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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양에서 보내는 신호 / 2009.08.31.
    북핵리포트 2007-2012 2015. 8. 17. 18:09

    억류중이던 여기자 2명을 빼내오기 위해 누군가 평양을 방문할 것이란 사정은 한국의 당국자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방문할 사람이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으로 결정됐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외교부는 잔뜩 긴장했다.  


    미국은 여기자 문제 해결은 북핵 협상과는 전혀 별개의 트랙임을 매우 분명히 해왔다. 


    또 핵문제 해결과 관련해서도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겠다, 비핵화에 대한 분명한 의지표명이 있어야 한다는 강한 입장을 견지해왔다. 


    대통령을 지낸 탁월한 정치적 감각의 소유자 빌 클린턴이 평양에서 말 실수를 할 개연성도 상당히 낮았다. 


    그러나 문제는 북한이었다. 이쪽이 어떤 준비를 하고 갔건, 고치에서 나온 북한 -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면담 자체가 주는 국제사회에 대한 메시지 외에도 미국에 자신의 메시지를 전할 개연성이 매우 높았기 때문이었다. 


    북한은 빌 클린턴 방북 당일(8.4) 방송사고를 낼 정도로 신속하게 관련 사실을 보도했고, 조선신보는 "북미대결의 근본문제가 폭넓게 논의될 거"라고 분석했다. 


    전직 대통령이자 현 국무부장관의 남편이기도 한 클린턴은 방북기간동안 내내 미소를 보이지 않는 신중함을 잃지 않았고, 오바마 대통령에게 건네진 방북 보고서에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는 것이 우리 당국자들의 설명이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북미관계는 전적으로 북한에 달려있다"(8.5)고 발언했고, 미국의 ABC방송은 빌 클린턴이 평양에서 "북한의 추가 고립을 경고했다"(8.7)는 보도를 내놨다. 



    "평양에서 서울을 향해 날아간 신호" 


    지난 번 칼럼에서 필자는 7월4일을 계기로 북한이 스스로를 가뒀던 고치에서 벗어났다고 표현했지만, 그 사실을 외부세계에 본격적으로 알리기 시작한 것은 8월 이후 본격화 됐다. 그리고 그 신호의 방향은 매우 분명히 서울을 향하고 있었다. 


    7월 초, 북한은 민간단체를 통해 우리 정부에 매우 구체적인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우여곡절을 거치긴 했지만 우리 당국이 개성공단 출입과 관련해 서류제출 의무를 완화(8.2)하고, 매칭펀드 형식으로 대북 간접지원을 재개(8.3)하는 일이 있은 후 북한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평양으로 불러들였다.(8.10) 


    이어 현대아산 유성진씨가 풀려났고(8.13), 현정은 회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을 했으며(8.16), 그 면담결과를 바탕으로 현대그룹과 북측 아태위원회간의 5개항 합의(8.17)가 작성됐다.  ▲금강산관광 재개, ▲남측 인원들의 군사분계선 륙로통행과 북측지역체류 원상회복 ▲개성관광 재개와 개성공업지구사업 활성화 ▲백두산관광 시작 ▲올해 추석에 북남 흩어진 가족, 친척들의 상봉 진행 등 모두 5개항이다. 


    언뜻 보아도 금새 알 수 있듯이 5개 항의 합의 내용은 매우 흥미롭다. 모두 민간사업자인 현대그룹과 북한 아태위 사이의 '합의'라는 형식에 걸맞지 않는 내용인 것이다. 


    이와 관련한 북한의 얘기를 들어보자.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조총련계 조선신보(8.17)는 "평양에서 서울을 향해 날아간 신호는 의미심장하다."면서 8월 초 이후 조성된, 혹은 조성할 국면을 두고 "수개월간 지속되여온 《제재》와 《자위적조치》의 응수에 의한 긴장격화의 고리가 풀리여 국면이 전환되여나갈 조짐이 감지되고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지향하는 국제적인 조류가 가시화되여나간다면 《제재》소동을 추동한 각국의 대결일변도로선은 재검토가 필요하다. 과거와 뚜렷한 선을 그어야 할 객관적인 상황이 조성되는것은 역설적으로 말하여 남조선의 《실용정부》가 민족자주의 궤도에 들어서는 둘도 없는 기회다."라고 조선신보 김지영 기자는 분석한다. 


    요컨대 현정은 방북을 통해 "평양에서 서울로 보내온 신호"는 직접적으로 우리 정부를 향한 것이며, 지난해 8월 이후 - 작년 연말 이후 숨가쁘게 진행돼왔던 도발적 행동, 긴장조성 조치들을 일시에 거둬들일 테니 대화 국면으로 전환하자는 매우 분명한 메시지였던 것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북한은 김대중 대통령 서거와 관련해 김기남, 김명길 등 대남 라인들이 총동원된 '특사 조의 방문단'을 서울로 보내고(8.21), 체면이 깎이는 걸 감수하며 이명박 대통령을 만났으며(8.23), "역도"란 표현의 사용을 중단했다.(8.25) 


    북한은 또 12.1 조치를 원상회복시키겠다고 선포했고(8.21) 통신선을 다시 이었으며, 금강산 적십자회담을 열었고(8.26~28), 동해 북방한계선을 넘어갔던 800 연안호를 돌려보냈다.(8.29) 


    조선신보는 최성익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의 기조발언을 소개하며, 이번 적십자회담을 두고 "이명박 정권 출범 후 북남관계 개선에 새로운 계기점"이라고 평가했다.(8.27)  



    북한의 다목적 포석 


    방향은 정 반대이지만, 북한이 보내고 있는 신호의 행태는 '고치'에 갇혀있는 동안 보여왔던 행태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신호음을 낸 뒤 그 반응을 정확히 계측하고 분석해 다음 신호음을 내는 것이 아니라 시간표에 따라 숨 돌릴 틈을 주지 않고 연속적인 행동을 보이고 있는 것.  고치 안에 있을 때나, 지금 고치 밖으로 나왔을 때나 근본적으로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판단이 깔려있는 듯 하다. 


    그렇다면 북한이 이처럼 짧은 시간동안 극단적인 변화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북관계 극적 진전", 더 나아가 "보즈워스 방북..북.미 직접대화 하나" 같은 제목을 단 기사들이 지면을 가득 메우는 사이 어쩌면 좀 다른 맥락으로, 그렇지만 어떤 일관된 흐름으로 나오고 있는 현상들에 주의를 기울여볼 필요가 있는 듯 하다. 


    지난 7월 1일, 미국 당국이 추적하던 강남1호는 북한의 우방국인 미얀마(버마)의 거부로 항로를 변경해 북한으로 되돌아갔다. 이 일을 전후해 미국 국무부와 언론은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미얀마와 북한의 핵협력 문제를 집중적으로 부각시켰다. 방콕포스트 등 역내의 언론들은 북한이 건설을 도왔다는 지하시설은 핵 시설이 아니며 '공습을 대비한 것'이라고 해명성 보도를 했지만 잘 먹혀들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8월 7일, 이란으로 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가 인도 영해에 닻을 내렸던 MV 무산호가 인도 당국에 의해 나포됐다. 인도당국은 선장과 선원을 상대로 WMD관련 화물이 있었는지 여부를 강도높게 조사했다. 


    뒤늦게 알려지긴 했지만,  일주일 뒤인 8월 14일에는 바하마 선적의 'ANL-오스트레일리아'가 북한제 개인화기 등 무기를 싣고 이란으로 향하다가 UAE당국에 적발돼 화물을 압류당했다고 한다. 


    이러한 흐름은 2006년 북한이 1차 핵실험을 한 뒤 잠시 제재국면이 조성되기도 했지만, 베이징에서의 미-중-북 3자회동을 시작으로 제재 이행이 흐지부지 됐던 것과 전혀 다른 것이다.  미국 재무부는 8월12일 조선광천은행을 제재대상으로 추가지정했고, 확인되지 않지만 미국이 BDA같은 계좌 여러개를 확인했다는 소문도 있다.  골드버그 조정관은 끊임없이 관련국을 오가며 북한 불법거래 관련 정보를 전파하고 협조를 당부하고 있다. 


    북한도 김영일 외무성 부상을 시켜 동북아 여러나라들을 돌게 하고 있다. 그는 "조만간 북미관계에 큰 진전이 있을 것이다"는 얘기를 하고 다닌다고 한다(8.12). 그러나 미얀마같은 전통적 우방조차 면을 바꾸고 돌아서게 만드는 미국의 힘, 미국 재무부의 힘은 북한에게 중과부적(衆寡不敵)임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지난 8월17일 우다웨이를 북한에 보낸 중국도 애를 쓰고 있다. VOA 보도에 따르면(8.28), 중국은 안보리 결의안 1874의 이행보고서를 제출하면서 "결의를 전면적으로 이행하고 있다"면서도, "안보리 결의 이행이 북한의 국가 발전이나 정상적인 대외 접촉, 북한 일반주민들의 삶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되며 북한의 다른 나라들과의 정상적인 대외관계를 해쳐서도 안된다"고 강조했다.  


    결국 북한의 극단적인 변화는 북한을 둘러싼 녹록치 않은 국제적인 분위기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남한을 통해 국제사회를 향한 평화제스쳐를 보이고, 미국과의 대화에 좀 더 도움이되는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들고, 남.북간 대화가 잘 성사되면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경제적인 도움도 얻을 수 있다는 다목적 포석이 아닐까? 


    북한의 조선중앙방송(8.28)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6월25일 발언을 소개했다. 이 방송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2012년까지 "점령해야 할 목표는 비상히 높고 주어진 기간은 짧지만" 올해 "결정적인 전환을 가져와야 한다"고 거듭 주문했다. 



    "익은 감은 언젠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보즈워스의 방북을 두고, 미국 국무부 기자실에서 서울의 외교부 기자실에서 설왕설래가 대단하다. 그러나 흘러다니는 각종 이설(異說)들의 내용에 관해 갑을논박 하기 전에 몇가지 논점을 좀 분명히 해 볼 필요가 있다.   


    일단 보즈워스의 방북은 현재 국면에서 볼 때, 과거의 판에서 처럼 이후 이어지는 회담의 시기, 내용과 형식 모두를 규정짓는 '사전 비밀 시나리오'를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다.  2기 부시정부에서 크리스토퍼 힐이 베를린이나 베이징에서 김계관을 만나는 것과는 전혀 의미가 다르다는 얘기다. 


    그러기엔 북한은 9.19나 2.13 등 기존 회담의 의제나 구도에서 너무나 멀리 벗어나 있고, 오바마정부의 북핵라인은 과거의 협상 행태를 되풀이할 생각이 없다.  다시 말해 보즈워스가 평양엘 간다고 해서 북-미 직접대화가 곧바로 시작되고, 제네바 합의(1994) 같은 결과물이 등장하는 상황이 전혀 아니라는 얘기다. 


    보즈워스가 간다면 물론 미국의 이른바 '포괄적 패키지'에 대한 어렴풋한 구상을 갖고가긴 하겠지만, 방북의 제 1 목적은 어디까지나 북한의 생각을 좀 더 분명히 탐색하기 위한 것이 될 것이다. 


    또 미국 입장에서, 북한과의 대화를 굳이 서둘러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북한이 숨가쁘게 신호를 보내고 있는 마당에, 미국이 그 얘기를 듣지 않겠다고 마냥 거부할 필요도 없다.  


    과거 6자회담에서 상당한 걸림돌이 돼 왔던 일본의 경우, 8.30 선거를 통해 정권이 바뀌었다. 북한이 한 걸음에 달려온 150일 전투는 9월 말쯤 마무리가 된다. 


    이런 맥락에서 보즈워스 방북에 대해 지나치게 의미부여를 할 필요가 없다면, 그가 한국, 중국, 일본 등 관련국과의 협의를 거친 뒤 가을 어느 시점에 북한을 방문하는 것이 그리 어색할 이유가 없다.  


    한 외교 소식통은 "익은 감은 떨어지기 마련"이라는 말로 상황을 빗댔다. 이를테면 지금은 푸릇한 열매가 주황색 빛으로 바뀌어 가는 시점인 셈이다. 



    여전한 혼란 


    조총련계 조선신보는 25일 보도를 통해 "특사 조의 방문단의 파견 소식은 며칠동안 평양에서도 관심사"였다면서, '이 대통령 면담'이라는 "갑작스러운 국면전환에도 평양시민들은 별로 당황하는 기색이 없다"고 전했다.  이어, "조선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크게 전환돼 가고 있다"면서, "특사 조의 방문단의 청와대 방문을 계기로 이제는 '되돌리지 않는 변화'가 시작돼야 한다"고 했다. 


    이어 28일에는 6.15와 10.4 선언과 이산가족 상봉을 연계시키며, "정부 차원에서도 상대가 내밀었던 손을 맞잡아야 전반적인 북남관계가 발전의 궤도에 들어설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 매체들이 애매하게 자신의 의도를 숨기는 태도가 아니라 아예 '이래도 모르겠냐'는 식으로 공세를 취하고 있는 형국이다. 


    아쉬운 건, 이런 변화를 읽고 대응하는 우리 정부의 태도다. 


    정부의 핵심 관계자는 조문단의 이 대통령 면담과 관련해 사전에 대응 기조가 명확히 나와있었던 것 처럼 말했지만, 복수의 취재원으로부터 들은 얘기는 그 관계자의 설명과 달랐다. 조문단과 이 대통령을 만나게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두고 갈팡질팡 했고, 이 면담이 성사된데는 여권 한 인사의 '직보'가 상당한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금강산에서 열린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 회담도 마찬가지. 우리측은 세밀하고 정교한 전략 없이 국군포로 문제, 납북자 문제를 북측에 던졌다가 소득없이 체면을 구겼다.  


    충분히 '실용적' 고려를 한 뒤에 전략을 구사하고, 일단 구사한 전략에 대해서는 분명한 일관성을 견지하는 태도가 아쉽다는 얘기다. 


    물론 정부 입장은 상당히 난처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서울을 향해 소리를 지르고 있는데 '다목적 포석'이라 해도 부르는 대상은 서울이 아니라 바다 건너 워싱턴인 것 처럼 느껴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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