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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의 핵융합 미스터리 / 2010.06.24.
    북핵리포트 2007-2012 2015. 8. 17. 18:55

    북한은 지난 달 12일 노동신문을 통해 핵융합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북한은 "수많은 과학기술적 문제들을 100% 자체의 힘으로 해결함으로써 마침내 핵융합반응에 성공하였다"면서, "우리 식의 독특한 열핵반응장치가 설계 제작되고 핵융합반응과 관련한 기초연구가 끝났으며, 열핵기술을 우리 힘으로 완성해 나갈 수 있는 강력한 과학 기술역량이 마련되었다."고 선언했다. 북한의 핵개발 문제와 관련해 적어도 그간 언론 등에 공개된 수준에서는 영변 5MWe 발전소에서 생산된 플루토늄, 고농축 우라늄(HEU) 정도가 거론됐었지만 '핵융합'은 거론된 적이 없기 때문에, 필자는 당시 노동신문의 보도가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잘 판단이 서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핵융합은 핵분열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2억℃ 이상의 고온에서 수소 같은 가벼운 원자의 핵이 융합하여 헬륨 같은 더 무거운 원자핵이 되는 과정에서 에너지가 만들어지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대표적으로 태양과 같은 항성들이 이런 핵융합 과정을 통해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하는데, 이 원리를 군사적으로 이용한 것이 수소폭탄이다. 이 에너지를 평화적인 용도, 즉 에너지 생산에 쓰려고 하는 시도는 민간부문에서 계속 시도되고 있는데 상업적인 활용이 가능한 수준의 개발에 성공한 나라는 아직 없다. 그것은 이 핵융합과정이 엄청난 고온 환경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핵융합 연구는 이런 조건을 어떻게 만들고 유지시켜줄 수 있느냐는 매우 높은 기술적 장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노동신문 보도가 나온 날 외교부에선 참고자료를 내놓으면서 "핵융합 발전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산하의 ‘이터’라는 국제기구에서 미국, 유럽연합(EU), 러시아, 중국, 인도, 일본, 한국 등 전 세계 최고의 기술국가들이 모여 추진 중인 사안"이라면서, "실험에 필요한 시설을 건설하는 데만 51억 유로가 소요되고 실험 성공 자체도 50년 후에 가능할지도 불확실한 상황"이라고 소개했다. 또 그 당시는 천안함 침몰원인과 관련한 민.관 합동조사단의 발표가 임박했던 시점으로 북한의 이 같은 메시지는 충분히 주목을 끌기 어려웠다. 그런데 북한이 과거 언론보도나 각종 성명 등을 내놓는 방식을 돌이켜 볼 때, 사실을 과장하는 경우는 간혹 있어도 없는 일을 꾸며내지 않는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그렇다면 노동신문을 통한 북한의 메시지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조선일보는 지난 6월 21일자 1면 기사에서 “북한이 지난달 12일 수소폭탄의 원천 기술인 핵융합 개발에 성공했다고 발표한 직후 우리 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이 관리하고 있는 최북단 측정소에서 방사능 물질인 제논이 평소보다 8배가량 검출됐던 것으로 20일 확인됐다. 이에 따라 북한이 당시 핵융합 기술 개발을 위한 소규모 핵실험을 실제로 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핵융합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실마리가 된 건 교육과학기술부(원자력통제과)가 당일 오전 내놓은 보도자료. 이 자료를 요약하자면 북한의 핵실험 여부는 방사성 핵종인 제논이 얼마나 검출됐는지, 인공지진(진도 3.0 이상)이 감지됐는지 두 가지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하는데, 지난 5월15일 그러니까 북한의 발표가 나온 사흘 뒤에 핵종탐지장비(SAUNA)가 평소(0.55)보다 8배 정도(4.09) 높은 제논을 탐지했다는 것. 이 때문에 북한지역에서 일어난 인공지진을 정밀 파악했지만 3건 모두 진도규모가 미미했고, 두 번째 이 지역이 인구밀집지역이거나 공업단지 지역으로 추정돼 전혀 핵실험이 이뤄질 수 없는 장소였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덧붙여 과기부는 “핵융합무기 개발을 위해서는 핵실험 규모의 인공지진이 발생해야 하고, 실험실 수준의 핵융합 반응 실험은 대기 중 제논 값의 변화가 없으므로 가능성 없는 것으로 판단하였다.”고 밝혔다.


    여기서 우리는 3가지 의문을 가져볼 수 있다. ▲ 북한지역에서 핵 실험이 없었다면 왜 제논이 검출됐을까? ▲ 핵융합과 핵분열은 전혀 다른 개념인데 왜 당국은 핵융합 개발과 ‘핵실험 규모의 인공지진’을 연결시켰을까? ▲ 마지막으로 외교부 자료에선 “50년 후에 가능할지도 불확실한 상황”이라고 했는데, ‘실험실 수준의 핵융합 반응 실험’ 이란 것은 무엇이고 과연 북한이 할 수 있는 일일까?


    편의상 문제를 역순으로 따져보자. 평화적 이용 목적의 핵융합 연구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나눠 볼 수 있다. 하나는 강력한 자기장을 발생시켜 고온의 플라즈마를 가두는(Tokamak) 방법이고 또 하나는 아주 작은 공간으로 여러 가닥의 레이저를 쏘아 매우 높은 온도를 형성하는 레이저 핵융합(inertial confinement fusion) 방식이 있다. 두 가지 방향 모두 외교부의 발표대로 상업적으로 쓰일 수 있을 만큼의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그러나 상업적 수준이 아니라 ‘실험실 수준’이라면 좀 다른 얘기가 된다.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이재기 교수는 “거대한 입자가속기가 아니라도 약 2미터 정도 길이의 가속기로도 중수소 이온을 가속시켜 3중수소에 충돌시키면 매우 작은 규모의 핵융합은 일으킬 수 있다”고 말한다. 이 경우에 제논은 발생하지 않는다. 또 이런 핵융합이라면 물리학 원리를 확인하는 것이라면 몰라도 상업적 수준의 발전에도, 수소폭탄을 만들기 위한 준비로도 별 의미가 없다.


    이번엔 두 번째 의문. 상업적인 수준의 발전이 이뤄지려면 통제가 가능한 공간에서 2억도의 고온을 형성해야 하기 때문에 토카막도 레이저 핵융합도 필요한 것이지만 ‘무기’라면 그럴 이유가 없다. 그래서 핵융합반응에서 나오는 엄청난 에너지를 이용하는 수소폭탄은 엄청난 고온 상황을 만들어주기 위해 핵분열무기(플루토늄 핵폭탄, 우라늄 핵폭탄)를 일종의 ‘기폭제’로 사용한다. 다시 말해 수소폭탄은 먼저 핵분열무기를 터뜨려 고온이 형성된 뒤 함께 폭탄 안에 들어있던 중수소와 삼중수소(실제로는 삼중수도 대신 리튬6를 넣는다)가 핵융합반응을 일으키는 원리로 작동된다. 따라서 핵융합무기를 시험하려면 무조건 핵분열 실험도 함께 이뤄지게 되고, 그 위력은 핵분열무기만 폭발할 때 보다 훨씬 커지게 된다.  따라서 지진파, 그것도 진도 3.0 이상의 지진파가 전혀 감지돼지 않았다는 것은 핵융합무기 시험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그러나 핵융합무기 시험이 없었다고 해서 ‘신경쓰지 않을 일’로 치부할 수많은 없다는 것이 우리 당국의 판단이다. 우리 정보당국은 북한이 핵무기의 소형화를 위해 핵융합무기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지난 달 나왔던 노동신문의 발표도 연관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소식통에 따르면, 정보 당국이 확보하고 있는 북한의 '국가 과학기술 발전계획'에 따르면, 북한은 핵융합에 쓰이는 중수소를 생산하는 계획을 갖고 있다. 중수소와 리튬6를 이용해 최대 10~20kt의 폭발력을 갖고 있는 기존의 플루토늄 핵무기의 폭발력을 크게 높일 수 있는 '강화형 핵무기'를 연구하고 있다는 것. 기존의 핵무기에 중수소와 리튬6를 결합시키면, 핵폭발이 일어날 때 발생하는 다량의 중성자가 리튬6와 중수소에 충돌하면서 3중수소와 중수소의 핵융합을 유도하고 이를 통해 플루토늄탄 보다 훨씬 강한 에너지가 발생하는 원리다. 


    이와 관련해 한 원자력 전문가는 "북한이 지난달 발표한 핵융합 성공은 실험실에서 입자가속기를 통해 인위적으로 리튬6에 중성자를 충돌시키고 이를 통해 소규모로 중수소와 삼중수소의 핵융합을 유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소식통은 북한이 “평성에 있는 국가과학원 산하 이과대학에서 이 같은 실험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7월 나온 [신동아] 기사에 따르면, 과학기술연구원 이춘근 박사는 “북한의 한 과학원이 2004년 이전에 이 기술 확보를 시도한 적이 있음을 확인한 적이 있다”고 말했고, [신동아]는 ‘이 기술’이 ‘자연 리튬에서 리튬6를 분리하는 연구’였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해 이재기 교수는 “질량차이가 별로 나지 않기 때문에 분리가 쉽지 않은 우라늄 농축과정과는 달리, 리튬6와 리튬7은 질량차이가 커서 원심분리기로 쉽게 분리해 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처럼 북한이 기존의 핵무기에 비해 위력이 더 큰 핵무기를 연구하고 있다는 정황이 포착됨에 따라 군과 정보 당국은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등 북한의 핵실험 예상지역에 대해 최근 감시활동을 한층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가장 처음에 던졌던 질문. 그렇다면 왜 제논이 검출된 거란 말인가? 과학기술부 자료에도 나오는 내용이지만, 제논은 원전사고나, 의료용 장비에 의해서도 발생이 가능하다. 소식통에 따르면 우리 당국은 8배나 높아진 제논 검출 수치 때문에 바람의 방향이나 여러 가지 요인들을 추적한 끝에 “중국쪽에서 날아온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속담처럼  북한이 핵융합 성공 발표를 한 뒤 제논이 검출되면서 내색은 하지 않아도 우리 정부가 상당히 놀랐을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북한이 지난 5월 노동신문 기사를 내보낸 시점에 상업적인 수준의 핵융합 발전장치를 성공시킨 것도 아니고, 이른바 ‘강화형 핵무기’ 실험을 강행했던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북한은 그 발표를 통해 북한이 폭발력을 크게 높일 수 있는 ‘강화형 핵무기’를 연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하는 것과 동시에, 현 상황이 북한을 압박하는 쪽으로 지속된다면 3차 핵실험은 핵분열에 이어 핵융합까지 일어나는 ‘강화형 핵무기’를 실험할 것임을 예고한 것으로 해석된다.


    앞서 지난 2006년 10월 있었던 북한의 1차 핵실험 때는 TNT 8백톤 규모, 2009년 5월의 2차 핵실험 때는 4.5kt(4500톤) 규모의 인공 지진파가 지질자원연구원 등에 의해 포착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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