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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자회담 5차3단계 회의 취재기 (2) / 2007.02.22.
    북핵리포트 2007-2012 2015. 8. 15. 12:38

    지나친 과속?

    첫날, 개막식도 없이 바로 협의에 들어갈 거라고 전망했던 내 아침 리포트가 무색하게 수석대표회의 이후 간단한 개막식을 여는 것으로 6자회담이 시작됐다. 뒷얘기를 들어보니 ‘의전’을 신경쓰는 중국이 ‘이왕 하는 거, 개막식을 하는 게 여러모로 좋지 않겠냐’고 우겼다고 했다. 회담은 초장부터 속도를 내고 있었다. 중국이 하루 이틀 내 초안을 돌릴거란 얘기가 들렸다. 서울의 당국자는 “그럴 것”이라고 확인했다.

    외교부 취재는 대개 뻔히 그러리라 논리적으로 추측이 가능한 부분이 많지만, 그렇다 해도 당국자의 “그렇다”는 말을 직접 들은 뒤에야 기사를 쓸 수 있다.

    법조 출입 기자, 특히 대검찰청이나 서울중앙지검 등 검찰을 출입하는 기자들은 형사소송법을 숙지하면서, 검사들의 수사상황에 대해 추론을 하고 추론을 통해 만들어지는 가설로 뼈대를 세워 확인취재를 하는 과정을 거치는 경우가 많다. “사고(思考) 게임”, 다시 말해 탐정놀이를 한다는 측면에선 외교부 기자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6자회담 취재라고 하면, 6개 나라의 처지, 더 좁게는 미국과 북한의 입장에서 핵과 에너지 지원이라는 상대적인 물건을 놓고 각각 어떻게 흥정을 벌여갈 것인지 일종의 ‘게임’의 구도에서 조망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틀에 각 수석대표들이 아침저녁으로 어떻게 발언을 하는지, 그 분위기가 어땠는지 등을 정보로 입력해 지금 협상장에선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추론하는 것이다.

    그래서 당국자의 “말”은 그 추론에 날개를 달아주는, 용 그림에 눈동자를 완성시키는 엄청난 존재감을 갖는다. 그래서일까.. 대검찰청 수사기획관의 브리핑은 일종의 ‘선문답(禪問答)’을 연상시킨다는 측면에서 외교부 당국자의 브리핑과 아주 꼭 닮아있다.

    초안을 돌렸으니 일단 출발선을 빨리 벗어난 형국이었다. 그러나 외교협상에서 출발을 먼저 했다고 해서 도착을 먼저 할 거라는 보장은 없다.

    물론 일본 언론들의 보도는 이미 시작하기도 전에 협상을 끝낸 형국이었다.  8일자 아사히 신문은 “베를린에서 열린 회동에서 각서를 교환했고, 북-미 양측이 이 각서에 서명까지 했다”고 보도했다. 정부 당국자는 이 보도를 부인했다. 그러나 그 부인에도 불구하고 아사히 신분의 보도가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당시 우리 당국자의 말들을 자세히 뜯어보면 ‘사인을 하지 않았다’에 방점이 찍혀있지 어떤 문건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완강히 부인하는 태도는 아니었기 때문.

    거짓말이란 걸 알면서도 속아줄 수밖에 없는 처지. 당국자의 입장에서 제 3국간에 한 외교적 행위에 대해 나서서 확인(confirm)해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국내 언론들까지 이 보도를 따라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얘기를 않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애매한 상황인 것.

    그날 오전 숙소를 빠져나가다가 대기하던 기자들을 만난 크리스토퍼 힐 미국측 수석대표는 “무엇인가에 서명한 적이 없다 (We did not sign anyting)”는 애매한 표현으로 상황을 벗어나려고 시도했다.

    그날 저녁, 천영우 본부장은 밤 사이, 아니면 다음날인 9일까지는 만들어진 합의문서 초안을 돌리게 될거라고 공식 확인했다. 이어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Devil is in detail.)는 협상 격언을 언급했다. ‘큰 틀에서 뭐가 다 된 것 같아도 세부사항에 들어가서 최종적인 합의가 이뤄지려면 여러 가지 어려움이 생기기 마련’이라는 뜻이다.

    임성남 협상 차석대표는 “침을 튀겨 점을 치라면 초안을 돌리는 시간이 12시 안이 될 것 같다”고 말했고, 협상장 분위기를 목격한 외교부 관계자는 6자 모두 “튀는”발언을 하지 않았다고 말해줬다.

    그날 저녁 이른바 ‘현지 외교소식통’들과 저녁식사를 함께 하게 됐다. 화제는 물론 6자회담. 참석자 가운데 한 사람이 상해증권보가 4자성어 형식으로 각 나라의 입장을 표현했다면서 기사를 소개했다.  

    북한 : 以核換油 - 핵으로 기름을 바꾼다.

    한국 : 以援換核 - 원조를 통해 핵을 바꾼다.

    이 대목에서 한 외교소식통은 중요한 발언을 했다. 아마도 이번 합의의 결과가 지난 94년 제네바 합의 때와는 달리, 에너지 지원에 있어 우리나라가 많은 몫을 담당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였다. 협상이 아직 진행되고 있는 상황인 걸 감안하면 일종의 천기누설인 셈.

    그런데 난 이 발언의 배경엔,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떤 ‘의도’가 있는 것이라고 받아들였다. 왜냐면 비슷한 시점에 서울에서도 아주 고위급에서 비슷한 얘기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왜일까.. 일종의 예방주사랄까.. 한 번에 충격을 주게 되면 그 충격의 강도가 너무 크니까 조금씩 조금씩 때로는 “오프”를 전제로, 어떤 경우엔 당국자의 말로 인용할 수 없는 외교소식통을 통해 그림을 살짝 살짝 보여주는 거다.

    그러나 내 입장에선 아직 기사화하긴 이르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합의가 나올지, 그렇지 않을지.. 합의 자체가 만들어질 수는 있는  것인지를 모르는 상황에서 대체에너지의 분담원칙을 왈가왈부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저녁까지 먹었지만, 아직 일을 끝내고 잠자리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건 “침을 튀겨” 12시 안에 합의문 초안 회람이 돌 거라고 했는데 실제 돌았는지 아닌지 확인을 해야 다음날 아침 기사를 쓸 수가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 한국시간으로 1시가 넘어 초안이 돌았다는 정보가 프레스룸에 도착했다.

    그렇게 6자회담 첫날은 이미 두 번째 날로 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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