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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왕자루이, 6자회담 / 2009.01.26.
    북핵리포트 2007-2012 2015. 8. 16. 20:47

    시계를 뒤로 돌려보자.

    북한의 핵실험으로 UN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안이 만들어진 지난 2006년 10월 16일 전후, 한반도엔 무거운 긴장이 감돌고 있었다.  북한이 2차 핵실험을 강행할 거라는 소문이 돌았고, 미국은 PSI를 강조하며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사업을 이어가는 당시 노무현 정부에게까지 압력을 가하고 있었다.

    당시 뉴욕타임즈는 중국이 대북석유공급을 단계적으로 감축할거라고 보도했다. 북한은 북한 대로 20일 평양의 김일성 광장에 10만여명이 운집한 가운데 핵실험 성공을 환영하는 군민대회를 대대적으로 열었다.

    '북한이 정말 2차 핵실험을 강행하려는 걸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한반도 상황은 과연 어떻게 흘러가게 되는 것일까?' 당시 외교부 취재를 맡고 있던 나로선 하루 하루가 긴장의 연속이었다.

    10월 20일 늦은 저녁. 중국발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특사 탕자쉬안이 평양에서 만났으며 김정일이 "2차 핵실험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 기사를 놓고 나는 몹시 고심했다. 우선 그 기사속에 등장하는 김정일의 워딩이 맞는지 확인하기가 쉽지 않았고, 또 맞다면 어느 정도의 가치를 둬야 하는 지 판단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북한문제에 정통한 한 선배가 당시 고위관리로부터 "추후 핵실험 계획이 없다. 미국의 차후 태도를 지켜보겠다"는 내용의 김정일 발언 내용이 있었음을 확인했다. 그러나 당시 내가 접촉했던 외교부쪽 관리들은 '그 발언이 맞다 하더라도 큰 비중을 두기 어렵다'는 말을 더 많이 했다. 여러가지 전제를 달고 원칙적인 입장을 천명한 정도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20일, 미국의 ABC를 통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라"는 김계관 북측 6자회담 수석대표의 발언이 나왔다. 그리고 31일 저녁, 베이징에서 김계관과 미국 6자회담 수석대표였던 크리스토퍼 힐이 만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깜짝 놀랄 속도였다. 중국 외교부는 웹사이트를 통해 중국의 건의에 따라 3국의 6자회담 수석대표들이 베이징에서 비공식 회담을 열고,  "빠른 시일 내에 회담을 재개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 보자.

    견강부회(牽强附會)일지 모르지만 2006년 10월과 2009년 1월 상황은 공통점이 있다. 우선 6자회담의 동력이 떨어졌고, 접점이 잘 보이지 않는다.

    긴장의 강도에 있어선 그 때와 지금을 비교할 때, 큰 차이가 있겠지만 어찌됐건 미국은 현재 '중유공급 중단', 'PSI', '완전하고 검증가능한 비핵화'를 외치고 있으며 한 발 더 나아가 북한에 대한 '제재'를  거론하기까지 하고 있다.

    미국은 여러 채널을 통해 북한문제가 외교 현안에서 상당히 우선순위가 있는 것 처럼 얘기하고 있지만 정작 특사를 급파한 건 이스라엘 문제가 먼저였다. 또, 경제문제를 보면 뱅크오브아메리카같은 전통적인 은행까지 흔들리는 급박한 상황이다.  그래서 북한문제에 우물쭈물 하는 사이에 조급한 북한이 몇 번 강수를 둬 버린다면 한반도에 조성되는 긴장의 강도는 갑자기 높아질 수 있는 상황인 것. 

    이런 시기에 왕자루이가 북한에 갔다. 그리고 23일 김정일은 와병설 이후 처음으로 공개석상에서 왕자루이를 만났다.  그리고 이 만남에서 몇가지 메시지가 전해졌다. 한반도의 긴장을 원치 않으며, 한반도를 비핵화하려 힘쓰고 있다는 김정일의 발언이었다. 

    우리가 유추할 수 있는 건, 아직 정확히 어떤 그림이 그려지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지난 2006년 당시에도 그랬듯이 동력이 현저히 떨어진 6자회담을 다시 살려보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함께 봐야 할 움직임은 황준국 북핵기획단장이 영변에 가서 미사용연료봉의 처리문제를 놓고 북측과 논의했다는 부분이다.

    RFA는 22일 제임스 스타인버그 미국 국무부 부장관 지명자가 황 단장의 방북결과를 얘기하면서 "미사용 연료봉의 처리는 2007년 10월의 6자회담 합의에 따라 진행 중인 북한의 핵 시설에 대한 불능화 11단계 중 하나"라고 언급했다고 보도했다.

    지금은 미국이 북한과 직접외교를 펼칠 생각이 있다 하더라도, 곧바로 특사를 보낼 만큼 제반 상황이 조성돼 있지 않다.

    딕 체니 부통령이 '사람좋은' 부시 前 대통령과 싸운게 5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회고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북한문제였다고 한다. 그만큼 부시는 원칙을 세우고 일을 진행하기 보다 '측근' 라이스가 결정한 대로 믿어주고 밀어주는 사람이었는데, 그에 반해서 오바마와 힐러리의 사이는 오히려 최소한의 원칙이 있어야 유지될 수 있다.  또 같은 맥락에서 오바마의 통치스타일은 '밀실 회동을 통한 결정'보다는 '공개적인 정책결정'의 양상일 걸로 본다. 그렇다면 북한에 특사를 보내는 문제는 최소한의 사전 조정이나 명분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한다. 

    당장 직접외교가 아니라면 대안은 6자회담일텐데, 6자회담이 중단된 지점은 바로 "불능화 - 에너지지원"의 단계이다.

    마지막 6자회담에서 검증의정서를 확정하는 것이 몹시 중요한 문제로 부각됐었다. 그러나 사실 속내를 좀 더 들여다 보면 검증의정서가 중요한 문제가 맞긴 맞지만, 애초에 달성할 수 없는 목표였다. 오히려 더 참가국들을 신경쓰게 했던 건 더디 진행된 중유공급, 그에 맞춰 속도가 늦어진 불능화였을 것이다. 검증의정서야 어차피 북한이 떠나가는 부시정부와 약속을 해 봐야 별 의미가 없다고 다들 생각했을 것이기 때문. 직접접촉을 하지 말라는 훈령까지 받은 크리스토퍼 힐로선 사실 더 나아갈 수 없는 회담이었다.

    담당자가 정해지기 전 까지는 국무부에서 자리를 지킬거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는 힐 차관보는 16일 미국의 한 방송에 출연해 대북외교가 이번 오바마 정부에 중요한 문제(very real problem)를 넘기게 된 건 맞지만, 적어도 위기상황(crisis)을 넘겨준 건 아니라고 말했다.  이어 6자회담이 끝난 것 아니냐는 얘기에 대해선, "그럼 과연 대안은 뭔데?"라고 말하고 싶다고도 했다.

    이렇게 본다면 이 6자회담을 재가동시키는데 있어 북한의 미 사용 연료봉 처리 문제가 상당히 중요한  열쇠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클린턴 정부에서 북한담당관을 지낸 조엘 위트는 찰스 카트만, 로버트 칼린 등과 함께 실패한 KEDO의 사례를 열심히 연구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경수로 문제는 아마 다시 거론이 된다면 미국의 특사가 북한에 가서 큰 틀의 딜(deal)을 할 때 사용할 카드지 지금 나올 단계가 아니다. 

    한.일 6자회담 수석대표들은 29일 서울에서 만날 예정이라고 한다.

    이런 국면에서 문득, 한국은 어떻게 자리매김 되고 있나 생각해 보게 된다.  한국이 중국처럼 중재자의 역할, 북한에 대해 지렛대를 당길 수 있는 공동주연이 아니라 '조연' 혹은 '기능인'으로 비춰지고 있는 건 혹시 아닐까? 

    황준국 단장은 북한에 가서 김계관 부상을 만나지 못했다. 반면 왕자루이가 김정일을 만났을 때 오랫동안 북핵문제에 핵심역할을 해왔던 강석주가 배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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