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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지 않고 버티기 전략 / 2010.02.22.
    북핵리포트 2007-2012 2015. 8. 17. 18:54

    ■ 북한 화폐개혁의 처절한 실패 


    대북 소식지들을 통해서 전해지는 내용들을 100% 신뢰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현재 북한은 지난해 말 이뤄졌던 화폐개혁의 후유증을 상당히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 베트남의 사례로도 알 수 있듯이 화폐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선 돈의 가치가 다시 낮아지지 않을 정도로 충분한 재화가 필요하다는 건 상식. 그런데 북한은 왜 화폐개혁을 강행했을까? 

     

    추측컨대, 지난해까지 북한이 생각했던 것 만큼 일본과 한국 등과의 관계개선이 쉽지 않아 화폐개혁을 위한 나름의 대비가 이뤄지지 못했지만,  2012년 '강성대국 건설' 혹은 '후계구도 안착'이라는 물리적인 목표와 시간표가 만들어져 있는 상황에서 무작정 화폐개혁을 늦출 수도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올해 초에 개혁을 실시하려 했으나, 일부 비밀이 새나가면서 화폐개혁 실시 시기를 앞당겼다는 보도도 있었다.  


    북한의 화폐개혁은 1) 시장을 통해 부를 축적하는 사람들을 다시 정권의 통제력 안으로 끌어들이고, 2) 이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외화를 확보하는 효과를 거두려는 것이며, 양쪽 모두 김정은 체제로의 이행을 위한 기초작업의 일환으로 이해할 수 있다. 


    북한 스스로도 준비를 든든히 하고 시행하는 거라곤 평가하지 않았지만, 결과가 이토록 나쁘리라고 예상하진 않았으리라고 본다. 이렇게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는데 북한이 간과했던 것은 아마도 북한체제 내의 '시장 메카니즘'이 단순히 중소 상인들이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라, 계획경제인 북한경제시스템의 불합리한 구조를 그나마 움직이게 하는 윤활유로 어느새 중요한 위치에 놓이게 됐다는 점일 것이다.  

      

    결국 북한은 화폐개혁의 실패를 인정하고, 일부 시장을 다시 여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 과거와 다른 신호 


    그간 취재 현장에서 관찰했던 북한의 목소리는 어떤 '일관성'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일관성의 중심에는 '명분'이라는 키워드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북한의 모습은 '일관성'이나 '명분'으로 설명하기엔 뭔가 부족한 무엇이 있다. 


    '보복성전'이나 남한당국의 '배제'를 운운하는 강도높은 국방위 대변인 성명이 나온 뒤(국방위 대변인 성명이란 형식은 과거에 쓰인 적이 없다)에도 개성공단의 임금을 높이고,  금강산이나 개성관광을 재개하기 위한 당국간 회담 또는 접촉에 북한은 매우 성의있게 참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우리측에서 남.북 회담을 하면서 "피살된 박왕자씨에 대한 묵념으로 시작하자"는 등의 과거에 전례가 없는 행동을 했지만 북한은 자리를 박차고나가는 등의 행동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만들어온 합의서를 보여주고, 다음 회담 날짜를 잡자고 재촉했다.    


    왕자루이가 북한에 가고, 김계관이 중국으로 갔지만 뭔가 큰 덩어리가 성사됐다는 확증은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뻔히 예상되는 국제사회의 냉담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해외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눈물겨운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국내 굴지의 기업들도 북측과 접촉을 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분명히, 북한에서 들려오는 신호는 과거와는 상당히 다른 신호이며 이런 신호가 나오는데는 앞서 언급한 화폐개혁의 실패도 어느정도 영향이 있을 걸로 보인다. 요컨대, 북한은 과거와 달리 상황과 시간에 쫓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신호에 대응하는 미국의 자세, '안하는 전략' (strategic patience)


    이런 상황을 바라보는 미국의 시각은 "한 번 산 말을 되사지 않겠다"는 '원칙'을 견지하면서, 북한이 조건없이 6자회담에 나오는 것을 촉구하는 모습이다. 최근 국무부 브리핑에서 북한관련 내용은 잘 다뤄지지 않는다. 그런 원칙 때문에 기자들도 별로 궁금할 것이 없는 상황인 것. 



    한국시간으로 17일 미국 국무부 고든 두기드 부대변인은 "우리(미국)는 북한에 대한 제재의 길을 가고 있으며, 북한에 대해 꽤 적극적으로 제재를 적용하고 있다"면서 "그런 길을 계속 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이면으로 들어가 보면 미국은 지금 뭔가 '카드'를 내밀기 보다 시간에 쫓기는 북한, 가뜩이나 후계구도 구축이 바쁜데 거기에 화폐개혁 실패의 혼란까지 겪고 있는 북한 내부문제가 과연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 것인지를 '좀 지켜보자'는 계산이 깔려있는 듯 하다.  한 고위 당국자는 "미국의 담당자들도 뭔가 빨리 해보겠다는 생각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미국의 모습을 보면 제네바 합의 당시(역시 민주당정부)의 상황을 떠올리게 되는데, 당시 미국에 있었던 한 외교관은 사석에서 만난 미국 관리들이 대부분 "북한은 곧 무너진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전한다. 여러가지 다른 이유가 있겠지만, 당시 미국 민주당정권은 제네바합의 이행에 크게 열을 올리지 않았었다.  


    한국정부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이런 한.미 공조체제, 다시말해 강력한 대북 제재를 유지하면서, 쌀과 비료의 지원을 중단하고, 북한의 태도변화를 촉구하는 전략은 현재까지 유효해 보인다.북한이 마음을 다급하게 하고, '다른 신호'를 내도록 하는데 영향을 주고 있음은 분명하다. 



    ■ '효과'의 전제, 그리고 지속성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런 '하지 않는 전략'의 효과는 과거에 있었던 '하는 전략' - 한국으로만 한정짓자면, 일각에서 '퍼주기'로 평가하는 정책이 밑바닥에 전제됐기 때문임도 부정할 수 없다. 


    아까 지적했듯 화폐개혁 실패원인 가운데 가장 큰 것이 북한에 존재하는 '시장'일텐데, 그 시장의 형성 과정에 과거 10년간의 남한 정책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본다.  또 북한이 남한과의 대화에 매달리는 건 과거에 받았던 쌀과 비료지원, 금강산.개성관광을 통한 경화가 '있다가 없을 때'의 괴로움을 매우 분명히 느끼고 있기 때문이리라.  


    결론적으로 과거정부의 대북정책은 여러가지 비판에도 불구하고, 북한체제를 외부에 의존적인 형태로 만드는데는 공이 있다고 본다.   


    이 논리를 뒤집으면 이런 얘기도 가능하다. '하지 않는 전략'의 효용은 언제까지나 긍정적으로 지속되기는 어렵다. 정책 목표가 북한을 고사시켜 당장 스스로 붕괴하도록 하는 것이라면 모르지만(우리가 당장 그런 상황을 감래할 수 있을지, 그리고 그런 상황에 중국,러시아,미국이 전혀 개입하지 않고 구경만 할지를 생각해보라), 그게 아니라면 '안하는 전략'의 결말은 북한을 스스로의 체제 내부로 움추러들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 이명박정부 정책의 큰 틀을 보면 '선핵폐기' 개념이 상당히 강한데, 북한은 비참한 경제현실속에서도 그들이 말하는 '억지수단', 핵무기를 개발했고 이것이 그들의 존재를 담보하는 생명선과 같은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그걸 포기하겠다고 덜컥 나설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 아직도 '그랜드 바긴' 인가?  


    한 때 청와대 관계자가 One Shot Deal 이라고 표현을 하면서 의미의 혼란을 가져오기도 했지만 정부의 북핵문제 핵심 당국자는 "두괄식 제네바합의"라는 표현을 했고, 이것이 그나마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최소한 '이해'는 할 수 있는 설명이라고 본다. 


    결국 9.19/ 2.13/ 10.4로 이어지는  과거의 단계별 협상의 반성에서 도출된 개념인데, 제네바 합의와 같은 것은 모든 요소들을 한꺼번에 테이블에 올려놓고 한개의 합의로 모든 문제를 풀자는 것. 제네바합의와 다른 것은 핵포기를 가장 뒤에 놓는 것이 아니라 상당히 앞쪽에 놓자는 것. 


    몹시 이상적인 해법이긴 하지만 한마디로 평가하자면 실현가능성은 매우 희박한 얘기다. 


    과거에 그런 단계적인 합의를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신뢰의 문제 때문인데, 2차핵실험과 미사일발사로 북한에 대한 신뢰가 더더욱 떨어지고,  북한 스스로도 어느때보다 체제에 대한 불안감을 갖고있는 차에 "핵포기를 우선순위로 배치하는 합의"를 이룬다는 건 현실적으로 생각하기 어렵다. 


    두 번째, 핵의 대체제로 줘야 할 것이 체제보장일텐데, 평화협정도 그렇고 체제보장도 그렇고 단기간에 뚝딱 이뤄질 수도 없고 (북한의 주장과 달리) 어느 한 나라(미국)가 줄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실제로 취재현장에서 관찰하는 상황을 보자면, 요즘 한국과 미국은 북한이 6자회담장에 나왔을 때 제시할 공동의 안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다.  그런데 지금 논의되는 것은 처음에 제기됐던 의미의 그랜드 바긴, 두괄식 제네바합의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어 보인다.  


    접근법은 One shot 보다는 단계적인 접근이며, 또 각 요소들의 시퀀싱에 있어서도 핵무기를 맨 앞에 배치하는 식이 아니다.       


    그런데, 아직도 '그랜드 바긴'을 무슨 북핵문제 해법인양 떠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정부 인사야 그렇다 쳐도 일부 학자들까지 그런 얘기를 하는 건 도대체 '그랜드 바긴'의 의미를 알고도 일부러 그러는 건지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건지 정말 이해하기가 어렵다. 한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한 학자는 한 입으로는 "북한이 2012년까지 결코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 또 다른 한입으로는 "그랜드 바긴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하는 데, 도대체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 수가 없다.    



    ■ 중국, 레버리지를 잃지 않는 관여 


    이런 가운데, 최근 왕자루이 방북 그리고 김계관의 방중 이후 여러가지 얘기들이 돌고 있고, 그 가운데 하나는 15일에 나온 연합뉴스 보도. 이 보도는 조선대풍국제투자그룹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의 대형 은행 두세 곳과 복수의 다국적기업이 대풍그룹과 대북 투자협상을 사실상 마무리지었다"면서 "3월 중순 평양 국가개발은행에서 투자 조인식을 가질 계획인데 전체 투자 규모는 미화 100억 달러 이상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고 했다.  


    외교부나 통일부 등 관련부처들은 일단 "신빙성이 낮다"는 반응들이다. 1) 일단 규모가 너무 크다는 것. 2) 또 북한이란 나라가 신뢰하고 투자할 환경이 되냐는 것 3) 마지막으로  왕자루이 방북 등의 움직임이 결국 북한을 6자회담으로 끌어내기 위한 것일텐데, 6자회담이 개시가 된다고 해도 비핵화 문제 논의의 실질적인 진전이 이뤄지기 보다는 "평화협정 체결" 등의 이슈를 주장할 것인데, 6자회담만 열면 곧바로 효력이 상실될 걸 알면서 그렇게 큰 대가를 치를 필요가 있느냐는 것.  


    또 지금까지 6자회담에서 중국의 역할이 날짜 잡는 것 외에 뭐가 있었느냐는 평가 절하도 있는게 사실.  


    이후에 진행된 다른 보도들까지 연결지어 보면, 100억불이라는 숫자는 북한의 국가개발은행이 유차하려고 하는 투자계획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당장 중국이 북한에 그렇게 많은 돈을 투자할리도 만무해 보인다. 다만, 우리는 이 대목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건너 뛰더라도 이야기의 구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국은 북한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나라로서, 북한의 급변사태가 발생할 경우의 파장 등 북한 체제의 변화문제와 관련해 우리나라 만큼이나 상당히 민감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나라임에 틀림없다. 


    중국은 북한이 다급한 상황에서 왕자루이를 보내고, 그 이후에 김계관이 베이징으로 나오고 투자얘기가 흘러나왔다. 결국 얼마나 실질적인 지원이 이뤄졌는지 또 이뤄질 것인지, 약속만 한 것인지 분명치 않아도 분명한 건 중국이 그런 과정을 통해 북한에 대한 레버리지를 잃지 않고 있고, 북한의 상황을 최악으로 가지 않도록 매우 세심하게 관리하려고 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이 6자회담 복귀라는 단기 목표를 위해 투자를 할리가 없다는 논리를 소개한 바 있지만, 이런 식으로 반박도 가능하다. 


    하나, 중국이 북한문제를 "당장의 6자회담 재개"라는 시야가 아니라 2012년, 아니면 그 이전에 올 권력교체 상황의 혼란상까지 바라보는 확장된 시야로 본다면, 두 번째 중국의 투자가  단기적으로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진행되는 것이고 일단은 약속만 하는 것이라면 불가능하다고만 볼 것도 아니다. 



    ■ 남.북 정상회담 

     

    이런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남.북 정상회담은 잘만 된다면 어느 누구보다 우리 스스로의 문제일 수 밖에 없는 북핵문제, 북한문제 해법에 있어 상당히 긍정적인 모멘텀을 마련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작년에 남북 정상회담이 추진되면서 그 주체가 임태희 장관이 움직인 비선라인에서 통일부로 다시 국정원으로 옮겨가는 과정과을 보면 전체적으로 외교안보이슈를 전체적으로 조율하고 이끌어가는 컨트롤타워가 부재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또 이와함께, 불확실성이 갈수록 증대되는 북한과 관련해 어떤 식으로 접근해갈 것인지 중.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대응 전략이 세워져 있다는 느낌도 들지 않는게 사실이다.   

    예를 들어 아주 단순화해서 얘기하자면,  북한체제가 붕괴 직전의 혼란상황까지 가서 '핵을 포기하겠다' 손을 들고 나올 때까지 한.미 견고한 공조속에 압박하고 기다리면 되는 것인지.  금강산,개성관광 문제는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 개성공단 임금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등 이런 문제들을 과연 전체적인 어떤 큰 틀의 전략 아래서 풀어나가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얘기다.  


    남.북 정상회담은 국내정치에도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국군포로 귀환 등 정상회담의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성과도 물론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임기내에 북한의 강성대국 건설 목표인 2012년 -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의 권력승계가 이뤄지는 시점을 맞게 되는 이명박 정부로서는 좀더 긴 안목을 가지고 전략적인 접근을 해야 할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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