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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랜드 바겐 ( Grand Bargain ) / 2009.10.05.
    북핵리포트 2007-2012 2015. 8. 17. 18:10

    외교부에서 총리실로 출입처를 옮기게 됐습니다. 지금까지 써 왔던 형태의 '리포트'를 계속해서 쓰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자료를 보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매일 숙제를 못한 심정으로 괴로워하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전략을 좀 바꾸기로 했습니다. 시점이나 중요한 워딩, 이런 것들을 분명히 하지 않고라도 제가 생각하는 판에 대해서 그저 '메모'형태로라도 정리를 해두는 것이 낫겠다는 타협이죠. 앞으로는 '북핵메모'라는 이름으로 좀 더 자주 뵐 수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방미 직전, 외교부에서는 몹시 이상한 일이 있었다. 어느 아침 외교부 장관이 경제계 인사들과 만나는 자리가 있었는데 '상당히 중요한 얘기를 할 것이니 꼭 참석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얘기가 돌았던 것. 



    십수명의 기자들이 새벽에 시작하는 그 조찬모임에 참가했다. 그런데 기대?와는 달리 유명환 장관의 말은 '북한 핵 협상사'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로 원론적인 강의 이상의 무엇이 아니었다. 


    질의응답 과정에선 경제인들이 외교장관에게 물어볼 것 같지 않은 질문들이 매우 '정연하게' 순서를 갖춰서 나왔다. 하긴 그런 자리에 강연자 측에서 질문지를 미리 건네는 경우는 종종 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그 질문 가운데 하나에 대한 답에는 도무지 정통관료의, 그것도 외교를 담당하는 수장으로서 어울리지 않는 어휘들이 동원됐다. 이를테면 북한이 "적화통일" 야욕을 갖고 있다던지, 북한의 핵은 "남한을 겨냥하고 있다"던지 하는 얘기들이었다. 


    자극적인 말이 나오면 그 말을 외면하기 어려운 언론의 속성상 그날 아침 바로 그 단어들이 차용된 제목으로 기사가 나왔다. 


    이렇게 되고 난 뒤에, 기자들은 도대체 '중요한 얘기'를 할 거라는게 무슨 뜻이었냐고 되물었다. 그에 대한 답으로 몇몇 간부들, 그리고 관계자는 이런 얘기를 했다. 현 정부가 지난 정부와 다르게 북핵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고, 장관이 그걸 상세하게 정리해 밝히는 것은 드문 기회라는 것. 


    그래서 강조점이 뭐 였냐고 묻자 가장 먼저 나온 얘기가 ▲ 핵 문제는 미.북에 맡기고 남북간에는 협력 하다보면 종국에 만나지 않겠냐는 좌파들의 생각은 잘못됐다는 점. 그리고 ▲ 일각에선 일본과 한국의 입장이 강경하다고 하는데, 그런 표현은 잘못됐고 단지 확고(firm)하고 일관성이 있다고 표현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 당국자는 ▲ 포괄적 협상 ▲ 종합적 접근 ▲ 5자간 통일된 입장과 공조 ▲ 가시적 진전이 있을 때 까지 계속해서 제재 같은 몇몇 키워드를 뽑아냈다.    


    이 같은 유명환 장관의 조찬강의는 대통령이 미국에서 던진 이른바 Grand Bargain의 서곡, 혹은 예고편 같은 것이었다. 


    사전, 당일, 사후에 있었던 여러가지 설명을 참조하자면 우선 이 Grand Bargain이란 용어는 앞으로의 북한 핵 협상 과정에서 지금까지의 끊어치기 협상, 보상을 배제하고 통 크게 주고받자는 의미인 것으로 보인다. 


    원래 Big Bang이라는 단어를 쓰려고 했다가 느낌이 안좋아서, 지난 6월 한-미 정상회담때 이명박대통령의 얘기를 듣고 오바마가 표현했다는 Grand Bargain이란 말을 따왔다는 것. 


    일각에선 미국측이 사용한 '포괄적인 패키지'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은 개념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그런데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이 Grand Bargain을 설명하면서 oneshot deal이라는 말을 동원해 부연설명을 했다. 집중적인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필자는 역으로 보면 이 관계자가 Grand Bargain의 진정한 속성을 제대로 설명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명박 정부 그랜드 바긴의 초점은 북한에게 줄 패키지에 맞춰져 있지 않다. 오히려 그 바긴이 진행되는 절차, step 혹은 process에 맞춰져 있는 것이고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바긴이 진행될 수 있는 전제조건이 핵심 의제로 배치돼 있다. 


    가상의 핵심당국자를 상정해 그랜드 바긴을 설명하게 해 보자. 


    "모름지기 북한과 거래(bargain)를 한다고 한다면, 큰 틀(grand)에서 해야 한다. 동결과 불능화같은 부분적인 조치를 절차를 밟아서 하는 게 아니라 단번에 원자로와 플루토늄, 핵폭탄까지도 함께 가지고 나올 수 있는 딜을 해야 한다. 


     생각해 보라. 북한의 핵은 저 멀리 태평양 건너 있는 미국이 아니라 분단된 남쪽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더 위험스러운 무기이다. 따라서 그랜드 바긴을 해야 한다는 우리의 주장 - 북한이 비핵화를 하면 도울 수 있다는 비핵개방3000 구상에 대해 당연히 우리는 목소리를 높여야 하고 미국은 우리를 배제하고 협상에 나서면 안된다." 


    미국은 현재 북한과 양자대화를 하고 그걸 지렛대로 해서 북한을 다자협상으로 끌어내려 하고 있는 상황이다. 


    북핵외교를 조금만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북핵외교에서 OneShot deal은 이상적으로는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매우 어려운 거래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step과 process는 필수적인데, big bang이 있어야 한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미국 국무부가 적극적으로 반응하기는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더구나, 미국의 입장에선 big bang이라고 표현할 정도의 딜을 하자고 한국의 대통령이 말하는데, 과연 북한이 원하는 "체제 보장"과 관련해서 South Korea가 과연 무엇을 줄 수 있는지, 혹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몹시 궁금했을 것이다.  


    그래서 뉴욕타임스를 비롯해 매우 이상한 반응이 나왔고, 뉴욕 시간으로 아침 7시부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과 위성락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은 기자들에게 한-미간 공조에는 전혀가 문제가 없다, 오해가 있었노라고 설명하느라 분주했다. 


    스타인버그의 방한을 통해 미국은 "한-미 정책공조에 이상없다"는 말을 던짐으로써 어색한 상황을 일단 진화하려 했다. 


    그런데 바로 그날, 이명박 대통령은 G20의 성과, 당당한 외교무대의 주연이 됐다는 걸 자축하면서 조금 더 나갔다.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어떤 자가 Grand Bargain에 대해 어떻게 평했는지 모르겠지만 외교에서도 한국이 '주체'로 나서겠다는 메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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