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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월1일부터 2월6일까지 벌어진 일들 / 2010.02.09.
    북핵리포트 2007-2012 2015. 8. 17. 18:53

    지난 번 칼럼인 "임계점의 전조"이후 한달이 넘는 긴 시간이 흘렀다. 다음은 1월1일에서 2월6일까지 한달여 동안 일어났던 일들을 정리한 내용이다. 


    북한은 2010년 새해를 맞으면서, 신년공동사설을 통해 이례적으로 경공업분야를 강조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4일 신년연설을 통해, 상설기구인 남.북 연락사무소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유명환장관은 6일 연합뉴스와의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이 1996년부터 우라늄농축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연초(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갈거라는 보도가 잇따랐고, 북한은 같은 날 조선중앙 TV를 통해 남쪽 지명을 표시해놓은 훈련장에서 탱크가 달리는 장면을 보란듯이 내보냈다. 


    김정은의 생일인 1월8일에 대규모 불꽃놀이가 있을 것이란 예상이 있었지만 다소 조용히 지나갔다. 다만 이 날이 휴무일로 지정됐다는 얘기가 전해졌다. 북한 외무성은 11일 "평화협정을 체결하자"는 내용으로 성명을 냈다. 12일엔 대북소식지를 통해 북한이 '종합시장을 폐쇄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문화일보는 우리 정부가 이른바 '급변사태'에 대비해 "부흥"이라는 이름의 계획을 마련했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14일 같은달 26일과 27일에 금강산ㆍ개성관광을 재개하기 위한 당국회담을 갖자고 제안했는데, 바로 다음날에는 북한 국방위가 성명을 냈다. 북한 국방위가 대변인 성명을 낸 것은 처음이다. 이 성명은 문화일보에 났던 급변사태 대비계획을 비난하면서 보복성전을 개시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 성명은 북한 주민들에게 전달되는 매체를 통해서는 보도되지 않았다. 이 성명이 나오기 전 같은 날인 15일에 북한이 우리측이 제시한 옥수수 1만톤을 받겠다는 응답이 왔다. 


    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북한의 육해공군 무력시위를 참관했다고 조선중앙통신과 TV가 보도했다. 이날 보도된 화면에서 김 위원장의 뒤에 정복을 입고 서 있는 김명국의 모습이 잡혔는데 계급장이 상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다음날 북한 노동신문은 북남관계는 남한당국에 달렸다고 보도했다. 18일 몇일 전 성명을 냈던 북한외무성이 대변인 담화를 내고 제재를 풀기전엔 6자회담에 나갈 수 없다고 밝혔다.  


    19일, 북한이 라선 특별시에 첫 남북합작기업을 승인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20일 우리 국방장관인 김태영장관은 "핵 공격 징후가 있을 때는 선제타격하겠다"는 발언을 했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20일 국가 최고권력기관인 국방위원회 결정으로 '국가개발은행'을 설립하기로 하고, 이 은행에 대한 국제사회의 투자유치를 위해 활동할 '조선대풍국제투자그룹' 이사장에 김양건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위) 위원장을 선출했다고 보도했다. 


    1월 22일, 북한은 26일에 개성공단 통행.통관.통신 등 이른바 '3통' 문제 협의를 위한 군사실무회담을 개최하자고 제안했다. 같은 날 유명환외교통상부 장관은 설 연휴를 전후해서 6자회담이 재개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조선신보는 23일 '화폐개혁을 통해 재정적인 토대를 마련했다'고 보도했지만 소식지들을 통해서는 화폐개혁의 후유증이 심각하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23일 VOA는 유엔제재를 통해 북한의 무기수출이 90%이상 감소했다고 보도했다. 


    24일 북한은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현재 개성공업지구 근로자들의 로임수준은 겨우 57US$정도로서 해외경제특구 근로자들의 로임에 비해 훨씬 적다. 이것은 사실상 용돈도 못되는 보잘것 없는것으로서 공업지구의 로임수준을 결정적으로 높여야 한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고 보도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9년 11월 우리의 경찰청 격인 인민보안성을 시찰한 데 이어 두 달만인 2월 하순 최고재판기관인 중앙재판소를 현지지도했다. 24일 북한군총참모부는 김태영 국방장관의 20일 발언과 관련해 "선제타격론은 선전포고"라고 비난했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요미우리신문의 보도와 관련해 "비핵화가 추동된다면 평화협정문제를 병행해서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같은날 중국발로 우다웨이가 6자회담 의장직을 유지할거라는 관측이 나왔다. 


    정부는 25일 금강산회담을 2월8일로 수정제의했고, 같은날 북한에 옥수수지원절차를 통보했다. 26일 북한이 백령도 근해에 항행금지구역을 선포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이후 NLL북쪽에 포사격이 이뤄졌다. 그러나 27일 현인택 통일부장관은 "남북 실무회담이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28일 북한은 미국에 유해발굴을 제안했으며, 우리시간으로 28일, 현지시간으로 27일 오바마 미국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29일 이명박대통령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연내에 만날 수 있을 것 같다"고 언급했고, 이후 정상회담추진과 관련한 보도가 잇따랐다. 그러나 청와대는 1월31일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추진되는 것이 없다고 했다. 1일 노동신문 정론을 통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발언, "인민들이 강냉이 밥 먹는 것이 가슴아프다"는 내용이 소개됐다. 이는 김정일의 "쌀밥의 고기국"발언 이후 3주만에 되풀이된 내용이다. 


    2월1일 개성공단 실무회담 개최됐으나 별 진전은 이뤄지지 않았다. 2일을 전후해서는 화폐개혁 실패로 아사자가 속출하는 등 북한내 혼란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보도가 중국과 소식지발로 잇따라 보도됐다. 3일엔 화폐개혁 실패의 책임을 물어 박남기가 해임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같은날 통일장관은 우리측이 "남북정상회담을 실제로 원한다"고 말했다. 외신을 통해서는 김태효 청와대 비서관이 워싱턴엘 갔다는 보도가 나왔다. 2월4일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금고지기인 39호실장이 교체됐다는 보도가 나왔고, 같은날 북한 노동당이 조직을 정비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4일 아사히신문은 작년 남.북 정상회담이 거의 성사 직전까지 갔다는 보도가 나왔고, MBC도 같은 내용을 머릿기사로 보도했다. 2월5일 로버트 박이 석방됐다. 같은날 북한이 화폐개혁 실패 수습책의 일환으로 시장을 다시 열고 '한도가격'을 고시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2월6일 왕자루이가 전격 방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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