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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동격서 (聲東擊西) / 2009.01.19.
    북핵리포트 2007-2012 2015. 8. 16. 20:45

    1월17일 토요일 저녁 조선중앙TV에는 군복을 입은 북한 총참모부 대변인이 등장해 장문의 성명을 읽었다. 키워드는 두 가지 정도. 하나는 "(남한이) 대결의 길을 선택한 이상 .. 그것을 짓부시기 위한 전면대결태세에 진입하게 될 것"이라는 것. 또 하나는 NLL이 아니라 "이미 세상에 선포한 서해해상군사분계선을 그대로 고수하게 될 것임을 명백히 밝힌다"는 것이었다.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는 북한군의 실제 작전지휘기구로 우리로 치면 '합동참모본부'에 해당되며, 우리 국방부에 해당하는 인민무력부 산하 조직으로 들어가 있지만 인민무력부장의 보다는 김정일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국방위원회의 직접 통제를 받고 있다고 한다.

    '서해해상군사분계선'은 북한이 지난 북한은 1999년 6월 제1차 연평해전이  발발한  뒤인 9월 2일, 인민군 총참모부 '특별보도'를 통해 선포한 개념으로 우리가 해상분계선으로 삼고 있는 NLL과 달리, 서해 격렬비열도부터 등산곶까지의 해상 대부분을 북쪽 관할 수역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17일자 총참모부 대변인 성명이 말하는 건 "남한정부가 대결의 길을 선택한 이상, 앞으로 서해상에서의 군사적인 충돌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하라"는 얘기가 될 것이다.

    이 성명은 조선중앙 TV에서 진행자가 아니라 군복을 입은 대변인이 언성을 높여 읽은 탓에 몹시 강렬한 인상을 줬다. 그런데 다시 차분하게 생각해 보면 '남한정부가 대결의 길을 선택했다'는 건 구체적인 표현에서 좀 다를지라도 새삼스런 얘기가 아니다. 그런데 왜 북한은 이 시점에서 이런 강력한 성명을 내놓아야 했을까? 

    이날 17일엔 총참모부 성명 말고도 메시지가 두개 더 있었다. 하나는 ▲조선중앙통신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 형식으로 나온 외교부 대변인 발언이고, 또 하나는 ▲베이징에서 있었던 셀리그 해리슨의 기자회견이다.

    외무성대변인 '대답'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대변인은 미국이 핵문제와 관계정상화문제를 대치시키는 그릇된 주장을 들고나오고있는것과 관련하여 17일 조선중앙통신사 기자가 제기한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최근 미행정부안에서 《조선이 먼저 핵을 포기해야 관계정상화가 될수 있다》, 《관계정상화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한 핵포기전에는 불가능하다》는 주장들이 나오고있다."

    북한외무성은 매우 솔직하게, 왜 이 '대답'을 내놓아야 했는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 '대답'에서 언급되는 미 행정부의 주장, 다시말해 "관계정상화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한 핵포기 전에는 불가능하다"는 말은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내정자가 청문회와 서면답변 등을 통해 밝힌 내용인 것.

    그런데 북한은 상대적으로 짧은 이 글에서 미국측 논리가 오류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긴 해도 대놓고 미국을 비난하진 않았다.

    북한을 방문하고 나온 <코리안 엔드게임>의 저자 셀리그 해리슨은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북한이 이미 30.8㎏의 플루토늄을 무기화했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이는 4개에 서 5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양으로 이해된다"고 말했다. 이어 "무기화된 30.8㎏의 플루토늄은 사찰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북한측 입장을 들었다고 전했다. 해리슨은 12일부터 북한을 방문해, 오바마가 당선된 직후 뉴욕으로 건너갔었던 리근 외무성 미국 국장 등 북한 관리들을 만났었다.

    북한은 이미 13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핵포기 문제와 관계정상화 문제의 선후관계에 대한 입장을 재차 천명한 바 있다. 그러나 17일에 다시 별로 다를 것 없는 얘기를 '대답'의 형식으로 내놓은 것은 요즘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아무리 북한이 오바마의 새 정부와 '좋은 출발'을 원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해도, 그냥 잠잠히 넘어가기엔 오바마 행정부가 전체 외교정책의 틀을 구성하는 가운데 북한문제를 올려놓는 '위치'가 북한 입장에서 상당히 불안한 자리이기 때문이다.  

    지난 번 칼럼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힐러리의 국무부는 미국의 국격을 회복하는데 있어 '구체적으로 실천하고 현실적으로 실적을 보여줄 수 있는 목표'로 "비핵화"라는 좌표를 설정한 것 같다. 이건 "비핵화'라는 슬로건이 ▲러시아나 중국이라는 수퍼파워들과의 외교에서 '도덕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명분이 되며 반대로 ▲이란 핵문제 등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논리도 함께 제공해 미국안보를 강하게 한다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줄 수 있는 등의 여러가지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외신들은 14일 내년 4월 NPT회의가 열리면 국무부가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서명을 추진할 거라고 보도했다.

    문제는 북한이 위치하고 있는 자리다.

    ▲ 우선,  테러지원국 해제를 위해 총력을 다 했던 북한으로선 대미외교에 있어 이미 영변 원자로라는 '카드'를 잃었다. 원자로의 복구는 사실상 어렵다.

    ▲ 여기에 더해 이미 미국에 원자로 가동기록을 모두 넘겼다. 게다가 의혹을 해소한다며 넘긴 알루미늄관과 가동기록에서 농축우라늄의 흔적이 나왔다.

    ▲ 6자회담이라는 틀 내에서 "검증"이라는 약속을 해 놓았기 때문에 북한은 '자기 진영 코트에 공을 가지고 있는', 상대적으로 불리한 입장이다.

    ▲ 북한이 셀리그 해리슨의 전언처럼 플루토늄을 정말 무기화 했는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 그게 사실이라 해도 북한 스스로도 터질 지 확신할 수 없는, 미사일에 실어 날려보낼 수도 없는 조악한 형태일 가능성이 높다. 그들이 그토록 강조하는 '억지력'이 사실 되기 어렵다는 얘기다. (기술적으로 말하자면 첫 핵실험이 성공한 뒤에 적어도 수백 수천회의 폭발실험을 더 해야 충분히 작은 크기의, 터질지 여부를 확신할 수 있는 원자폭탄을 만들 수 있다.)

    ▲ 북한은 인구가 많지도, 경제가 튼튼하지도 않다. 국제사회에 의해 제공되는 쌀과 곡식, 중유로 겨우겨우 지탱해가고 있는 나라다. 인도처럼 핵과 관련해 미국과 어떤 '협정'을 이끌어낼 수 있을 만큼의 국력을 갖고 있지 않다. 

    이런 이유에서 북한은 아주 오랫동안 미국과 이른바 '벼랑끝 외교'를 해온 나라일 수도 있지만 역설적으로 미국이 상대하기에, 새 국무부가 시범적으로 새 정책의 '효능'을 검증해보기에 손쉬운 상대일 수도 있지 않을까? 

    '왜 민주당 정부가..'라는 의문을 갖을 수 있겠지만, 역사적으로 '외과수술적인 폭격' 얘기가 나와 실행 직전까지 갔던 건 민주당 클린턴 대통령 때였다.

    실제로 강도높은 발언은 힐러리에게서만 나온게 아니다.  오바마진영의 외교안보 핵심측근이었던 수전 라이스 UN대사 내정자는 15일 상원 외교위원회 인사청문회를 통해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은 동북아 지역의 안정을 해칠 뿐만 아니라, 핵확산과 관련된 긴급한 우려의 대상"이라고 말했다. 이어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의 제거를 위해서는 다각적인 압력이 계속 필요하다"면서, "비확산체제를 위반하는 국가들에 대해서는 강력히 대응하는게 필수 적"이라고 했다.

    이에 질세라 물러나는 부시와 라이스가 북한의 HEU문제를 잇따라 문제삼고 나섰고, 덩달아 요미우리(15일) 등 일본의 언론들도 전혀 진전된 내용 없는 HEU 문제를 가지고 새로운 것인양 기사를 써대고 있다.

    북한은 지금 선택할 수 있는 카드가 별로 없다. 그리고 대북정책이 완전히 틀이 잡혀 발표된 것도 아닌데 당장 미국을 향해 뭔가 일을 내기도 조심스럽다.  셀리그 해리슨의 전언에 따르면 북한관리들은 그에게 "북한이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원한다" ,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관계개선에 대한 정치적 결정을 내린다면 북한과  미국이  친한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요컨대 그래서 이 시점에 북한의 전략은 성동격서(聲東擊西), 좀더 냉정하게 얘기하자면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고함치는 식이다. 사실 미국에 대해 "이런 식으로 나가면 안되는 것 아니냐"는 강한 항의를 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고 남쪽을 향해 고래고래 고함을 친 것이다.   

    미국의 대북정책 기조가 결과적으로 어떻게 자리를 잡을지 확언 할 수는 없지만 이 시기 - RFA보도에 따르면 2월이면 정책검토를 마친다고 하니까 한달도 안되는 이 시기가 앞으로 적어도 4년간 한반도에 미칠영향은 몹시 지대하다.

    그래서인지 15일 일본 마이니치는 중국이 북핵문제의 위기의 순간마다 해결사 역할을 해왔던 왕자루이를 북한에 보내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중국 외교부는 당일 "들은바 없다"고 부인 했지만 여지를 남겼다. 

    우리 정부는 19일, 북한이 그토록 비난했던 < 비핵ㆍ개방 3000 > 공약을 입안한  현인택 교수를 신임 통일부장관으로 내정했다. 하루 전날인 18일엔 지난 정부에서 FTA를 추진했던 한덕수 전 총리를 주미대사로 보내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는 14일 AP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가 몸담았던 북핵 6자회담과 관련해, "문제가 더 커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

    태평양 저 멀리 미국에 있는 힐 차관보가 한 말이지만, 가까이 한 땅과 바다를 나누어 머물고 있는 우리가, 우리 정부가 더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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