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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자회담, 위기의 현실화 / 2008.11.15.
    북핵리포트 2007-2012 2015. 8. 16. 16:24

    미국의 새로운 정권 탄생에 북한은 상당히 신속하고 전략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선거 직후 이근 북한외무성 국장은 현 부시정부의 국무부 관리는 물론 차기정부 인사와도 만날 약속을 해 놓은 상태였고, 간단히 면담하는 자리가 아니라 토론회 자리를 빌어 앞으로 오바마의 사람들과 새정권의 대북정책이 어떻게 흘러갈지에 대해 직접 탐색해 보는 기회도 가졌다.

    리근 미국국장은 우리 시간으로 7일, 크리스토퍼 힐과의 만남 뒤에 기자들의 질문에 "지금까지 여러 정책을 추구하는 행정부를 대상(상대)해왔고 그 어떤 행정부가 어떤 정책을 위하더라도 그에 준비돼 있다"고 말했다. 그 발언 내용도 그렇지만, 그 발언을 하는 그의 표정은 상당히 부드러웠고, 대부분의 기자들이 북한의 '유화적인 제스쳐'로 받아들였다. 북한은 이틀만에 오바마의 당선을 보도했다. 오바마가 대선과정에서 '직접대화'를 언급한 바 있기 때문에, 당선 이후 북-미관계 문제에 대해 '관계개선 문제가 속도를 낼 것'이란 기사가 많이 나왔다. 6자회담이 곧 열릴 것이란 보도도 있었다. 12일 리근 국장은 중국에 북미 회동 결과를 설명했다.

    그런데 같은 날 북한은 북-미간에 시료채취에 대해 합의한 바 없다는 내용의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내놨다. 그리고, 한국에 대해선 판문점을 경유하는 남북 직통전화를 끊는다고 통보했다. 이는 언뜻 보기에 '예상치 못한 반전' 같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의 말과 행동은 생각보다 논리적이고, 최근의 사정을 되짚어 본다면, 이런 '반전'도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다고 해석할 여지가 충분하다.


    ▲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의 원칙

    2기 부시정부에서 구축된 6자회담의 구도는 근본적으로 북한을 제외한 5개 나라 -미국과 중국, 러시아, 일본, 한국이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그만큼의 에너지를 지원하고 북한은 그들이 당초 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한 시설이었다고 주장하는 영변 5메가와트 원자로를 포함한 핵 시설들을 해체하도록 설계돼 있다. 2.13 합의, 그리고 그 이후에 만들어진 모든 합의들도 모두 이런 대 원칙 하에 짜여진 것이다.

    그런데, 이 근본적인 구도는 2기 부시정부의 말년에 크게 흔들리게 됐다. 무엇보다 일본이 자국의 정치적 혼란기에 북한과 '납치문제'를 제대로 돌파하지 못하면서 지원에서 발을 빼게 된 것이 큰 문제였다. 일본은 그래서 정권 말기 뭔가 '이정표'를 세우고 싶어하는 미국과 끊임없이 충돌했고 이제는 6자회담에 발을 담그기도 어색해진 상황까지 몰리게 됐다. 오죽하면 크리스토퍼 힐의 입에서 "일본 대신 에너지 지원을 하겠다는 나라가 있다"는 말이 나왔을까.

    한국은 2기 부시정부에선 6자회담 틀 내에서 '조정자' 혹은 '통역'의 역할을 충실히 해왔던게 사실이다. 그런데 2007년 말 정권 교체가 이뤄지면서 많은 변화가 생겼고 특히 최근에는 '검증의정서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6자의 일원으로 북한에 지원하기로 했었던 우리 몫을 보내지 않겠다'는 결정까지 내렸다.

    렇다면, 6자회담 참가국 가운데 (북한을 제외하면 5개 나라 가운데) 두 나라가 현재 '북한이 받아야 할 걸로 생각하고 있는' 에너지 지원을 하지 않기로 한 상황인 것이다. 


    ▲ 내 줄게 많지 않은 북한

    이런 상황에서 사실 북한은 생각보다 카드가 그리 많지 않다. '테러지원국 해제'라는 보상을 위해서 미국에 원자로 가동기록을 넘겼고, 플루토늄을 생산하던 5메가와트 원자로는 이미 '불능화'과정에 있다. 다시 말해 북한이 오랫동안 꺼냈다 넣었다 했던 카드를 더 이상 뽑아들 수 없게 됐다는 얘기다.

    게다가 너무 심하게 베팅을 했다간 판이 끝나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 북한은 미국이 테러지원국 해제를 연기했을 당시에도 케이블 정도를 옮겼을 뿐 영변지역에 나와있는 미국측 요원들을 쫓아내는 등의 '강수'는 두지 않았다. 이제 막 정책 검토를 하고 있는 미국의 새 정부에 나쁜 인상을 줘선 안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은 이번 대변인 담화에서도 나오듯이 "5자의 경제보상이 늦어지는데 대하여 우리는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따라 페연료봉을 꺼내는 속도를 절반으로 줄이는 조치로 대응"하겠다는 정도의 수순을 밟은 거다.

    다만 북한은 이제 '전 정권' 사람이 될지도 모를 크리스토퍼 힐에게 싸늘한 표정을 지어보인 것 같다. 힐 차관보와 미국 국무부는 시료채취문제와 관련해 "합의된 사항"이라고 밝혔는데, 그게 사실로 굳어질 경우 북한 스스로의 다음 행보가 복잡해지는 상황에서 '그냥 넘어가 주기' 힘들었을 거다. 어차피 실제 '검증'은 새 정부에서 이뤄지게 되는 만큼 이젠 다시 전권을 부여받게 될지 확신할 수 없는 크리스토퍼 힐의 박자를 그대로 따라갈 수는 없다는 계산인 것. 

    이와 관련해 연합뉴스 이우탁기자는 검증 의정서에 대해 북-미간에 논의된 수준은 기껏해야 "'scientific procedures'나 'forensic activities'" 정도가 아니겠냐고 예상했다. 이는 10/11일 미국 국무부의 발표, 'Agreement on the use of scientific procedures, including sampling and forensic activities'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 현실화되는 6자회담의 위기

    미국 경제의 골간이라고 할 수 있는 자동차산업이 흔들리고 있다. 오바마가 시급하게 손을 대야 할 의제는 무조건 "경제"다. 북한문제 해결이란 의제는 우선순위가 상당히 낮아질 거다. 2기 부시정부가 나름의 성과를 내기 위해 북한문제에 상당히 우선순위를 뒀던 것과 반대의 상황이다. 또 앞서 살펴봤듯이 일본과 한국은 국내적인 문제로 6자회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가 곤란하다.

    이처럼 객관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은 여러가지 시간표를 만들어 놓았고, 또 만들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북한 핵문제'라는 의제가 실종되는 일이 없도록 발언과 행동의 수위를 하나씩 하나씩 높여갈 것이다. 'UN 인권결의안에 발의자로 참여한 걸 용서할 수 없다'는 이유를 대긴 했지만, 37년간 남북간을 상시연결하는 채널로 활용돼온 '판문점 직통전화 차단' 같은 강경한 조치도 아마 이런 6자회담의 위기라는 큰 맥락에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이 시점에 남과 북, 한반도 내에서 돌파구가 나와 준다면 좋을텐데, 불행하게도 그럴 조짐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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