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원자바오 방북...그 이후 / 2009.10.07.
    북핵리포트 2007-2012 2015. 8. 17. 18:11

    중국의 원자바오가 김정일과 회담을 갖던 날. 북핵외교사에 또 다른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늦게까지 회사에 남아있었다. 


    중국시간으로 9시50분쯤, 우리시간으로 10시50분쯤 중국관영 신화통신은 원자바오와 김정일이 회담을 가졌다는 한줄짜리 기사를 내보냈다. 뭔가 속보가 나올 것이라는 예고였지만 속보는 다음날 새벽이 돼서야 나왔다. 


    김정일이 우선 미국과 양자회담을 가져 본 뒤, 6자를 포함한 다자회담을 할 수 있다고 얘기했다는 것. 


    물론, 6자회담이 죽었다고 여러차례 언급해온 북한의 입장에서 6자회담을 언급한 것 자체로 특별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지만 일방적으로 '희망섞인' 해석을 하기엔 전제가 너무 많이 달려있는 언급이었다. 


    그래서 원자바오의 방북 이후 여러가지 설이 난무했다.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가 기대에 못미친 김정일의 언급 때문에 상당히 화가 나서 돌아왔다는 얘기에서부터 사실은 신화통신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것 외에 '플러스 알파'가 있다는 얘기. 중국과 북한이 서로 명분과 실리를 주고 받은 만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는 얘기까지. 


    미국의 반응도 한국 시간으로 7일까지 별로 분명해 보이지 않았다. 중국측으로부터 설명이 덜 됐든지 아니면 어떤 언급을 하기엔 정보가 너무 적던지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왜, 이 시점에 원자바오와 김정일의 만남 그리고 김정일이 꺼낸 얘기에 민감해 하는 것일까? 


    지난 번 메모에서 언급한 바 있는 이른바 "Grand Bargain"은 어떤 변곡점을 향해 달려가는 현재 국면에서 우리나라가 '정립'한 한국의 입장이다. 


    Grand Bargain에는 정부 당국의 화법으로 말하자면 "협상에 들어갈 요소들을 그저 나열하는데 그쳤음에도 '합의'라 부른 2005년 9.19 공동성명. 핵 협상의 단계를 나눠 그저 시작 차원의 일을 규정한 2.13 그리고 어정쩡한 10.3 합의. 이런 단계적 협상과 보상을 해서는 안된다. 그건 잘못된 장사다."는 논리가 깔려있다. 


    이른바 제네바 합의로 불리는 1994년 Agreed Fraimwork 처럼, 이행 요소들과 시간계획(time table)이 완벽하게 짜여져 있는 단일한 합의를 만들고, 그래서 스위치를 누르면 그 합의대로 되돌이킬 수 없는 이행이 이뤄지는 one shot deal을 하자는 것이다. 


    다만, 역사의 교훈 - 제네바 합의가 가졌던 치명적인 약점인 '가장 중요한 부분을 가장 뒤로 미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를테면 '두괄식'으로 북한이 핵무기와 핵물질, 핵물질 제조시설 등을 가장 먼저 포기하게 만드는 하나의 합의를 만들자는 것이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하겠지만, "그렇다면 어쩌겠나? 그것 말고, 결코 해결방법이 안될 거라고, 결국 끌려다니고 말거라는 걸 알면서도 거짓 해법을 논할 것이냐"는 것이 어느 정부 고위 당국자의 설명이었다. 


    "비핵ㆍ개방ㆍ300"과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Grand Bargain은 슬로건을 구성하는 3가지 키워드 가운데 한 부분, "비핵"의 방법론이라고 보면 된다고 부연했다. 


    그리고 이 불가능한 과제, mission impossible의 성공을 위해 "일치된 강력한 제재를 유지해 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이 당국자는 설명했다. 그래서 질문을 했다. "중국은 어쩌구요?"


    어쩌면 그 질문에 대한 고위 당국자의 답이 Grand Bargain의 얼개를 '두괄식 agreed framework'로 설명한 대답보다 더 핵심적인 내용일지도 모른다. 


    당국자는 "그래서.. 중국이 이러 저러하게 움직일거니까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역할을 포기하고 그냥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는가?"하고 반문했다. 


    그의 논리를 요약하자면, 1) 중국은 북한을 바라보는 특수한 관점이 있지만 2) 그럼에도 무시할 수 없는 국제 정치적인 자산(capital)을 갖고 있는 슈퍼파워인 미국의 존재를 의식해야 하고 3) 미국은 또 한반도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동맹인 한국의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다시 원자바오와 김정일의 만남으로 되돌아가 보자. 


    꼭 7일자 석간 문화일보가 대문짝만하게 보도한 걸 상기하지 않더라도 중국과 북한의 대화, 그리고 그 이후에 이어질 미국의 선택은 이른바 'Grand Bargain'으로 요약되는 우리 정부의 입장이 변방에서 울리는 '잡음'정도로 치부될지, 아니면 의미있는 '목소리'가 될지가 판가름날지도 모르는 중요한 고비인 셈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1874로 상징되는 '제재'가 그 효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그리고 한국의 작은 레버리지로 미국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다시 그것이 중국을 움직이는 매우 취약한 구조(그나마 '도발 vs 제재 국면'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가 유지될 수 있을지에 대한 심각한 우려가 자리잡고 있다.    


    서로 내부적으로 복잡한 셈을 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이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우리의 목소리를 '잡음' 정도로 치부하기로 하고 새 판을 짤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아주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두가지의 시나리오가 있다. 


    하나는 "역사는 과거를 반복한다, 혹은 반복할 수 밖에 없다"는 명제. 두 번째는 "'전례'는 깨어지기 위해서 있다"는 명제다. 


    아직은 그 두가지 가능성 가운데, 어떤 방향성을 예측하기엔 우리가 갖고 있는 정보는 너무 적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