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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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의 사람들 / 2008.11.03북핵리포트 2007-2012 2015. 8. 16. 16:11
빌 클린턴이 8년간 집권한 뒤 부시정부가 들어서면서 대부분의 정책 분야에서 큰 변화가 있었다. 대북정책도 마찬가지였는데, 제네바 합의에 이어 모처럼 조성됐던 북-미 관계정상화 흐름도 완전히 거꾸로 되돌려졌다. 물론 이런 변화의 과정엔 부시 자신의 생각도 반영됐었겠지만 북한을 '악의 축'으로 생각하게 했던 네오콘 진영 참모들의 '사전 정보 입력'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선거를 앞두고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가했던 금융위기, 그리고 이제 침체의 늪에 무릎까지 빠져버린 미국경제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탄생시킬 걸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새로운 미국의 대통령은 과연 미국사회에 더 나아가 전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주목해야 할 것이고 그 첫 걸음은 과연 그의 곁에 어떤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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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을 앞둔 풍경 / 2008.10.30.북핵리포트 2007-2012 2015. 8. 16. 15:51
이제 미국 대선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미국내 각종 여론조사 결과는 오바마가 당선될거라고 예측하고 있다. 서브프라임 문제로 촉발된 미국발 금융위기는 그러지 않아도 이라크전 문제로 지쳐있던 미국 국민들에게 지난 8년 간의 공화당 집권 기간을 '진절머리 나는 기억'으로 각인시키는데 크게 일조한 것 같다. 매케인은 '페일린'이라는 뜻밖의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도도한 대세를 꺾는데 역부족이었다. 이제 남은 문제는 과연 미국의 유권자들이 마지막 투표장에서 '유색인종' 혹은 '검은 피부'라는 근본적인 회의를 거둬들이고 지금 여론조사와 다르지 않은 투표 행태를 보일 것이냐 하는 것 정도가 될 것이다.테러지원국 해제 발표 이후 당장이라도 열릴 것 같던 6자 수석대표회담은 적어도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로 미뤄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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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지원국 해제 / 2008.10.13.북핵리포트 2007-2012 2015. 8. 16. 15:49
미국은 현지시각으로 11일, 북한을 테러지원국 리스트에서 제외한다는 조치를 발표했다. 지난 1987년 KAL기 폭파사건이 발생하고 그 다음해 초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된 뒤 20년 9개월 만에 일어난 일이다. 발표는 라이스 국무장관이나 부시 대통령이 아니라 션 매코맥 대변인이 맡았다.그간 한반도에는 2차례의 핵 위기가 있었고, 클린턴 행정부 당시 그리고 부시정부 아래서 많은 협상이 있어왔다. '관계 정상화'라는 용어는 숱하게 쓰였었지만, 다가서는 듯 했다가 좌절되고 돌파구가 열렸다가 다시 수포로 돌아가는 '악순환'속에서 북한이 테러지원국에서 제외된 건 미국 민주당 클린턴 정부 아래서도 달성되지 못했던 실로 기념비적인 일이다.그러나 미국은 물론, 국내 언론까지 이번 테러지원국 해제 문제에 대해서 인색한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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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선택은? / 2008.09.01.북핵리포트 2007-2012 2015. 8. 16. 15:26
▲ 2008년8월11일. 미국 부시정부는 테러지원국 리스트에서 북한을 제외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북-미간 검증 의정서에 대한 합의도 이뤄지지 않았다.성김 특사는 13일 베이징에 건너갔는데, 이를 전후해서 북한의 불능화 중단조치 - 연료봉 제거작업 중단 얘기를 듣게 됐을 것으로 보인다.이후 22일 뉴욕에서 절충안을 가지고 북한측 관계자와 접촉을 했지만, 북한의 반응은 나오지 않고 있다.쟁점이 되고 있는 건 시료채취와 미 신고시설 사찰, 그리고 불시방문 등 의정서에 나와 있는 깐깐한 조항들이다.요컨대 크리스토퍼 힐이 주도해온 "테러지원국 해제 프로젝트"는 거의 성사되는 듯 했지만, 막판에 여러가지 요인들 (이를테면 부시정부내 강경파의 입김, 대선을 앞둔 난감한 부시의 처지)로 인해 좌초할 위기까지 몰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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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틀린 동북아 외교 / 2008.08.06.북핵리포트 2007-2012 2015. 8. 16. 15:23
7월20일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23일부터 출근을 해서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마이크를 잡는 일이 아니어서 TV를 통해 인사를 드릴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중요한 일을 맡게 됐다고 자부합니다. MBC의 간판 뉴스프로그램인 뉴스데스크의 PD역할인데, 아직 적응이 덜 돼서 그런건지 아니면 그 일을 맡기에 능력이 부족한 건지.. 정신 없이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취재현장도 아니고, 그렇다고 DC에서 처럼 세미나에 참석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겨우 기사들이나 검색해 볼 수 있는 상황이라서 스스로 어떤 '논조'를 세워 글을 쓰는 것이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처음에 이 리포트를 시작했던 이유가 '흐름을 잃지 말자'는 것이었다면 리포트에 첨부했었던 '참고'또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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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자회담의 미래 / 2008.07.14북핵리포트 2007-2012 2015. 8. 16. 15:18
2008년 7월10일, 지난해 10월 이후 9달만에 6자회담이 열렸다. 그러나 이번 회담은 정확히 말하면 정식 6자회담은 아니었다. 중국측은 이번 회담을 6자회담 "제6차 수석대표회의"로 규정했다.보통 6자회담을 한다고 하면 참가자들이 이만 저만 많은 게 아니다. 여기에 각 나라 대표들이 기조연설을 하고 그걸 통역하고 이런 저런 시간들을 계산하면 정작 물리적으로 제대로된 토의를 할 시간은 별로 없다. 다른 이유도 있었겠지만, 이번 회담이 6자회담이 아니라 6자 수석대표회의가 된 배경에는 좀더 실질적인, 효율적인 토론을 벌이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모두가 알고 있듯이 이제 벌써 여름이고, 부시대통령의 임기는 얼마 남지 않았다. 게다가 45일로 설정해 놓은 테러지원국 해제까지 자꾸 시간은 흐르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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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각탑 폭파' 라는 이정표, 그리고 예고된 험로 / 2008.06.30.북핵리포트 2007-2012 2015. 8. 16. 15:13
2008년 6월 27일, 영변. 세계 유수의 언론사들이 초청된 이벤트. 그러나 5메가와트 원자로와 냉각탑을 바라볼 수 있게 언덕 위에 설치된 관람대는 몹시 초라했다. 5시 5분, 무전기로 폭파 신고가 보내졌다. 안쪽 기둥과 구조물 곳곳에 설치된 폭약이 터지면서 첨성대 모양의 냉각탑은 자욱한 먼지와 연기를 남긴채 무너져 내렸다. 관람대 중앙에 미국측 참관 대표로 서있던 성김 미국 국무부 한국과장은 흘끗 리용호 북핵 담보처장의 표정을 겻눈질 했다. 그의 표정은 눈에 띄게 흔들리고 있었다. 연기가 걷힌 뒤 냉각탑이 서 있던 자리엔 시멘트 덩어리들이 을씨년스럽게 주저앉아 있었다. 현장에 접근한 취재진들은 세워진지 22년만에, 그리고 폭파 몇초만에 산산조각이 난 잔해들을 화면에 담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리용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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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문제를 넘어 / 2008.06.16북핵리포트 2007-2012 2015. 8. 16. 15:10
북한은 물론이고 일부 우리 당국자들 조차 일본은 왜 6자회담 틀에 들어와 있는지 모르겠다는 푸념을 하는 걸 여러 번 들은 적이 있다. 일본은 지난해 2.13 합의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에너지 지원 분담과 관련해 문제가 됐을 뿐만 아니라, 북-미가 북핵외교에서 제네바 합의 이후 새로운 이정표로 목표삼고 있는 테러지원국 명단해제 과정에서도 걸림돌이 돼 왔다. 예를 들어 지난 3월13일. 크리스토퍼 힐과 김계관 부상의 베를린 북미접촉 당시 일본인 납치문제와 관련해서도 진전이 있느냐는 기자들(일본 기자들)의 질문이 있었다. 이 질문에 대해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는 일본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아키다카 사이키와 무려 "3∼4회 전화통화를 했다"고 강조했다. 과거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1994년 제네바 합의 이후 ..