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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자회담 5차3단계 회의 취재기 (3) / 2007.02.22
    북핵리포트 2007-2012 2015. 8. 15. 12:40

    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는 몇일까? 

    해외출장이 다 그런 건지는 몰라도 북경 6자회담 출장은 언제나 일과 쉼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문제가 있다. 프레스센터가 우리가 묵는 메리엇 호텔 2층에 마련돼 있기 때문에, 잠이 깨서 일어나면 곧바로 일이 시작되는 그런 구조인 것. 

    게다가 당국자의 설명은 한국 시간으로 저녁 9시 전후, 크리스 힐이 숙소에 돌아가서 한 마디 하길 기다리려면 적어도 밤 10시가 11시는 돼야 하기 때문에, 아침뉴스 리포트까지 만들면 1시는 넘어야 일이 끝난다고 보면 된다.

    어쨌든 전날의 피로가 다 풀리지 않은 몽롱한 상태에서 회담 이틀째를 맞게 됐다. 초안은 밤늦은 시각에 각 대표단에 도착이 됐고 밀고 당기는 협상, 진짜 협상이 이틀째 날부터 시작되는 거였다.

    내가 베이징 출장을 가면서 품었던 가장 큰 궁금증 가운데 하나는 과연 “중유”와 “영변 핵시설의 동결”을 바꾼 지난 94년 제네바 합의를 어떻게 넘어설 수 있는가, 다시 말해 어떻게 “AF 플러스 알파” 상황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점이었다.

    그래서 전날 밤, 크리스토퍼 힐이 숙소 앞에서 “나는 동결(freezing)에 관심이 없고, 플루토늄 생산 프로그램 자체를 없애는 것에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는 걸 전해 듣고는 머릿속에서 갑자기 여러 가지 생각들이 세탁기에서 빨랫감들이 돌듯이 막 회전하고 엉키고 하더니 갑자기 하나의 생각으로 정리가 됐다. 

    “동결엔 관심이 없다”는 힐의 말과, “one digit weeks 안에 이행돼야 한다”는 미국 국무부 대변인의 발언 이런 것들을 종합해서 ‘아, 혹시 지난 94년 제네바합의에서 합의는 했지만 실제 이행에 옮기지 못한 핵 연료봉의 제 3국 이동을 이번엔 하기로 북-미가 합의한 것 아닐까?’ 하는 나름의 추론에 도달하게 된 것. 순간적으로 아무런 힌트 없이 답을 너무 정확하게 맞춘 게 아닌가 스스로 놀라워하는 촌극을 벌이기도 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런 내 추론은 잘못된 것이란 게 금방 확인됐다. 서울의 한 외교소식통은 “그 쪽으로는 취재하지 말라”면서 “오류”라는 딱지를 확실히 붙여줬다. ‘그러나 왜 One digit weeks일까, 최장 9주.. 그러니까 약 2달이 되는 것인데.....’ 하는 의문은 지워지질 않았다. 두달, 그리고 94년 제네바 합의 상황과 차별화할 수 있는 무엇. 이것이 이번 6자회담의 최대 이슈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더 이상 접근할 수 없는 답답한 상황이 계속되는 거였다.  

    오전 10시부터 수석대표회의가 시작됐다. 회담장의 소식통은 “상당히 진지한 분위기에서 회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소식을 전해왔다. 그리고 현지시각으로 낮 2시가 조금 안된 시각, 북한과 미국이 댜오위타이(釣魚臺) 밖에서 점심을 먹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나쁜 소식은 아니었다.  회동이 끝난 뒤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크리스토퍼 힐은 회담 전망을 묻는 질문에 “조심스럽게 낙관적”이라고 하면서도,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기 전에 숫자를 세고 싶지 않다 (but I don't want to count chickens before they hatch.)”고 했다. 이어 김계관 북측 수석대표도 취재진에 둘러쌓였는데 “의견일치를 본 것도 있고, 일련의 대치점도 있는데 타개하고자 한다”는 과거의 논법에 비춰 상당히 긍정적인 말을 했다. 이어 크리스 힐과 약속이나 한 듯이 “닭이 깨나오기 전에 몇 마리인가 세보느라 애쓰지 말고 좀 푹 지켜보십시오”라고 기자들에게 여유 있게 답했다. 

    당연히 기사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 “의견일치”라는 단어가 있었고, 대치점이 있지만 타개하고자 한다는 “의지”도 나타낸 것. ‘이번엔 뭔가 되려나 보다...’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저녁 7시 경, 회담 분위기가 너무 진지하다는 관계자의 전언이 있은 뒤, 임성남 북핵 기획단장의 공식 브리핑이 있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우리측 공식 브리핑에선 전혀 건질 게 없었다. 기껏해야 “인식이 모아지고 있는 부분도 있고, 모아지는 과정에 있는 부분도 있다”는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할 수 있는 얘기가 있을 뿐. 언젠가 언급했듯이 그야말로 선문답(禪問答)의 수준인거다. 곧 이어서 익명을 요구한 관리의 브리핑이 이어졌다. 그러나 역시 “다른 나라 대표단의 자세가 매우 진지하고 실무적이다”는 정도의 언급이 있었다.

    그날 MBC취재팀에서 1번 타자와 2번 타자는 이미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난 원래 차례는 아니지만 크리스토퍼 힐 차관을 만나러 세인트 레지스 호텔로 직접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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