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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둔자의 강행군 / 2008.12.22.
    북핵리포트 2007-2012 2015. 8. 16. 16:40

        지난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김정일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나를 은둔에서 해방시켜줘서 고맙다."고 농담을 건넸다. 당시 TV나 신문을 통해 남쪽 사람들에게 전달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모습은 그야 말로 파격적이었고, 그땐 장난스럽게 그 표정이나 옷차림을 흉내내는 사람까지 있었으니 남북관계가 얼어붙은 지금 생각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란 말을 곱씹게 된다.

        은둔의 지도자,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와병설에 시달리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요즘 참 바쁘다. 연일 북한의 언론을 통해 현지시찰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이에 부응하듯 외신을 통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 어떤진 모르겠지만 여전히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고 본다'는 미군 고위 인사의 발언도 나왔다. 그런데 자신의 건강이상설을 무마하고 주민들의 동요를 차단하기 위한 행보로만 해석하고 넘어가기엔 최근 김정일의 활동은 너무 왕성하다.

        얼마 전 미국 국방부 산하 기관에서 발간한 보고서가 '북한을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을 해 파문이 일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당시 우리 언론의 반응이 너무 강했는지 당시 우리 외교통상부는 '미국측이 표현에서 실수 한 것'이라고 즉각 답을 했고 시차 탓에 그 다음날로 넘어간 미국측의 반응은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보는 건 미국의 공식 입장이 아니지만 그 보고서를 수정할 생각은 없다'는 것이었다. 

        일반인이 보기엔 한 마디로 잘 이해가 안되는 대목일 수 있다. 북한이 핵 실험을 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핵 보유국'이라고 표현한 미국의 보고서가 뭐 기사거리가 되며, 또 '공식 입장이 아니'라고 부인하는 미국정부의 반응은 또 무슨 뜻인가?


    ▲ NPT

        우선 비밀의 핵심은 NPT(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에 있다. 이 조약은 불평등하지만 핵 폭탄을 먼저 개발한 나라들이 힘을 합해 '핵무기의 난개발'을 막겠다며 만든 것으로 NPT 체제에서 인정하는 핵 보유국은 미국과 영국, 러시아, 프랑스, 중국 등 5개 나라 뿐이다. 따라서 '핵보유국'으로 인정된다는 것은 '핵실험을 했다'는 정도와는 동일시 될 수 없는 엄청난 국제정치적인 의미를 갖게된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모두가 잘 아는 핵무기를 가진 나라이고 이스라엘도 역시 핵을 보유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NPT가 인정하는 핵 보유국은 아니다.

        문제의 보고서(Joint Operating Environment 2008)는 미국이 전 세계에서 합동작전을 펼치는데 '어떤 고려요소들이 있는지 한 번 살펴보자'는 정도의 보고서로 인터넷에서도 쉽게 내려받을 수 있다. 그리고 표현을 보면 북한을 'nuclear powers'라고 분류하는데(p.32), 이 분류에 같이 들어있는 태평양, 인도양쪽 나라들은 중국과 인도, 파키스탄, 북한, 러시아 등 5개 나라다.

        그렇다면 이 'nuclear powers'라는 표현은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뒤로 가보면(p.37) 인도나 파키스탄 등 NPT에 속하지 않는 나라들과 함께 북한에 대한 평가가 좀 더 상세하게 등장한다. 즉, 인도와 파키스탄의 경우 핵 탄두(nuclear arsenals)와 운반 수단(delivery capabilities,대륙간탄도탄 같은 발사체)를 갖고있다고 기록한 반면, 북한에 대해서는 '핵 무기(nuclear weapon)를 실험했고, 그런 무기를 더 만들 수 있는 충분한 핵물질(fissile material)을 확보하고 있다'만 기록하고 있다.

        이 대목을 보면 JOE가 북한을 'nuclear powers'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서 북한 핵 능력을 기술적으로 과대평가 했거나 정치적인 의도를 가지고 'nuclear powers'란 말을 쓴 것 같지는 않다. (참고로 기술적으로 말하면 재처리된 플루토늄을 갖고 탄두를 만들어 터뜨리는 실험에 성공하는 것도 매우 어렵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 폭발장치를 미사일에 실을 수 있을 정도로 줄이는 데는 엄청난 기술적인 진전이 필요하다.) 

    ▲ 오바마-바이든 플랜

        이 보고서가 파장을 일으켰던 건 보고서 자체 보다, 그 뒤에 이어진 게이츠 국방부장관의 기고문 때문이다. 오바마 정권에서도 국방부장관을 계속 맡기로 돼 있는 게이츠는 포린 어페어스라는 전문지를 통해 "북한이 핵폭탄 여러 개를 제조했다(North Korea has built several bombs)"고 평가했다.

        그런데 전후 맥락을 살펴보면 이 표현은 러시아나 중국 등 전통적인 의미의 경계대상 외에 현실적으로 신경이 쓰이는 '그 밖의 위협'을 강조하는 맥락에서 쓰이고 있다. ("In addition, there is potentially toxic mix of rogue nations, terrorist groups, and nuclear, chemical, or biological weapons. North Korea has built several bombs, and Iran seeks to join the nuclear club.") 여기서 'several bomb'은 '핵폭탄'을 의미하는 것으로 봐야 할 텐데, 이처럼 이란과 함께 거론되는 대목은 앞서 다른 칼럼에서 언급한 적이 있는 '오바마-바이든 플랜'을 곧장 떠올리게 한다.

        오바마 정부의 집권 청사진을 집약한 이 '플랜'은 아프간에 대한 확실한 대응에 이어 대외정책 분야의 두 번째 순서로 이란과 북한의 핵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4년 안에 통제되지 않는 모든 핵물질(all loose nuclear materials)을 안전한 상태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또, 현재까지 생산된 핵물질에 대한 안전을 확보하는 한편, 새로운 핵 무기에 쓰일 수 있는 원료의 생산을 금하게 하는 협상을 할 때 '검증가능한 국제적인 금지'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 한계에 부딛친 6자회담

        얼마 전 김숙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은 18일 "북핵 협상에서 더 이상 '모호함'이 도움이 안된다."고 말했다.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는 16일 미국 특파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북한은 미국과 합의했던 검증의정서와 관련한 합의 사항을  '현 시점'에선 공식적으로 문서화하기를 원치 않았다"면서, "북한이 협상을 지연시키는 이유가 미국의 차기  정권과  협상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비핵화 3단계에서 해야 한다는 얘기인지, 불능화와 중유 공급이 완료되기를 기다리겠다는 것인지는 불분명하다"고 언급했다.

        요컨대 2기 부시정부에 있어 6자회담은 한국의 '중재'아래 북-미 상호간에 '모호함'을 활용하면서, 그 모호함을 유지한 채로 얻을 수 있는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는 피말리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불능화 - 플루토늄 추가생산 중단'이라는 큰 성과를 거뒀다. 북한은 '테러지원국 해제'를 얻었고, 미국은 냉각탑 폭파라는 '덤'도 챙겼다.

        그러나 그 이상은 무리였다. 일단 시간이 촉박했고 근본적으로는 미국이나 북한 모두 '모호함'을 벗어야만 하는 상황에 몰려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이 협상과정이나 의사결정과정의 모호함을 더이상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 이었다면 북한에 있어서의 모호함은 '핵 능력의 실체'와 관련된 문제였다. 이는 앞서 나왔던 핵보유국,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의 갯수 등등이 직결되는 문제다. 


     ▲ "검증"이라는 이름의 외나무 다리 

        이번 6자회담에서 논의된 '검증 의정서'에 담길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샘플채취의 문제였다. 이는 성김 과장이 북한으로부터 들고 나온 북한 5메가와트 원자로 가동기록이 정확한 것인지, 재처리를 통해 만들어낸 무기급 플루토늄이 얼마나 되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길이다. 또 분명하진 않지만, 샘플채취는 북한이 또 다른 원자폭탄 제조 방법인 '우라늄 농축'을 정말 했는지 했다면 얼마나 했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

        북한이 넘긴 '가동기록'에 엉뚱하게도 우라늄의 흔적이 있었다고 한다. 다시말해 샘플채취는 9.19 공동선언이나 2.13 합의 등에서 '모든 핵프로그램'으로 표현됐던 '모호함'을 어쩔 수 없이 깨야만 하는 '외나무 다리'인 셈인 것.그래서 사실 "누가 북한의 말을 믿겠냐"는 콘디 라이스 국무장관의 말은 '대북 중유지원 중단'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 러시아, 한국 사이에 있었던 혼란 만큼이나 공허하다.

        그래서 외나무 다리까지 다다른 북핵문제가 오바마 정부에서 다시 일보 전진 하려면 굉장한 동력이 필요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몸이 성치 않은 와중에서도 부단하게 '고단한 행보'를 계속하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자신의 존재감을 지속적으로 부각시켜야 하는 상황인 것. 미국에서 특사가 왔을 때 그는 - 북한은 이미 키신저에게 특사가 돼 달라고 제안을 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 실질적인 돌파구를 열 수 있는,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존재로 건재하고 있어야 한다.


    ▲ 한미동맹..돌파구는 열릴까?

        최근 조선신보는 연일 '북미 직접대화'라는 애드벌룬을 띄우고 있고 평양에선 휴대폰이 개통됐으며, 류경호텔은 외벽공사를 재개했다. 또 개성공단을 찾아온 김영철 국방위원회 정책실 국장도 12.1 조치에 이은 2차조치를 예고하지 않았다.

        크레이그(Gregory B. Craig)는 오바마 정부를 위한 기초적인 지침서라고 할 Change For America의 국무부 파트에서, 집권후 100일 이내에 해야 할 일로 북한에 특사를 보내는 걸 꼽았다. AFP는 18일 북한 외교관의 말을 인용해 평양예술단이 내년 3월 미국에 갈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노무현정부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 비서관으로 6자회담에 깊숙히 관여했고 지금은 브루킹스 연구소에 연구원(Visiting Fellow)로 가 있는 박선원씨는 최근 발표한 글을 통해 한국의 정치지형은 전통적 우파와 한국의 네오콘으로 부를 만한 New Right, 그리고 리버럴 이렇게 세부류로 나눌 수 있다고 말한다. 이어 그는 아무리 동맹이 중요하고, 또 New Right가 이명박 정부 집권에 공을 세운 부류라 해도 북한 정권을 먼저 무너뜨려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그들의 생각을 전부인양 생각해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얼마 전에 한국을 찾았던 노 학자 오버도퍼는 16일 한 세미나장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명박 정부는 오른쪽으로, 미국은 왼쪽으로 서로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요컨대 앞으로 몇 개월동안 한미동맹이 대북문제 해법에 관해 어느 방향으로 작용할까 하는 것이 향후 4년, 혹은 그 이상의 동북아 지형도를 가늠하는데 중요한 방향타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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