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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러지원국 해제 / 2008.10.13.
    북핵리포트 2007-2012 2015. 8. 16. 15:49

    미국은 현지시각으로 11일, 북한을 테러지원국 리스트에서 제외한다는 조치를 발표했다. 지난 1987년 KAL기 폭파사건이 발생하고 그 다음해 초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된 뒤 20년 9개월 만에 일어난 일이다. 발표는 라이스 국무장관이나 부시 대통령이 아니라 션 매코맥 대변인이 맡았다.

    그간 한반도에는 2차례의 핵 위기가 있었고, 클린턴 행정부 당시 그리고 부시정부 아래서 많은 협상이 있어왔다. '관계 정상화'라는 용어는 숱하게 쓰였었지만, 다가서는 듯 했다가 좌절되고 돌파구가 열렸다가 다시 수포로 돌아가는 '악순환'속에서 북한이 테러지원국에서 제외된 건 미국 민주당 클린턴 정부 아래서도 달성되지 못했던 실로 기념비적인 일이다.

    그러나 미국은 물론, 국내 언론까지 이번 테러지원국 해제 문제에 대해서 인색한 평가가 나오고 있다. 우선 최근 북한을 다녀왔던 크리스토퍼 힐의 협상과정에 '뭔가 또 한자락 깔려 있는 문제가 있을 거다'는 의심. 두 번째로는 공개된 북.미간의 합의문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도리깨질을 해 보면 남는 건 북한이 신고한 제한된 시설에 대해서 시료채취를 할 수 있다는 정도지 그 이상은 손에 쥔 것이 없는 것 아니냐'는 평가인 것.

    북한이 그동안 미국이 주장해 왔던 3가지 포인트, 그러니까 플루토늄은 물론 우라늄 농축 문제, 마지막으로 핵확산 문제(시리아와의 핵 협력) 이 모두에 대해 검증을 받겠다고 했지만 최소한의 검증을 시작하는 것도 미국의 차기 정권으로 넘어갈 걸로 예상되는 시점에서 사실 '너무 먼'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방사성 폐기물 저장소 등 신고에 포함되지 않은 시설들에 대한 검증문제는 북한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고 했기 때문에 정확히 따지자면 1994년 제네바 합의가 만들어지던 당시의 문제를 완전히 넘어섰다고는 할 수 없다.

    요컨대 세계를 통째로 흔들고 있는 경제문제로 더 이상 추락할 곳도 없어진 부시 행정부가 초읽기에 쫓겨 이번에도 역시 허술한 협상을 했다는 평가가 '다수설'로 여겨지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이번 '해제'가 결코 그 의미를 과소평가 할 수 없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국무부는 브리핑을 하면서 2가지 자료(fact sheet)를 준비했다고 기자들에게 강조했다. 하나는 북한과 검증방법에 대해 어떻게 합의했는지, 그리고 두 번째는 북한이 테러지원국 리스트에서 빠지긴 했지만, 아직도 씨줄 날줄처럼 여러가지 제재들이 남아있다는 점을 강조한 보도자료였다. 우리가 짚어봐야 할 부분도 이 국무부의 보도자료에서 출발 할 수 있을 거다. 

    뒷 부분부터 시작해 보자.

    정승혜 기자의 12일 리포트를 인용하자면 이번 조치를 통해 북한은 "인도적 지원 이외의 모든 원조와 국제금융기관의 차관제공, 군수품 수출, 특혜관세 부여를 받을 자격을 회복"하게 됐다. 당장 북한은 IMF나 IBRD등 국제금융기관에서 자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미국에 떼를 쓰겠지만 테러지원국 해제 조치로 당장 가능해 질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그건 북한도 잘 알고 있을거다.

    또, 국무부가 특별히 자료를 배포했듯이 WMD(대량살상무기) 확산과 핵실험 실시에 따른 조치등 많은 다른 제재들이 시퍼렇게 살아있기 때문에 '경제적인 효과'는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미국내에 동결돼 있는 자산도 바로 찾아오지 못할거다. 

    그런데 이처럼 '당장의 실익'이 없다는 걸 알텐데도 북한은 최고 지도자인 김정일 위원장이 와병중인 상황에 힐 차관보를 초청하는 결단을 내렸고, 밑에 뭐가 깔려있는지는 몰라도 일단 돌파구를 만들어 냈다. 국제사회에 북한이 뭔가 일이 발전하는 방향으로 '전략적인 선택'을 내릴 수 있는 집단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대목이다. 

    두 번째, 북한은 미국과 '합의'를 만들어 냈다. 어쩌면 일방적일지도 모르는 미국의 합의 내용 발표에 대해 북한은 12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고분고분하게 "환영한다" "불능화 재개한다"고 했을 뿐 내용이 뭐가 잘못됐다는 둥 토씨를 달지 않았다. 앞서 언급 한 것 처럼, 테러지원국 리스트에서 북한이 제외되는 바로 그 지점에 일단 첫 발을 디디게 된 것이다. 그동안 내내 '관계정상화'가 다가오는 듯 했다가 다시 제자리 혹은 더 후퇴한 자리로 돌아가고 마는 메비우스의 띠를 끊고 '일보 전진'을 이룩한 거다.

    이렇게 되면서 다음 미국정권을 누가 차지하게 되건 간에 적어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은 피하게 된 거다. 가정해 보자. 일이 이렇게 전개되지 않고 만약 양측의 긴장도가 높아지는 상황으로 치달았다면 오바마건 매케인이건 간에 북한에 대해 온건한 정책을 쓰려 하겠는지. 매케인은 당연히 아닐거고, '직접 만날 수 있다'고 했던 오바마 역시 믿을 수 없는 상대를 만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또 하나, 기술적으로 볼 때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불능화를 중단하고 다시 영변 핵시설을 가능하는데 얼마나 걸리는지 전문가들 사이에 논란이 있는데, 중요한 건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다시 영변 원자로를 가동시킬 가능성은 낮아진다는 점이다. 우선 '유지보수'를 하지 않고 있는 떼어낸 장비들이 녹이 슬고 있을 거고 두 번째, 꺼내놓은 '사용 후 연료봉'도 시간이 갈 수록 재처리하기에 부담스러운 불안정한 상태로 바뀔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언론들을 통해,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통해 여러가지 문제점들이 지적되고 있고 반복되는 얘기일 텐데 나는 두 가지 정도를 짚어보고 싶다.

    지난 번 칼럼에서도 얘기했지만 6자회담은 탄생 배경이 어찌 됐건, 또 그 회의 진행이 얼마나 비효율적이건 간에 한반도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유용한 틀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이번 미국의 조치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이 틀은 심하게 훼손됐다.

    다 된 밥에 재를 뿌리기라도 하듯, 아직 6자회담 당사국들의 의견교환이 끝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일본의 언론은 "미국이 테러지원국을 해제하기로 했다"고 선수를 쳤다. 언제나 특종 뒤에는 그 정보를 흘린 사람의 의도가 숨어있는 거고 일본 관리들은 테러지원국 해제 조치가 나온 뒤 대놓고 문제를 삼았다.

    지난 번에도 일본을 달래느라 애를 먹었던 미국은 이번엔 '더 이상 시간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거의 일본을 무시하고 테러지원국 해제를 강행했다. 최근 열렸었던 북-일 회담의 결과물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미국도 할 말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일본은 이번 일로 매우 토라진 듯 하다. 납치문제에 대해 북한이 성의를 보여주지 않는 한 앞으로 일본은 6자회담의 틀 내에서 '기여' 보다는 '훼방'을 하려고 들 것이다.

    두 번째, 6자회담의 또 다른 한 축이면서 미묘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질이나 양 모두에서 지금 이명박 정부는 6자회담에 관한한 미국으로 부터 과거보다 못한 정보를 얻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당연한 것이 과거 미국은 북한의 입장을 더 명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우리측과 긴밀히 정보를 공유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과거만큼 남.북 6자회담 수석대표의 교감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미국이 우리 관리에게 줄 정보만 있지 받을 정보는 없다는 얘기다.

    이는 어떤 관리 개인의 문제라기 보다는 지금 우리 정부가 취하고 있는 스탠스와 관련된 일이다. 그래서 잠시 뜸 했던 '통미봉남'이라는 단어가 이 대목에서 다시 등장하고 있다.

    얼마 전에 기사도 나왔지만 북한은 지금 대대적으로 평양을 단장하고 있다. 그리고선을 댈 수 있는 나라면 어디건 열심히 접촉을 하고 있다. 이를 두고 테러지원국이라는 '낙인'을 벗고나면 외국 자본을 끌어들이고 스스로 하기 힘든 자원 개발에 나서고 이런 일들을 하려고 차분하게 준비를 하고 있다는 해석도 있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는 것이지만 만약 그런 흐름이 현실화 된다면 이미 중단된 금강산 관광에 이어, 삐라를 문제삼아 '축소'를 경고하고 있는 개성공단 프로젝트가 어느날 중단되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개성공단 부지를 마련하느라 더 북쪽으로 쫓겨났던 북한군 부대가 다시 남쪽으로 이동하게 되는 일은 없을까?

    쓸데없는 비관론인지 모르지만, 한 번 생각해 볼 필요는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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