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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힐러리, "북한은 나쁜 배우" / 2009.01.15.
    북핵리포트 2007-2012 2015. 8. 16. 20:43

    떠나가는 부시는 "떳떳이 고개를 들고 나가겠다"고 했지만, 그에 관한 '추문'에 가까운 얘깃거리들이 외신들의 가십란을 연일 장식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의 새 대통령 버락 후세인 오바마의 취임식이 이제 몇일 앞으로 다가왔다. 몇몇 언론을 통해 보도된 일이지만 북한은 오바마의 취임식에 고위 인사를 보낼 생각을 할 정도로 새 정부에 대해 기대가 컸던 것 같다. 결과적으론 거절당했다고 전해지고 있지만 말이다.

    아마 "조건 없이 대화할 수 있다"고 했던 대선과정에서의 오바마 후보의 발언, 그리고 올브라이트 국무장관 - 조명록 차수가 차례로 북한과 미국을 교차 방문하고 곧 관계정상화가 이뤄질 거라는 장밋빛 전망이 나왔던 클린턴 정부의 향수가 강하게 남아있었기 때문일 거다.

    그런데 어쩌면 지금 북한은 물러나는 부시 대통령에 대해 '구관이 명관이었다'는 스스로도 믿기 어려운 생각을 하고 있을 지 모른다.   

    최근 힐러리의 국무부가 어떻게 구성될 건지에 대한 기사가 잇따랐다. 한반도를 담당할 동아태 차관보 자리에 크리스토퍼 힐 대신 커트 켐벨 (Kurt Campbell)이 낙점됐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그는 <하드파워>라는 책을 펴냈는데, 놀랍게도 공동저자는 마이클 오헨런 이었다.

    내가 아는 마이클 오헨런은 미국 워싱턴 DC 듀퐁서클 근처에서 만났던 씽크탱크 관계자 가운데 북한에 대해 상당히 '강경한 처방'을  얘기하던 사람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언론 보도를 보면 <하드 파워>는 미국이 북한과의 "협상에 진지한 노력을 경주하되 만약 협상이 실패하면 실효적 징벌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북한에게 분명히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힐러리의 고문, 혹은 '급을 높인 대북문제 특사'로 거론되고 있는 웬디 셔먼(Wendy Ruth Sherman)도 마찬가지. 클린턴 정부에서 올브라이트와 함께 대북정책에 관여했다는 꼬리표에도 불구하고 얼마전 그녀가 내놓은 발언을 보면, 터프함이 느껴진다.  미국평화연구소 주최로 열린 세미나에서 셔먼은 북한의 핵 개발이 초래할 수 있는 전세계적인 핵 확산의 위험을 지적하면서 "북한은 핵 시설을 불능화할 뿐 아니라 모든 핵무기와 핵 개발 능력을 폐기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현지시각으로 13일에 있었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내정자의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Senate Foreign Relations Committee)는 이런 사람들로 구성된 '힐러리 클린턴의 대북 라인'이 어떤 식으로 대북정책을 설계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부시행정부가 대북정책을 검토하고 방향성을 분명히 드러낸 건 취임후 5개월 가까이 지나서(2001.6.6)였는데, 힐러리의 국무부는 예상보다 상당히 빠르게, 또 상당히 구체적으로 앞으로 어떻게 대북외교를 끌고 갈 것인지 대강의 얼개를 제시한 것이다.

    美 상원 외교위원회 웹페이지에 올라있는 우리로 치면 '모두발언'격의 답변서는 이른바 "Smart Power"라고 명명된 '힐러리 국무부'의 총괄적인 노선을 제시하고 있다.

    간단히 키워드만 짚고 넘어가자면 ▲ 실용주의와 이상주의의 결합(marriage), ▲ 그런 의미에서 미국이 먼저 모범을 보이는 외교 ▲ 군사력과 외교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당근과 채찍의 활용, ▲ 다자무대나 기존의 다자 틀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외교, ▲ 달성할 수 있는 목표를 상정하고 일을 추진하는 외교, ▲ 선택할 때는 과감히 선택하는 외교 등으로 특징을 뽑아낼 수 있다. 

    또 하나, 이것들이 '힐러리 국무부'가 추구하는 외교정책의 '스타일'이라면, 내용으로 들어가서 볼 때 이 답변서는 북한과 이란의 핵 문제를 우선순위에서 상당히 높은 자리에 올려놓고 있다. 기계적으로 분석하자면, 힐러리의 모두발언에서 북한, North Korea는 가장 처음으로 언급된다.

    오전과 오후로 나눠 진행된 실제 청문회에서 북한문제가 비중있게 다뤄진 건 공화당 리사 머코스키(Lisa Murkowski) 상원의원의 질의에서다.

    힐러리 국무장관 내정자는 콘디 라이스와 만나 6자회담이나, 미북간에 이뤄졌던 양자협의내용에 대해 얘기를 들었다면서, 현재 정책 검토(policy review)가 진행되고 있다고 소개한다. 힐러리는 "목표는 북한의 핵프로그램, 플루토늄 재처리 프로그램은 물론 확실히 검증되진 않았지만 북한에 있다고 여겨지는 농축우라늄 프로그램까지도 모두 끝내는(end)것"이라고 밝힌다. 

    6자회담과 관련해서 힐러리는 "미국과의 동맹인 한국과 일본과 더불어 중국이 북한에 압력을 넣어 북한의 행태(behavior)를 바꾸도록 하는 수단(Vehicle)이 될거라는 걸 아주 강하게 확신한다."고 했다. 이어 북한이 핵기술을 시리아에 이전했다고 믿을만한 이유가 있다면서, "확산자로서의 북한의 역할도 끝내야 한다."고 언급했다.  내용이야 2기 부시행정부에서 콘디 라이스장관이 얘기하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표현에 있어서는 상당한 '강도'가 느껴진다.

    이 뿐만 아니라 라이스는 이보다 앞서 루거(Lugar) 상원의원과 군축(arms control), 비확산(nonproliferation) 문제에 대해 얘기를 하면서 "bad actor"라는 표현을 동원한다. 힐러리는 원칙에 입각한 틀(rules-based framework)이 있어야 한다면서, 미국이 앞장서서 그걸 세운다면 '나쁜 배우'들을 고립시킬 수 있는 '강한 위치'(strong position)에 서게 될 거라고 말했다. 힐러리가 거론하는 이 '나쁜 배우'들이 누굴까? 힐러리는 북한과 이란 딱 두 나라를 언급했다. 

    이 청문회를 지켜본 뉴욕타임스는 "힐러리가 북한을 압박하는(grinding) 외교를 펼 것임을 예고했다."고 표현했다.

    자유라디오방송 RFA는 청문회에 앞서 존 케리와 딕 루거 상원의원이 힐러리에게 보낸 사전 질의와 그에 대한 서면답변 가운데 한반도와 관련된 부분을 발췌해 번역했는데, 몇 대목을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 "핵 개발 계획을 완전하고 검증가능한 방식으로 제거해야 한다."

    ▲ "북한이 의무를 분명히 이행하지 않는 한 양보 해선 안된다."

    ▲ "제재는 오로지 북한이 약속을 이행하는 데 따라서 해제돼야 한다."

    ▲ "만약 의무를 충족하지 않는다면, 해제했던 제재도 다시 가하고, 새로운 제재도 고려한다."

    ▲ "관계 정상화는 핵 무기 개발을 완전하고 검증가능한 방식으로 제거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 "관계 정상화의 한 조건인 북한의 인권 침해에 대해서 계속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 "중유 지원에 관해 오바마는 북한이 지원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확실히 했다"


    최근 외신들은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가 대북특사 자리를 거절했다고 보도했는데, 이런 정도의 정책기조를 갖고 있는 '힐러리의 국무부'라면 크리스토퍼 힐과는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교도통신은 지난 10일, "6자회담의 종착점인 핵무기 폐기와 관련해, 미국과 국교를 수립해 핵공격을 받을 위협이 사라진 뒤에야 핵무기를 모두 폐기하게 될 것이라고 북한의 한 고위관리가 작년 11월 미 싱크탱크 주최 토론회에서 밝혔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11월 7일 뉴욕에서 있었던 전미외교정책회의(NCAFP) 주최로 개최된 토론회에 참석한 사람은 6자회담 북한측 차석대표인 리근 외무성 미국국장이었다.  북한은 이어 13일 외무성대변인 담화를 통해 '비핵화가 먼저가 아니라 관계정상화가 먼저'라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아마 북한으로선 , 힐러리의 발언들을 '처음이니까 좀 세게 나가는' 정도로 받아들이기엔 너무 발언의 강도가 강하다고 느낄 것이다.

    김정일의 건강이 별로 좋지 않은 상황에서 고민의 주체가 누군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북한은 미국의 속내는 뭔지, 워싱턴을 향해 '추파를 던지는' 행동을 이제 중단해야 할지, 냉각탑도 부순 마당에 다른 어떤 선택이 있는지에 대해 몹시 당황스런 고민을 시작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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