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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가 채였다고? - 합의 못 내놓은 6자회담 / 2008.12.12.
    북핵리포트 2007-2012 2015. 8. 16. 16:36

    Do we feel jilted?

    11일, 의장성명을 발표하고 나서 6개 나라의 대표들은 기념 촬영에 응했다. 그러나 그들은 지쳐 있었고 그 자리에 서서 플래시 세례를 받는 일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 못마땅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수석대표 크리스토퍼 힐은 자리에 없었다. 대신 성김 대북특사가 오른쪽 마지막 자리를 지켰다. 6자회담에서 '의장성명'이란 그저 합의문이 만들어지지 못했다는 것을, 다시 말해 회담이 실패했다는 것을 덜 직설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일종의 외교적 수사다.

    미국의 매파 논객들로부터 '김정힐'이라고 불리곤 했던 힐 차관보는 댜오위타이 대신 베이징 공항을 향했다. 본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였다. "이번 회담에 큰 기대가 있었는데, 우리가 원하던 걸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는 진을 치고 있던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 베이징을 떠나는 크리스힐  (by Elizabeth Dalziel/Associated Press)

    이번 6자회담의 핵심의제는 테러지원국 리스트에서 북한을 해제하는 조치가 이뤄지기 전 북한과 미국 사이에 오갔다는 말(oral understanding)을 6자회담 차원으로 격상시켜 문서로 만들자는, 다시 말해 검증 의정서(verification protocol)를 작성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큰 기대를 하고 회담에 참여한 사람은 없었다.

    우선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차관보와 김계관 북한외무성 부상의 마지막 싱가폴 회동(12/4)이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한 채 끝난 바 있고, 시료채취 문제와는 별도로 한 때 별 무리없이 넘어갈 걸로 예상됐던 검증의 주체와 관련해서도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핵심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문제가 부각됐기 때문이다. 오바마-바이든 플랜에서 등장했던 NPT(핵확산방지조약)도 거론이 됐다.

    김숙 우리측 6자회담 수석대표의 전언에 따르면 북한 김계관 부상은 "시료채취나 그런 걸 하는 것은 북한의 핵능력을 까발리는 것이기 때문에 주권적 차원에서 국가 안보의 차원에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분위기도 최악이었다.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는 북측과 양자회동을 더 이상 갖지 말라는 훈령을 받아 왔다.  일본 수석대표는 북한의 공언(6일 북한외무성대변인 논평)대로 김계관 부상과 사적으로 가벼운 인사조차 나누지 못했다. 그 일본과 우리나라는 회담이 시작되기 전 부터 검증의정서와 에너지지원을 연계시키는 강한 전략을 천명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동국대 고유환 교수는 "과거 한국이 중재자 역할을 했던 것과 달리 이번엔 일본과 공조를 했다."며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 

    그러고 보면 이번 회담은 시작 부터가 이상했다. 의장국인 중국의 발표 전에 콘디 라이스 국무장관이 6자 수석대표 회동의 날짜를 공개해 버린 것이다. 연합뉴스 이정진 기자는 "이번처럼 이상하게 시작해 허무하게 끝난 회담은 없었던 것같다."는 '6자회담의 한 소식통'의 촌평을 소개하기도 했다.

    시차를 둔 워싱턴 미국 국무부. 대변인 매코맥(McCormack)은 약 30분간 진행된 데일리 브리핑의 3분의 2가량을 6자회담 문제로 시달려야 했다.

    매코맥이 브리핑을 통해 전하려고 했던 건 ▲테러지원국 해제가 있기 전 북한과 미국은 적어도 말로는 검증에 관한 충분한 합의를 했고, ▲그 합의 내용을 다른 5개 나라도 다 추인했으며 ▲그걸 바탕으로해서 중국이 검증의정서를 만들었는데 북한이 이 의정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고로 책임은 북한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참 설명을 듣고 난 기자 한 명이 물었다. "(북한이) 지금 국무부를 팽개치고 다음 정부와 더 좋은 조건에서 거래를 하려고 한다고 생각하냐 ; I mean, do you feel as if they're just dumping you and hoping for the next - a better deal with the next administration?" 그러자 매코맥이 되묻는다. "그러니까 채였다고 느낀다는 거냐 ; Do we feel jited?"

    기자는 또 한 차례 편치를 날린다. 매파인 볼턴(전 유엔주재 미국대사)이 말하길 '지금 국무부가 북한에게 사탕 가계 열쇠를 주고 가서 네가 먹고 싶은 걸 맘대로 먹어' 이런 식이라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했다.

    매코맥의 대답은 수세적이었다. 2기 부시정부에서 편 대북정책은 바람직한 것이었고 전에 달성하지 못했던 '불능화'라는 목표를 달성했으며 지금 6자회담이 어려운 국면에 빠져들었지만 그동안 있어왔던 여러 번의 난관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기자들은 물었다. 이 정부의 남은 임기가 과연 얼마나 되죠? (You have five weeks, I think -- left till January 20th.)   

    결국 2기 클린턴 정부의 대북정책이 조명록 차수의 방미로 썰렁한 마침표를 찍었듯 이번 6자 수석대표 회담은 2기 부시정부의 대북정책을 마감하기 위한 소득없는, 의례적 회동이었던 셈이다.

    부연하자면 '차기'를 생각해야하는 북한 입장에선, 국제무대의 플레이어로서 6자 수석대표회담이라는 형식을 비껴갈 수 없기에 참석을 하긴 했지만, 더 이상 전권을 부여받지 못한 크리스토퍼 힐 차관에게 내어줄 카드가 없었던 것이고 2기 부시 행정부의 입장에서도 남은 기간이 얼마 안되는 상황에서 불안한 진도를 나가기 보다 원론적인 입장을 재천명하고 공을 넘겨야 했을 것이다.  

    핵 비확산 문제를 중요한 외교정책 어젠다로 설정한 오바마 정부. 새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 "북한이 여러개의 핵무기를 이미 만들었다"는 내용을 전문지에 기고한 게이츠 국방장관. 이미 키신저에게 제안을 한 바 있고, 새 미국 정부의 특사를 기다리는 북한. 일본과 동조하며 이미 중재자가 아니라 걸림돌이 되어가는 듯한 양상의 한국 정부..

    다시 헝클어져버린 '북핵 퍼즐'.. 언제쯤에야 다시 동력을 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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