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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계점의 전조 / 2009.12.21.
    북핵리포트 2007-2012 2015. 8. 17. 18:40

    지난 주말 뒤늦게 남북 정상회담 추진 뒷얘기가 연합통신을 통해 보도됐다. 다음날, 21일자 조간에도 역시 비슷한 기사가 나왔다. 요약해보면 임태희-김양건 라인이 가동돼 10월 중순 이후 비밀접촉이 이뤄졌고, 11월 통일부에서 관여해 7일과 14일 두차례에 걸쳐 개성에서 남북 접촉이 이뤄졌지만 결국 국군포로 등의 의제에서 진전을 보지 못해 결국 정상회담 논의가 무산되고 말았다는 내용이다. 


    왜 갑자기 10월 11월에 벌어졌던 일들이 12월, 그것도 한해를 마감하려 하는 시기에 다시 등장하게 된 것일까? 



    ■ 보즈워스의 방북 


    미국 워싱턴 시각으로 12월16일 국무부에서 보즈워스가 방북(9~10)내용과 관련해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보즈워스는 상당히 긍정적인 톤으로 방북 결과를 설명했다. 북미대화는 상당히 긍정적(quite positive)이었다면서, 서로 날선 외교적인 수사를 날리지 않고 실무적인(business like) 논의가 이뤄졌다고 했다. 그리고 북미관계의 과거와 다른 현재, 그리고 미래의 비젼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의 의중이 실린 심도깊은 얘기를 나눴다고 했다. 그는 오바마의 친서를 소지하고 평양으로 갔다는 보도내용을 부정하지 않았다. 


    6자회담과 9.19의 중요성을 수용했다는 등의 보즈워스의 발언은 "실무적이고 솔직한 론의를 통하여 쌍방은 호상 리해를 깊이하였으며 서로의 견해상 차이를 좁히고 공통점들도 적지 않게 찾게 되였다. 6자회담재개의 필요성과 9.19공동성명리행의 중요성과 관련하여서도 일련의 공동인식이 이룩되였다."는 11일 조선중앙통신의 보도와 맥을 같이 한다. 


    결국 북미는 보즈워스가 "6자회담을 재가동하기 위한 목적의 탐색"이라고 규정한 이번 만남을 통해, ▲조만간 북한이 6자회담에 나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하고 ▲반대급부로 그동안 큰 진척이 없었던 평화협정 (2005년 9.19 공동선언에 나와있는 한 요소), 그리고 그와 병행한 동북아 평화체제 문제까지 신속하게 논의하기로 뜻을 모은 것으로 해석된다.  그리고 이러한 북미의 '공동인식'과 관련해 6자회담 참여국들의 기초적인 '승인'도 이뤄진 듯 하다. 보즈워스는 평화협정을 논의할 당사국은 미국과 중국, 남한과 북한 이렇게 4개국이 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반면, 북한이 회담복귀의 선결조건처럼 언급해온 'UN제재 해제' 문제나 '핵보유국 지위' 주장은 '전혀 물러설 수 없는 조건'은 아닌 것으로 관측되며, 우라늄 농축 문제는 북한 스스로 의제화한 의도대로 비핵화 프로세스의 새로운 변수, 새로운 의제로 등장하게 될 것으로 명백하게 예고됐다. 


    보즈워스는 6자회담의 의장국인 중국이 앞으로 몇주 동안 이니셔티브를 쥐고 조율을 할 거라고 밝혔다. 정부의 한 고위 당국자는 "내년 봄까지는 6자회담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6자회담이 열리기 전, 북미가 다시 조우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보즈워스는 기자간담회에서, 관련국들이 "미국이 6자 틀 안에서 양자협의를 갖는 것의 유용성에 대해 강력한 지지가 있었다"고 밝힌 바 있고, 추가 양자회동의 가능성을 배제(rule out)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 북한의 11.30 화폐개혁  


    보즈워스의 방북 직전, 북한은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조총련계 기관지 조선신보는 12월4일 "11월 30일부터 국가적인 조치에 따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앙은행이 발행한 새 화페와 지금까지 써오던 낡은 돈을 바꾸는 화페교환사업이 전국에서 일제히 진행되고있다. 거주지들에 조직된 화페교환소에서 6일까지사이에 진행된다고 한다."고 보도했다. 교환비률은 100대 1이었는데, 조선신보는 화폐개혁과 관련해 별도의 인터뷰기사까지 실으면서 "화페교환의 목적은 화페류통을 원활히 함으로써 사회주의경제강국건설을 다그치며 근로자들의 리익을 옹호하고 생활을 안정향상시키기 위한데 있다"고 했다. 


    북한의 노동신문 등 기관지들은 이런 내용을 보도하지 않았다. 과거의 전례에 비춰 이례적인 일이다. 첫 소식은 이른바 '대북소식지'들에 의해서 흘러나왔고, 교환비율과 돈을 바꿔주는 한도, 그리고 북한이 이런 화폐개혁을 하는 의도나 시장의 반응 등에 관한 소식들이 혼란스런 양상으로 보도가 됐다.  중심을 잡아 요약하자면 ▲북한의 화폐개혁은 전격적으로 이뤄졌고, ▲발행일자 불일치로 볼 때 과거에도 시도하려 했던 것이었으며, ▲계획경제의 강화(시장경제의 통제)에 초점이 맞춰졌으며, ▲북한사회 내에 일정한 혼란을 초래했다는 정도가 될 것이다.


    왜 북한은 이 시점에 미뤄오던 화폐개혁을 단행했을까? 북한의 이른바 도발적 행동이 잇따라 터져나오던 올 봄, 우리는 반응을 보지 않고 돌진하기만 하는 북한의 태도를 '시간표'라는 가정으로 이해하려고 시도했었다. 그리고 역시 그 이후에 벌어졌던 '유화적 행동'들도 같은 방식으로 분석했다. 화폐개혁 역시 비슷한 틀 위에 놓고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북한 경제 시스템에서 시장경제의 의존도는 상당히 높아졌고, 계획경제의 장악력은 상당히 약화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연구학회보 13권 1호에 실린 [과거와 미래의 혼합물로서의 북한경제]라는 글에서, 1990년대의 북한경제를 "계획경제도 아니고 시장경제도 아닌 무엇인가 혼합 상태" 라고 규정하면서, "김정일경제, 기관별 회사경제, 계획경제(내각경제), 제2경제(특권 계획경제), 동원.지원경제, 농촌협동경제, 장마당 경제" 이렇게 7가지 요소가 혼재돼 있다고 분석한다. 특히, 이 7가지 분야 가운데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작동되는 "장마당 경제"가 "서로 격리돼 있는 다른 6개의 구획을 상호 연계 통합시키는 장치로 기능한다"고 설명한다. 


    북한의 강성대국 건설(2012)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음을 볼 때, 권력의 장악 - 후계체제의 안정화에 있어서 외교나 군사분야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내치'의 안정인 만큼, 11.30 화폐개혁 등의 조치는 통제력을 잃고있는 경제분야를 다잡기 위한  일환으로 분석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건 시점이다. 북한의 계획경제 속에 하나의 부정할 수 없는 현상으로 자리잡아가는 "장마당 경제"를 바라보는 북한 지휘부의 불안한 시선은 사실 어제 오늘 형성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을 미리 찍어두었음에도 개혁을 단행할 수 없었던 것은 화폐개혁이 미칠 파장, 그리고 화폐개혁이 성공하기 위한 조건에 대한 고려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장용석 평화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농업 생산성의 극적인 증대"라는 토대를 마련한 뒤 화폐개혁에 성공했던 과거 베트남의 사례를 언급하면서, "식량과 생필품, 원자재 등 '물량'의 공급이 전제되지 않는 화폐개혁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거창한 경제학적인 개념을 도입하지 않더라도 화폐개혁이라는 건 화폐의 가치를 바꾸는 것인데, 100:1의 단위로 교환한 화폐의 가치가 재화에 비해서 다시 떨어진다면 (인플레), 100:1이라는 교환비율은 무의미해 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한을 둘러싼 상황을 보면 "충분한 물량의 공급"을 가능케 하는 객관적인 조건은 사실 찾아보기가 힘든 것이 현실이다. 오히려 이명박정부가 들어선 이후 정부는 북한에 대해 쌀과 비료의 공급을 중단하고 있으며, 북한의 2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실험 이후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도 상당부분 제한되고 있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2010년 가을 추수철이 될 때 까지 북한에 식량 150만톤이 부족할 거라고 추정하고 있다. 



    ■ 북한과 미국의 "미래"비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나진.선봉지역 방문(12.16)이라는 행동도 이런 전체적인 상황속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 미국 국가안보사업이사회(BENS)의 찰스 보이드(전 공군 대장) 회장, 세계적 보험회사인 AIG의 모리스 그린버그 전 최고경영자 등 기업가 대표단도 12.14~17일 방북했다. 주목할 것은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이들과 면담했다는 점. BENS는 소련 붕괴 후 우크라이나 등의 핵무기 해체 프로그램을 후원했던 곳이다. 


    ▲ 우리의 경찰청장격인 북한 주상성 인민보안상은 12.15 중국을 방문했다. 


    ▲ 첫머리에 언급했듯이 남북 정상회담 논의는 통일부로 넘어가면서 국군포로 문제 등에 걸려 불발되고 말았고, 그 이후 이른바 "대청해전"이 발생한 객관적으로 '분위기가 나쁜' 상황에서도 북한은 개성공단 발전방안을 연구하기 위한 공동시찰단을 보냈고, 그 일행에 김양건, 원동연의 뒤를 잇는 대남통으로 분류되는 맹경일 아태참사를 포함시켰다. 


    ▲ 동아일보는 21일자 보도에서 남북 정상회담 논의가 불발된 뒤 김양건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3시간 동안 호되게 질책을 받았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북한은 이미 "끝났다"고 표현한 6자회담에 다시 들어오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6자회담 참가국들간에 논의할 수 있는 모든 의제를 집대성한 9.19의 중요성에 대해 공동의 인식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그려면서, 왜 스스로 부정했던 내용들을 슬그머니 다시 인정하려 하는지에 대해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다만 조총련계 조선신보가 "《6자회담 재개》와 관련한 립장표명은 그것을 요구하는 미국측에 조선이 먼저 아량을 보인것이다."라고 매우 약한 논리를 천명했을 뿐이다.  

    과도한, 너무 이른 해석인지 모르겠지만 필자는 북한이 현재 바쁜 시간표에 쫓기고 있으며, 보즈워스가 가지고 온 - 아직은 희미한 - "북한과 미국의 미래비전"은 희망의 청사진이라기 보다 어떤 임계점의 전조로 받아들인다. 미국이 느끼는 필요 이상으로 북한은 더이상의 '제재가 병행되는 교착상태'가 지속되기를 바라지 않고 있고, 만약 그런 상태가 계속될 때 어떤 결말에 이르게 될지에 대해서 한 번쯤 고민을 해보는 상황에 처했다는 해석이다. 요컨대 북한은 미래를 자신하지 못하고 있고 그 미래에 대해 미국이 제시한 '비전'에 북한이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 BLA(Business Like Approach) 방정식 


    미국 국무부의 크롤리는 현지시간으로 12.8 북한이 6자회담에 나오면 물리도록 북-미 양자대화를 갖을 수 있다고 했다. 보즈워스 대북특사도 같은 맥락의 발언을 했다. 


    내년 봄 이전으로 예상되는 6자회담이 진도를 빼고 비핵화 논의가 조금이라도 진전되려면 그에 상응하는 대구 - 평화협정체결 문제도 진도가 빨라야 한다. 그리고 일단 4자(미국,중국,한국,북한) 구도라는 원칙이 확보된 만큼, 미국은 가능하다면 신속하게 관련 논의를 진행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다양한 북미 양자접촉의 계기가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아무런 장애 없이 일사천리로 논의가 진행될 거라고 예상하긴 어렵지만, 생각했던 것 보다 속도가 빠를 수 있고 그 속도는 정부채널보다 1.5채널, 2채널 같은 민간영역의 움직임이 더 빠를 수 있다. 


    외교관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외교스타일을 "비지니스 외교"로 규정한다. 어느 타이밍에 어떤 물건을 사고 팔아야 할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외교를 한다는 것. 비밀접촉을 통해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북한의 '구애공세'에 일정부분 반응하려 했던 것도 그런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취재를 하다 보면 현 정부의 외교안보 의사결정 과정속엔 그런 최고통수권자의 "비지니스 외교" 방향조차 틀어지게 하는 옹이 같은 것이 콱 박혀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비지니스의 기본은 타이밍이다. 아마도 지금의 타이밍은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비밀접촉' 전후의 우리 외교안보라인의 대응에 대해 냉정하고 심도깊은 복기(復碁)가 이뤄져야 할 시점이 아닐까? 


    임계점의 전조를 보며, 우리 당국이 스스로에 도취하지 않고 앞으로 펼쳐질 일들에 대해 냉정하게 득실을 따지는 실무적인 접근을 해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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