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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로운 게임의 서막? / 2010.08.01.
    북핵리포트 2007-2012 2015. 8. 17. 18:57

    7월21일 있었던 이른바 2+2, 한․미 외교․국방장관 회담과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 북한 박의춘 외무상의 ARF 참석, 그리고 핵 억지력을 강조한 북한의 ‘보복성전’ 발언. 7월25일부터 펼쳐진 사상 최대 규모의 한․미 합동훈련과 이에 대한 ‘대응’으로 여겨지는 5차례에 걸친 중국 인민해방군의 서해상 훈련. 일각에서 ‘천안함 외교의 출구’가 될 거라고 생각했던 7월 하순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무대는 날씨만큼이나 뜨겁게 달아올랐고, 찬찬히 되짚어보면 ‘출구’가 아니라 ‘새로운 게임’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서막 같은 것이다. 


    그동안 북한 핵 문제의 역사는 대개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의 소설 전개방식과 유사하게 시작되고 맺어졌다. 긴장이 서서히 고조되다가 NPT탈퇴나 IAEA 요원 추방, 핵과 미사일 실험 같은 결정적인 고비가 찾아온 뒤 미국 스스로에 의해 아니면 중국의 중재에 의해 협상의 돌파구가 마련되면서 위기가 해소되는 양상이었다. 


    그런데 이런 ‘판박이 구조’에는 몇 가지 전제가 있었다. “북한과의 협상을 통해 북한의 핵을 포기시키거나 적어도 상황의 악화는 막을 수 있다.” “북한체제는 생각보다 견고하고 닫힌 사회여서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또 제재에 의한 압박의 효과도 제한적이다.” “무엇보다 1993년 이후 북한 핵문제에 있어 ‘주연’으로 등장한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북한의 핵 문제는 그다지 높은 정책 우선순위에 들지 않는다, 달리 말하자면 북한은 미국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지 않는다.” 등등.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은 아직 정리된 형태로 발표되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미국에서 정책보고서의 형태로 나오는 싱크탱크의 글들이나 국무부 클린턴, 국방부 게이츠 장관의 발언들을 종합해 보면 출범 초기부터 미사일 발사, 2차 핵실험을 목격했던 오바마 정부의 생각은 과거 미국정부의 정책과 비교할 때 판단의 전제가 달라지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우선 가장 빈번하게 쓰이고 있는 표현은 “한 번 산 말을 되사지 않겠다.”는 것. 이 발언의 이면에는 북한 정권이 핵을 포기할 생각이 없고, 협상을 통해 북한 핵 개발의 속도를 늦출 수도 없다는 뿌리 깊은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 


    두 번째, 이번 2+2에서 게이츠 장관이 공개적으로 발언한 내용에도 들어있지만 미국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악화와 김정일 집권 준비과정과는 전혀 다른 김정은 후계체계 구축과정, 화폐개혁 실패 등으로 대변될 수 있는 북한 내부 경제통제의 실패, 북한 고위층의 권력투쟁 가능성 등을 예사롭지 않게 주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 지난 2005년 공화당 정부에서 정확한 사전 정책조율 없이 실시된 BDA 금융제재의 ‘의외의 성과’를 통해 미국은 북한의 권력층과 직접 연결되는 ‘약한 고리’를 어떻게 공략하면 되는지 경험을 쌓았다. 


    세 번째, 이른바 ‘급변사태’를 통해 북한 정권이 불안해 질 경우, 북한 문제는 동북아 안보의 문제로 급부상하고 이는 G2로 부상한 중국과 힘겨루기를 하는 미국의 국가안보에 직접적인 변수가 될 수 있다. 또 전 세계의 적을 상대하고 있는 미국에게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장거리 미사일과 핵 물질의 통제는 매우 민감한 문제가 된다.  


    이런 맥락에서 사상최대규모로 펼쳐진 한․미 연합훈련이나 미국 재무부가 매우 면밀하게 준비해왔을 것으로 여겨지는 대북 금융제재, 과거와 다른 중국의 반응은 더 이상 ‘천안함 외교’ 라는 비좁은 틀에서 바라볼 수 없게 됐다. 


    워싱턴포스트도 ARF, 아세안 지역안보 포럼에서 벌어진 남중국해 영유권 논란과 한.미 연합훈련을 부상하고 있는 중국과 이를 견제하려는 미국의 알력이라는 틀에서 바라봤다. 


    금융제재와 관련해 일각에선 필요 이상으로 미국의 대 이란제재와의 형식적인 차이를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나 BDA 제재 과정과 제재 해제 당시의 상황을 기억한다면, 현재 미국이 발표하려는 행정명령 형식은 오히려 과거의 실패를 교훈삼은 업그레이드 된 제재임이 분명하다. 너무 강하고 직접적인 효과 때문에 정책적 전환을 할 타이밍에 무척 고생을 했던 점을 보완하면서도 대상을 훨씬 넓히는 방식이다. 중국 변수가 고려됐음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특히 13382처럼 WMD와 관련된 행위 - 일반화된 행위를 문제 삼는 게 아니라 북한이라는 국가 자체를 지목하는 행정명령의 이례적인 형식, 사치품이나 마약과 위폐 가짜담배 유통 등 북한 권력층의 돈줄과 관계된 것으로 알려진 불법행위와 관련해 많은 수의 기관과, 개인을 블랙리스트에 올리는 이번 제재의 목표는 분명해 보인다. 북한 내부적으로 미묘한 시기 북한 권력층을 겨냥하고 있고, 확대해석하자면 권력승계과정에서의 불안정한 상황을 가속화하려는 의도로까지 분석할 수 있다. 


    최근 CFR, 미국외교협회가 내 놓은 “미국의 한반도 정책(U.S. Policy Toward the Korean Peninsula)”이라는 이름의 보고서는 미국 내부의 기류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잘 정리된 글이다. 북한을 강하게 압박하는 것과 동시에 포괄적인 패키지를 제시해야 한다는 쪽으로 한반도 정책을 제시하면서도 이 프로젝트에 참가한 예닐곱 명의 전문가들이 “북한의 정권교체(regime change)를 염두에 둬야 한다.”고 주장했음을 명시하고 있다. 특히 이 보고서는 어떤 정책을 선택하든 급변사태에 대비한 계획을 시급히 세워놓아야 한다고 당부한다. 


    정부의 한 인사는 얼마 전 “‘통일의 기회’는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 지금 우리로선 미국을 업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물론 출구가 없는 정책은 없다. 되돌릴 수 있는 ‘행정명령’이란 형식은 그래서 유용하다. 그러나 출구가 열리려면 앞서 언급했던 ‘달라진 전제’를 달라지게 할 상황의 변화가 필요한데, 2.13 합의로부터 너무나 멀리 떠나온 북한이 미국이 말하는 것처럼 행동으로 뭔가를 보여주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가깝게는 한국, 멀게는 태평양 건너 미국과 갈등관계를 연출하고 있는 중국이 과거처럼 결정적 순간에 중재자로 나서기도 쉽지 않은 형국이다. 이런 속에서 과거 북-미의 직접협상으로 동력을 얻어왔던 구조의 6자회담은 미국의 입장이 극적으로 달라지지 않는다면 설사 열린다 해도 그 유용성이 매우 낮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 정부가 추진해야 할 정책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우리는 미국의 싱크탱크들이 예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상황에 준비가 돼 있을까? 


    여러 가지 정책옵션 그리고 여러 가지 변수들을 분석하고 있는 “한반도 정책 보고서”는 중국과 일본, 러시아 변수를 별도의 소제목을 할애해 분석하고 있지만 유독 한국정부가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 미국 정책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는 논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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