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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SI 트라우마 / 2009.05.04.
    북핵리포트 2007-2012 2015. 8. 16. 23:05

    지난 2006년, 우리 정부는 북한 문제로 말미암아 큰 고통을 겪었다. 어떻게 해서든 강고한 부시정부의 대북정책을 누그러뜨려서 6자회담에서 비핵화에 있어서 진전을 이뤄낼까 고심하던 때 였다. 그런데 방코델타 아시아에 묶인 북한 자금 문제로 완전한 교착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이러한 금융제재는 미국 재무부가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효과가 있었고 북한은 집요하게 이 문제를 해결하라고 매달렸다. 그러나 법이라는 시스템으로 구축돼있는 미국의 특성상, 아무리 조지 부시가 대통령이라고 해도 불법에 관한 사항을 제도에 반해 해결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북한은 강수를 두고 나왔다. 7월, 미국의 독립기념일에 ICBM을 포함해 장,단거리 미사일을 보란 듯 발사했고 이어 3달 뒤에는 핵 실험을 감행했다.  국제사회가 만장일치로 각국의 주권에 해당하는 영역인 미사일까지도 문제삼는 매우 강도높은 결의안 1718을 만들었고 각국이 어떤 제재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핵심의제가 되는 상황이 도래했다. 그리고 그 때 미국은 약간 과장하자면 한국이 도대체 누구 편인지를 분명히 할 것을 요구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PSI에 참여 할 것을 압박한 것이다. 직접적으로 미국을 상대해야 하는 우리 외교부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상황을 맞닥드리게 됐다. 하다 못해 국무부내 비둘기파, 협상파로 알려졌던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도 기자들에게 '금강산관광 개성공단사업을 이해할 수 없다'는 얘기까지 하면서 정부를 압박했을 정도니까 말이다.

    외교부가 입은 상처는 두갈래였다.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막자'는 국제적인 흐름에 동참하는 것이 맞다는 소신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북한을 자극하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로 꼬리를 내려야 했다는 점. 두 번째로는 자신의 소신과 다른 - 스스로 논리적이라고 생각지 않는 - 얘기를 '최고의 동맹'이라는 미국에 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이런 논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 PSI문제는 몹시 정치적인 이슈가 됐으며 일반국민에게는 그것의 진실 여부를 떠나, 'PSI에 전면참여를 할 경우 남북간에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심어줬다.

    3년이 지난 지금. 몇가지 달라진 것이 있다. 우선 정부가 바뀌었고 현재의 이명박 정부는 과거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와는 다른 생각, 다른 접근법을 갖고 있음이 틀림없다. 또 올해들어 미국 정부도 바뀌었다. 이제 미국 정부 내에서 볼턴이나 체니의 목소리는 사라졌다. 또 하나, PSI가 개념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볼턴이 애초에 추진했던 PSI의 아이디어는 국제법의 한계, 공해상에서의 무해통항권을 뛰어넘는 아주 강력한 것이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미국은 편의치적국들과 양자조약을 맺는가 하면 안보리 결의안 1718을 통해 PSI의 국제법적인 근거를 마련하려고 했다. 안보리 결의안 1718의 초안은 볼턴이 만들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오바마 정부도 오바마-바이든 플랜을 통해 천명한 것 처럼 대량살상무기의 비확산을 강조하고 더 나아가 핵무기 없는 세상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접근법은 전혀 다르다. 오바마 대통령의 체코 연설에서 드러나듯 오바마가 구상하는 PSI는 국제법을 무시하고 움직이는 국가들의 자발적 모임이 아니라 국제법 체계 안에서 명확한 책임과 의무를 갖고 움직이는 국제기구적인 성격을 띈다. 오바마는 "PSI를 국제기구화 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실제로 2006년과 2007년에 각각 6번, 2008년에도 5번이나 실시됐던 PSI 차단훈련은 올해 2번 만이 계획돼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2009년 현재, 우리 정부가 PSI에 전면 참여하는 건 어떤 의미를 갖을까? 

    매우 분명한 것은 미국정부가 바뀌면서 성격 자체가 달라지고 있는 PSI와 관련해 지난 2006년 처럼 미국이 우리에게 전면 참여를 종용하고 있는 상황은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 국무부엔 PSI를 담당할 관리가 누구일지도 아직 정해져 있지 않다.

    PSI에 전면참여 하게 될 경우 우리 영해에서 차단훈련을 실시할 수도 있는데, 키 리졸브 훈련 때도 개성공단 통행이 중단되는 걸 경험한 우리 정부가 '자율'에 해당하는 역내 차단훈련을 '스스로 하자'고 다른 참여국들에게 제안할 개연성은 거의 없다. 이와 관련해 외교부 당국자도 "안하면 그만"이라고 말했다.

    PSI에 참여했을 때 달라지게 되는 것 가운데 또 하나는 참여국들 사이의 정보공유가 이뤄진다는 점인데, 이 정보공유는 PSI가 아니라도 한.미.일 3국은 물론 PSI에 가입하지 않은 중국까지도 잘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또 얼마전 리포트를 한 적 있지만, 우리 영해내에서는 이미 남.북 해운합의서에 의해 정선, 검색 뿐만 아니라 '퇴거'라는 PSI보다 오히려 한발 더 나아간 조치도 할 수 있다.  

    결국 우리 정부가 PSI 전면 참여를 오늘 선언한다 해도 실제로 달라지는 건 별로 없다.

    달라지는 것이 있다면 대북인권 결의안에 대한 외교부의 입장과 마찬가지로 PSI에 전면 참여 했을 때, 우리가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라는 이슈에 책임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동참하고 있다는 얘기를 자랑스럽게 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뒤집어 말하면 외교부가 집요하게 PSI에 전면참여 하려고 시도했던 건 무슨 '실익'이 있어서가 아니라, 2006년 몹시 강하게 받았던 충격에 따른 심리적 과민반응에 다름 아니다.

    우리 외교부는 안타깝게도, PSI에 제대로된 타이밍에 들어가는 걸 놓쳤다. 담담하게 시점을 잡아 전면참여를 선언했으면 될 걸 괜히 '국민들의 반응이 가장 좋을 때'를 노려 들어가려다 일을 그르친 것이다. 4월 15일 발표하려던 게 연기되고, 그 주 주말에 하려던 것이 또 미뤄졌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PSI참여와 개성공단 문제, 억류된 유모씨 문제는 매우 강한 고리로 엮기게 됐다. 

    외교부는 지난 주 정례 브리핑에서, PSI참여와 관련해 정부의 원칙이 달라진 게 없다고 했다. 몹시 공허한 얘기다.

    트라우마(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사전적으로 신체적인 손상 및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한 후 나타나는 정신적인 장애가 1개월 이상 지속되는 질병을 뜻한다. 그 증상 가운데는 '과민반응'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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