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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명성 2호, 그리고 역설 / 2009.03.21.
    북핵리포트 2007-2012 2015. 8. 16. 22:56

    지난 2006년 10월27일, 도렴동 제2 정부청사에선 국정감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TV카메라가 주시하고 있는 가운데, 외교부 고위 간부는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 구상 PSI의 전면 참여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남북한 간에 긴박한 군사적인 대치 상황이 있어서 무력충돌의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그러한 무력충돌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 저희들은 PSI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고위 간부는 지난 3월20일 우리 정부가 "PSI 전면참여를 검토하고 있다"고 공공연히 말했다. 북한의 '광명성 2호' 발사가 예고돼 있는데, 실제 발사가 강행된다면 WMD 대량살상무기를 막자는 취지의 PSI 전면참여를 검토하는 계기가 되는 건 당연하지 않느냐는 얘기였다.

    정부 관리는 '정권이 달라지는데 따라 영혼을 팔 수 밖에 없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고위 간부는, 더 나아가 외교부의 관리들은 3년 전에도 대부분 PSI 전면참여를 원하고 있었다.  이건 정권이 바뀐 뒤 우리나라가 UN 대북 인권결의안에 빠짐없이 찬성 투표를 하고, 한 발 더나아가 아예 공동발의에 나서는 것과 정확히 같은 맥락 속에 있다.

    대량살상무기를 막자는 PSI의 취지는 대북인권결의안과 마찬가지로 논리적으로 '선'이며, 일반적으로 논리가 없이는 설득이 어려운 양자.다자 외교무대에서 민족의 특수성을 내세워 한반도의 긴장을 내세워 얘기하는 건 폼이 나지도 그럴듯 해 보이지도 않다.

    정권이 바뀐 뒤, 외교부가 정 반대의 입장을 취하는 것. 평면적으로 보자면 상당히 모순돼 보이는 대목이다. 그래도 비둘기파로 분류됐던 크리스토퍼 힐까지 나설정도로 미국이 강력한 압박작전을 펴는데도 PSI 전면참여를 하지 않은 조건, 즉 "남북한 간에 긴박한 군사적 대치 상황" 내지, "무력충돌의 가능성"은 3년 전보다 상당한 냉각.악화기를 거친 지금이 더 강도가 높을텐데도 정부는 결론을 정 반대로 내리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 모순 속는 또 다른 종류의 모순, 혹은 역설들이 자리잡고 있는 듯 하다.


    첫 번째 역설 - PSI는 뭔가 강력한 효과가 있는 듯 묘사되고 있지만 무척 허술하고 별로 쓸모가 없는 공조체제다.

    우선 PSI는 그 '옳은'취지에도 불구하고 그 행동목표가 국제법의 오래된 상식에 반한다. 북한이나 이란 등이 미사일 거래를 하는 걸 막겠다는 건데, 어차피 공해상에서는 어떤 배든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는게 국제법의 원리다. 그 원리를 극복하기 위해 부시정부당시 미국이 선적국과의 양자조약을 맺는 등의 보완에 애를 썼지만 잘 되진 않은 것 같다. 영해의 경우도 마찬가지. 중국이 협조를 하지 않는 한 북한배가 미사일을 실었어도 그걸 중국바다에 가서 막을 수는 없는 일이다. 한반도 주변수역을 보자면 PSI에 전면참여 하지 않는다 해도 '남북해운합의서'에 의해 대량살상무기를 실은 배가 지나간다는 정보를 우리 정부가 입수하면 어차피 정선 검색을 해야 한다.  따라서 PSI에 전면참여 한다는 건 실질적으로 볼 때 그저 "우리가 화났거든" , 혹은 "우리가 미국 일본, 호주와 똘똘 뭉칠 예정이거든" 하는 신호 정도를 주는 의미이다.   


    두 번째 역설 - 북한이나 신중하게 말을 하는 중국, 러시아를 제외하면 국제사회 - 특히 일본과 한국은 북한이 뭔가 나쁜 행동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 나쁜 행동에 재한 처벌은 어렵다.

    우리가 PSI를 거론하는 건 사실 북한이 이번에 '광명성 2호'발사를 한다고 해도 우리 입장에서 북한에 내밀 카드가 별로 없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북한에 경화가 흘러가게 한다는 비난을 듣곤 했던 금강산관광과 개성관광은 이미 끊긴지 오래다. 개성관광도 맘 같아선 끊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있을 정도로 명분을 축적하진 못했다. 안보리 제재 전망도 불투명하다. 지난 2006년 과는 달리 오히려 1998년 처럼 만장일치 결의안은 커녕 의장성명이나 보도문 정도의 문건이 나올까 말까 하는 상황이다. 로켓이 실패해 일본의 영공으로 떨어진다면 몰라도 그러기 전까진 국제법상 요격도 불가능하다.


    세 번째 역설 - 북한이 우주개발을 한다지만 위성을 쏘아올릴 로켓과 대륙간탄도탄 ICBM은 서로 왔다갔다 전용이 가능한 기술이라는 사실은 만천하가 다 안다. 그러나 북한이 그걸 위성 발사라고 주장하는 이상, 절차를 차근차근 밟은 이상 다른 나라에서 미사일이라고 우길 수도 없다.

    인도같은 경우 먼저 우주개발을 하고 그 기술을 대륙간탄도탄에 적용했다. 반대로 미국과 옛 소련은 대륙간탄도탄 기술을 먼저 개발한 뒤 양국간에 우주개발 경쟁이 촉발돼 그걸 위성발사에 이용했다.

    미사일 기술은 MTCR이라는 폐쇄적인 그룹에 의해서 강력하게 통제되지만 평화적 우주개발이라고 이름을 붙이면 얘기가 전혀 달라진다. MTCR의 통제를 받는 우리나라는 사거리 300km가 넘는 미사일을 개발할 수 없지만, 소련에서 로켓엔진을 들여와 오는 5월에 사거리가 그보다 훨씬 긴 로켓을 발사한다.

    또 하나 재미있는 건 "미사일 주권"이라고 해서 MTCR회원국이 아니면 미사일을 개발하고 실험하는데 아무런 제한이 없다는 점이다.


    네 번째 역설 - '광명성 2호'가 발사되면 뭔가 긴장에 강도가 높아져야 할 것 같은데, 벌써부터 학자들, 정부 당국자들은 "협상의 계절"이 오고 있다고 말한다. 

    이런 관측이 나오는 건 과거의 경험 때문이다. 1차 핵위기 이후에 제네바 합의가 만들어졌고, 1998년 이른바 '광명성 1호' 발사 1년 뒤에 '미사일 모라토리엄'이 선언됐으며 그 이후 조명록차수, 울브라이트 국무장관의 교차방문까지 이뤄졌으니까 말이다. 최근의 일을 돌이켜봐도 마찬가지다. 6자회담이 BDA문제로 완전한 정체상태를 맞게 됐을 때 북한은 미사일을 쐈고 이어 핵실험까지 강행했다. 물론 핵실험뿐 아니라 미사일 개발도 못하게 하는 결의안이 만들어지긴 했지만 핵 실험뒤에 곧바로 중국에서 미국과 중국, 북한의 접촉이 이뤄졌고 6자회담이 재개됐으며 영원히 풀리지 못할 것 같던 BDA문제가 정치적으로 해결됐다.

    이번에도 북한이 미사일을 쏘고 나면 미사일협상이 시작될거라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익명을 요구한 실무자가 아니라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까지도 공개적으로 언급한 말이다. 그 틀이 6자회담 내의 북-미 양자회담이 됐건, 6자회담을 벗어난 양자회담이 됐건 북-미 미사일협상이 시작될거라는데는 모두 동의한다.  심지어 중단됐던 북-일 협상이 급진전될거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역설들. 그 역설들 가운데는 힘의 논리가 있다. 비약인지 모르겠지만 공해상의 자유로운 통행은 바다를 통해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영토를 넓혔던 과거 제국들의 역사가 녹아있는 건 아닐까? 핵도 마찬가지지만 미사일을 둘러싼 여러가지 역설들도 어찌 보면 현대사 속 강국이 되고자 했던, 그 과정 속에 경쟁했던 수퍼파워들의 생각이 숨어있는게 아닐까?

    그래서 강성대국을 건설하겠다는, 북한의 탱크위에 남한의 경제를 올리면 되지 않겠냐는 그네들의 생각이 행태가 칭찬할 만한 것이라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생존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북한이 우리 민족의 안위를 위협하는 도박을 하고 있는 건 분명하기 때문이다. 다만, 어느 외교관의 얘기처럼 "힘도 백도 없는 우리가 지금 흘러가고 있는 국제사회의 흐름을 읽지 못한 채 동북아 외교구도에서 실기를 할 경우, 그토록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한미동맹 마저도 어색한 상황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리 정부가 좀 더 숙고해 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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