이후 줄곧 북핵 문제를 다뤘다. 북ㆍ미 협상에 잔뼈가 굵은 전문가로 통해.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2월 25일 서울 방문.


    핀란드 방문 북한 최강일,최근 승진한 그는 누구? (기사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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